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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31)웃게 하시는 하나님(창21:1-7)

by 금빛돌 2022. 3. 18.

오늘 본문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사라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고 합니다. 왜 사라가 이렇게 말합니까? 사라는 25년을 아들을 기다렸다가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아들로 하면 안 되겠냐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진정한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라는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와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고 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웃음은 이츠학이라는 말로서 피식 웃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라도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사라는 이제 피식 웃는 웃음이 아닙니다. 정말 너무 기뻐서 웃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웃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혼자 기뻐하지 아니하고 나와 함께 우리 모두 웃자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로 웃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비웃음조차도 진정한 웃음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 2911절에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재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도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쁨입니다. 에덴동산의 뜻이 기쁨의 동산입니다.

로마서에서도 보면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희락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또 시편 1611절에 보면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합니다.

주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여기서 충만한 기쁨이란 흘러넘치는 기쁨입니다. 또 주님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영원한 즐거움이란 끊어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절대 영원한 기쁨이 아닙니다. 순간적으로는 기쁘지만 그 기쁨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있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또 요한복음 15장에 15: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30:11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고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또 기독교는 엄숙함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표적은 기쁨이 떨어진 잔치 집에서 기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정말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웃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라는 말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서 성경의 저자는 그냥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셨고, 사라에게 행하셨다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아들의 이름을 아삭 이라고 한 것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말씀하신 대로)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이삭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그러니까 성경의 저자는 사라가 웃은 것은 단순히 아들이 태어난 웃음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웃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너희에게 웃음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할 때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되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되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너희가 모세가 네게 명령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면 형통하여 웃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웃음과 기쁨을 주기 전에 먼저 말씀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2에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창15:5에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녀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창1716절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어 사라가 여러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창18:14. 하나님께서 1년 뒤에 사라에게 찾아오셔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이삭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삭이 사라의 경우와 같이 가정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삭이 결혼할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삭이 경제적인 회복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삭이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삭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사라처럼 하나님 내게 자녀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 내게도 내게 맞는 배우자를 주옵소서 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하나님 내게 경제적인 회복을 주옵소서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여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러하오니 우리에게 사랑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먼저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주십니다.

여러분 만일 사라가 25년 전에 가나안땅을 갔을 때 먼저 기도의 응답인 이삭을 먼저 주셨다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웃음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으로 웃음을 주시기 전에 말씀을 주실 때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합니까?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으로 당장 큰 기쁨과 웃음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야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보다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2:3. 이 묵시(말씀)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악인의)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최소한 3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절대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이 이루어지 않아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어떻게 말합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오나(예레미야 15:1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고난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이 그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혹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께 기도해도 기도응답이 없습니까?

몇 십 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가운데서 단 한번이라도 기도의 응답을 받아본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고통의 시간에 고통하며 살지 마시고 그 고통의 시간을 말씀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고통의 시간을 말씀만으로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웃음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당장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 즉 때가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성경을 보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때가 차야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차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말씀하실 때 처음부터 100살이라고 하는 그 시간을 정해 놓으셨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란 어떤 시간표가 아닙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더 기다렸다면 이삭을 주시는 시간이 더 빨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때가 차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믿음의 때가 차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아직 믿음이 성숙되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성공한 경우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숙하지 않았는데, 누리는 성공은 나중에 더 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가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말씀하시고 바로 독자 이삭을 주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성숙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25년이 지나서 말씀대로 이삭을 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 성숙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낳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 엘리에셀을 자녀로 삼으려 했습니다. 또 사라도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어떤 믿음을 요구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믿음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100세 때 아브라함과 90살 때 사라의 믿음이 그렇게 좋지 않게 보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고 합니다.

또 사라에 대해서도 11:11.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말씀)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표준새번역)”고 합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린 것처럼 믿음은 인간적인 자신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모두 인간적인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졌던 믿음이 어떤 것입니까?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말씀하신 하나님은 능히 이루실 줄을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언제 하나님께서 내게 웃음을 주시려고 합니까? 언제 나의 기도를 들으사 나도 웃으며 모두가 웃을 때가 언제입니까? 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네 믿음의 그릇이 과연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네 믿음이 과연 성숙한 믿음이냐,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더 완전히 성숙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이 보실 때 더 온전하다고 하실 때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고, 기쁨을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셋째, 벼랑 끝에 서야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라를 웃게 하신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완전히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 어떤 인간적인 희망이나 가능성이 없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이 완전히 절망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질 여지가 있으면 하나님은 더 기다리십니다.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사라는 처음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라는 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때에 찾아오셨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입니다.

마가복음에도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밤 사경이 될 때까지를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사라가 왜 이렇게 크게 웃으면 기뻐합니까? 그 이유는 사라가 지금 이 순간까지 절망의 시간을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왜 이렇게 크게 기뻐합니까? 그 이유는 그만큼 큰 절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내 상황이 가장 어두울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때가 도리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역사하실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벼랑 끝)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여기서 땅 끝과 땅 모퉁이는 인생의 벼랑 끝을 말합니다. 한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아무도 찾아가 붙들지 않는 상황입니다. 또 아무도 찾아가서 말하지 않는 절망적 상황을 말합니다. 정말 외롭고 고독한 상황을 말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아무도 너를 붙들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가 너를 붙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아무도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너에게 말을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여 택하였다, 비록 네가 절망적인 상황가운데 있지만 나는 너를 싫어하여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땅 끝, 땅 모퉁이와 같은 곳에 있어서 아무도 여러분을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까? 또한 아무도 여러분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도 너를 붙들어주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너를 굳게 붙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만 너에게 말하여 주리라 하십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너는 내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여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비정해서 자녀를 버리는 부모가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녀를 버리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아니하며, 잊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41:10.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탄은 우리에게 낙심을 줍니다. 좌절을 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영적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낙심시키고 좌절시키고 넘어지게 하고 죽게 만드는 사탄의 모든 권세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롭고 강한 오른손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십니까?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6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305절에 30:5-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절망의 밤이 깊은 만큼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들에 더 큰 기쁨과 웃음을 주실 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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