이용규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용규선교사님이 이 책을 출간하고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음을 단순히 이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 얻기 위해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생각하는 내려놓음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내려놓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도 하나님께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최고의 절정은 이삭을 낳아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삭조차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진정한 내려놓음이 무엇인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진정한 내려놓음이란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창22장1절에 보면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일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일이란 무엇입니까? 창21장에 보면 이삭이 젖을 뗀 후 친치를 베풀 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고 놀리는 일이 있었습니다(창21:8). 왜 이렇게 합니까? 17년 동안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삭이 태어나니까 이스마엘은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서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합니다(창21:10). 그런데 아브라함은 쉽게 쫓아내지 못하고 근심합니다(창21:11). 왜냐하면 그동안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듣고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합니다(창21:12). 이에 대해서 갈4장 30절을 보시면 “갈4: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이스마엘)을 내쫓으라- ” 고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갈4:24. 이것은 비유니--).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갈4: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육신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난 아들입니다. 그런데 갈4:29절을 보시면 “갈4: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이스마엘)가 성령을 따라 난 자(이삭)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고 합니다. 여기서 이제도 그러하다는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같은 육신의 사람이 있고, 이삭과 같은 성령의 사람, 또는 말씀의 사람이 있듯이 우리 안에도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이 있고, 또 성령과 말씀의 사람인 이삭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이제도 우리 안에도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이 두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우리 안에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동안 말씀과 성령의 사람인 이삭보다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을 더 사랑합니니다. 또 창세기에 보면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나이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삭보다 이스마엘이 힘이 더 셉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날마다 육신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이 싸우면 우리는 매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내려놓음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왜 오늘 본문1절에서 아브라함이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을 쫓아난 일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십니까? 우리가 매일 내 안에 육신의 사람인 이스마엘을 쫓아내지 못하면 진정한 믿음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육신의 사람은 매일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또 끊임없이 미워하고 싸웁니다. 또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우리 안에 이스마엘을 쫓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5절-8절에 “롬8: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안에 육신의 사람을 온전히 내려놓고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진정한 내려놓음은 나를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2절에 보면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합니다.
여기서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제물을 죽여서 모든 것을 불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로 드릴 때 제물 위에 안수를 하고 드립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그 제물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번제의 제물을 죽일 때 자신을 완전히 죽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번제를 드리라는 말은 아브라함 자신을 하나님 앞에 완전히 죽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삶을 내려놓는 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번제의 제물과 같이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합니까?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내 삶이 편하고 더 큰 안식과 평강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어렵고도, 또 쉬운 일입니다.
어렵다는 말은 내가 나 자신을 나의 힘으로 죽이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쉽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는데,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네 자신을 죽일 수 있느냐의 시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네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느냐의 시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그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십니까?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는다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죽이고 부인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날마다 내가 나 자아를 죽이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내려놓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나의 모든 옛 자아가 이미 죽었음을 고백하고,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다 내려놓고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또 진정한 내려놓음은 나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은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앙적인 차원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너무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또 이러한 신앙적인 차원뿐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귀한 존재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나 되어 얻은 아들입니다. 이삭은 첩을 통해 나은 자식이 아니라 본 부인을 통해서 낳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귀한 아들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삭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보다 더 귀한 아들이고, 자신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하나님 앞에 독자 이삭을 드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 자신을 드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자녀를 낳아본 부모의 입장에 서 본다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더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내려놓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나 자신만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나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하나님께 다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분은 그것이 물질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그것이 자신의 명예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존심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그것이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삶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네 삶에 있어서 네 생명보다 귀한 것조차도 다 내게 내려놓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4.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려놓는다는 말이 자포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신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는 말은 결코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들을 믿고 내려놓았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내려놓는다는 말은 단순히 불교에서 말하는 식으로 비운다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17-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중략)--19.그가(아브라함)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믿는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런 부활신앙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삭의 출생과정에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일 중요하다).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왜 우리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왜 우리의 명예를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발소에 가면 이발사가 칼을 가지고 면도를 합니다. 내 목에 칼을 댑니다. 칼날이 잘 서지 않으면 다시 칼을 갈아서 내 목에 댑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이발사가 내 목을 자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것을 다 믿고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면도할 때 잡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이발사보다 못 믿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돈 문제를 내 앞에 다 내려놓아라-너의 명예문제를 다 내려놓아라-그런데 절대 내려놓지 않습니다—왜 그렇습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의 미래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결혼문제 자녀문제를 다 내 앞에 내려놓아라--그런데 절대 내려놓지 않습니다-왜 그렇습니까? 그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완전히 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를 다 내 앞에 내려놓아라-그런데 내려놓지 않습니다-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교회 주되신 것과 그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선하게 이루실 줄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아브라함과 이삭)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절대 혼자 돌아오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드리지만 이삭과 함께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제일 아플 때입니다. 사실 번제할 양은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말합니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그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17장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무지 인간적인 힘으로 이룰 수 없고,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조차도 능히 이루실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도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갈3장 9절입니다.
“갈3:9,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같이) 복을 받느니라”
--우리는 물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어 드려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반드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내려놓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항상 옳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진정한 내려놓음입니다.
내려놓음이란 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실 때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날 바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볼 것 같습니다. 또 그 말씀대로 살면 이 생존경쟁이 치열할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직 완전히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지 못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을 다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합니다. 그리고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합니다.
내가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내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또 하기 싫어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모든 삶을 다 내려놓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내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을 때—우리는 비로소---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돌이키는 체험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손해 볼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체험이 중요합니다. 맛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런 체험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숭이를 잡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원수이 손이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구멍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작은 구멍 속에 원숭이가 제일 귀하게 여기는 먹을 것을 둡니다. 원숭이는 그것을 움켜잡습니다. 그때 사람이 옵니다. 그런데 그 원숭이는 그가 잡고 있는 것 때문에 도망을 가지 못합니다. 결국 그 원숭이는 그가 움켜잡고 있는 것 때문에 자신의 생명조차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사람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의 자아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너의 생명조차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너의 가장 귀한 그 모든 것조차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명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는다 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죽이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가장 귀한 생명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았을 때 우리를 다시 살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명예를 주님께 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주님께서 우리의 명예를 다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명예를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명예롭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내려놓는 우리를 위해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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