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15)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창7:1-24)

by 금빛돌 2021. 10. 16.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에 홍수의 심판을 있게 하시는가를 보았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동물들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부패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십니다. 유기성목사님은 성령 충만과 육신의 정욕 충만 사이에 중간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시대는 성령이 떠나서 육신의 정욕대로 산 결과로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다 부패했습니다. 그 부패의 결과로 모든 땅이 부패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인간이 부패하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부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부패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내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내가 성령을 쫓지 않고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성령을 쫓아서 살아갑니까? 그래서 내가 현재 성령의 열매를 거두며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영생을 얻은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노아의 가족들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방주는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품어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또 방주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그 어떤 심판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노아와 그의 식구들과 동물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여기서 보시면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란 우리에게 언약을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앞 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기 전에 어떤 언약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내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너와 함께 하겠다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보았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 앞에 라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611절에 6:11.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니고 하는데, 거기서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온 땅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느냐에 있습니다. 여러분 심지어 우리가 예배를 하러 이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살아야합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만 그 시대에 하나님의 얼굴을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얼굴을 인식하며 그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의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의로움을 보여주었습니까?

그것이 창622절에 있습니다.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노아의 의로운 모습입니다.

사실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떤 홍수의 징조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조롱했겠습니까? 그래도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또 노아가 방주만을 만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고 합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자신과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모든 양식을 저축하는 일도 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도 보면 5절에도 보면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

노아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준행할 수 있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준행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비결이 창 614절에 있습니다.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까? 단순히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드는 것이 노아 자신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노아의 가족을 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명령들을 하십니까? 물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명령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명령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 자신과 우리의 가족들을 위한 명령들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만 사랑해야합니까?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에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도 보시면 십일조는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노아와 같이 지금 당장 이해가지 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우리를 위해서라도 모두 순종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한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제 하나님께서 더 구체적으로 노아 방주에 누가 들어올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20절에 보면 하나님은 방주에 암수 둘씩 방주로 들여보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9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방주에 암수 둘씩 방주로 나아오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이라고 한 것은 원래 암수 둘씩인데,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인 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왜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인데,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입니까?

그 이유는 제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홍수가 끝이 난 다음인 창820절에 보면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홍수의 기간 중에서 방주에서도 정결한 짐승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데려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의 정결한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노아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노아야 물론 너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는 의인이다. 또 내가 네게 말한 모든 것을 다 순종한 사람이다. 또 네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너는 완전한 자다. 그러나 내가 보시기에 너는 절대 완전한 자가 아니다. 또 완전한 의인도 아니다. 네가 이 방주에 들어오게 된 것도 절대 너의 완전한 의 때문이 아니다. 네가 이 방주에 들어오게 된 것은 너를 위하여 희생당하는 저 정결한 짐승 때문이다. 그리고 저 정결한 짐승은 너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을 내 아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너는 제사를 드릴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노아 방주는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손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품어주시는 손에 안기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칠 일이면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서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시는 모습이 6절에서 12절까지 나옵니다. 특히 9절에 노아 방주에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에 다 들어가고 난 다음에 10절에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받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과 모든 동물들을 방주에 다 들어가게 하신 후에 7일 동안을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과 모든 동물들이 방주에 다 들어간 후에 바로 홍수를 내려주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먼저 노아 방주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노아방주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주일 후에 홍수가 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 때와 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주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라 고 합니다. 그런데 6일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일 6일째 되는 날에 방주에서 나갔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는 6일 동안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기에 더 이상 여리고성을 돌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에 들어 간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일주일 후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111-21까지 오륜교회에서 주관하는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에 우리교회도 동참하려고 합니다. 왜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입니까?

10:2절을 보시면 10: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세 이례가 지난 후인 21일 째에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10: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21)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러면 기도의 응답이 세 이레 즉 21일 후에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단 10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기도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기도를 하기로 결심했던 첫날부터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세이레 째에 기도의 응답이 왔습니까? 그 이유가 단 1013절에 있습니다. “10:13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사탄)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선한 천사)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21)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바로 응답해주십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사탄이 21일 동안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일 동안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방주에서 7일 동안 있게 하셨습니까? 그리고 7일 후에 홍수를 내리셨습니까? 그 이유는 방주에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분명한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당장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 수 있습니다. 21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24절에서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을 줄로 믿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하나님께서 7일 후에 홍수를 내리십니까? 그 이유는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7일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의 힘으로는 그 방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에 회개하고 방주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7일이 지난 후에 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지금도 왜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시지 않습니까? 왜 당장 하나님의 심판을 베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벧후 39절에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께로 다 돌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칠 일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1절에 보시면 그 날에 땅 속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는 것을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17절을 보시면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마치 온실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홍수전에는 인간에게 유해한 광선이 지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구 전체가 온실과 같기 때문에 극지방에도 춥지 않았습니다. 노아 홍수전에는 나이가 팔구백 살이었는데, 홍수 후인 창11장에 보면 나이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궁창 위에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비가 땅에 쏟아 졌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보는 그런 비가 아니라 마치 폭포수와 같은 물이 땅에 쏟아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올 불 심판의 예표로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의 세상도 추위와 더위가 없는 세상인데 새 하늘과 새 땅은 더욱 그러합니다. 날마다 태초의 세상보다 더 좋고 지금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방주에 모두 들어간 7일 후 홍수가 땅에 사십 동안 계속됩니다.

그래서 17절에 보시면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18절을 보시면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라고 합니다. 19절에 보면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물이 많아져서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다 고 합니다. 또 물이 더 많아져 방주가 물위에 떠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이 더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들이 다 잠기니 방주는 그 모든 산들 위에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하신 방주에 들어가면 세상의 물이 더 많아지면 질수록 우리는 세상 위로 더 높이 떠다닐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신 방주 안에 있기만 하면 세상의 파도가 1이면 우리는 2의 높이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파도가 2면 우리는 4의 높이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신 방주에 있기만 하면 여러분들에게 고난의 파도가 1이면 하나님은 우리를 2의 높이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신 방주에 들어가기면 하면 여러분에게 고난의 파도가 2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0의 높이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날의 방주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교회가 방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조건 교회에 오기만 하면 세상의 심판 가운데서 무조건 구원을 받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여기서 측량한다는 것은 심판 가운데서 구원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심판가운데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성전마당만 밟는 자는 심판 가운데서 구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성전 마당만 밟는 자가 아닙니까? 교회는 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일 때문에 교회에 오지 않습니까? 또 예배는 참석합니다. 그런데 예배 가운데 과연 하나님을 만나고 가십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가십니까? 그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십니까?

그래서 교회가 무조건 방주가 아니라 교회가 방주가 되어야합니다

교회가 방주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키를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주군을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동력장치를 다 없애야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조건 순종해야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열린 창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 속에 빠져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덮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운데 진정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정결하신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올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배를 통해서 나를 번제의 제물로 드려야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죽음을 경험해야합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진정한 노아의 방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코로나의 물결이 더 세면 셀수록 하나님께 더 높이 올라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물결이 우리에게 더 거세게 몰아치면 칠수록 하나님께 더 높이 올라가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