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창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복음에 관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지만 사탄의 머리를 부수고 이기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고, 뱀의 후손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대적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과 뱀의 후손들과의 끊임없는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뱀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고난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창3장 15절은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왜 창세기에서 모세가 창 3장 15절의 말씀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뱀의 후손인 애굽의 바로를 통해서 끊임없는 고난과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치시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함의 아들입니다. 함은 뱀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셈의 자손들로 여자의 후손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들어갈 가나안땅에도 여전히 뱀의 후손들로 인한 고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창 3장 15절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최초에 누가 여자의 후손이고 뱀의 후손입니까?
처음 하와는 가인이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여자의 후손에게 고난을 주는 뱀의 후손이었습니다. 반대로 아벨이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가인이 뱀의 후손이고, 아벨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까?
뱀의 후손인가 여자의 후손인가는 예배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인은 아담의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하나님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습니까? 아벨은 제물과 함께 그 자신이 죽었음을 믿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입니다.
그래서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 여자의 후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내가 죽었음으로 믿음으로 예배를 하는 자가 여자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십자가에서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으시고,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자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여기고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미움은 뱀의 후손의 모습이고 사랑은 여자의 후손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뱀의 후손으로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또 오늘 본문 뒤에 있는 창 5장은 여자의 후손으로 셋의 족보가 나옵니다.
뱀의 후손으로 가인의 족보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으로 셋의 족보는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부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뱀의 후손으로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먼저 가인의 후손들을 하나님에게서 도피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창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여기서 보시면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의 동쪽인 놋 땅에 거주합니다.
여호와 앞이란 하나님의 얼굴 앞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였다고 하는데, 이 놋이라는 이름이 “유리하다, 방황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리하다 방황하다는 것도 하나님에 대해서 유리하다 방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가인이 왜 여호와 앞을 떠나서 유리하고 방황하다는 뜻의 놋 땅에 거주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인을 하나님에게서 쫓아내었기 때문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2절입니다.“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여기서 보시면 범죄 한 가인에게 주신 형벌이 무엇입니까?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효력을 네게 주지 못하고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땅에서 소출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어느 한 땅에서 정착하여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단순히 이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14절에서는 가인이 어떻게 말합니까?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땅에서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가인은 하나님께 대하여도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하나님은 이 땅에서만 떠라나 했는데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서 하나님에 대해서 유리 방황하다는 뜻에서 “놋”땅에 거주합니다.
/이것은 마치 집에서 형이 아우를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제 네가 더 이상 이 집에서는 살 수 없어서 이 집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집만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은 그 집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아버지의 품을 완전히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가인의 후손들인 이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을 떠나서 하나님에 대해서 유리하고 방황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도피하여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까?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인의 후손 즉 이 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마음가운데 하나님이 없다하고 살아갑니다.
또 그 다음에 가인은 어떻게 합니까?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가인은 아내와 동침하여 에녹을 낳고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을 따라서 에녹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왜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성을 쌓는지 앞에 있는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가인은 범죄 한 후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15절에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보호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비록 범죄했지만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절대 사람들에게 죽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17절에서 가인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보호를 거절합니다. 대신에 자기가 자기를 보호할 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고 합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의 뜻은 개벽 시작 즉 하나님이 없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인의 모습을 통해서 본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이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만들어 하나님이 없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필요하냐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는가 하나님 대신 우리를 보호할 성들을 많이 만들어야한다. 그것은 부동산이다 특히 아파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파트의 이름을 성이라는 이름에 “캐슬”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돈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성이다. 사람들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성이다. 나의 지위가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성이다“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입니다.
또 그 다음에 가인의 후손들이 어떠합니까?
18절에서 22절을 보시면 가인의 후손들은 가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고, 음악 하는 자의 조상이 되고, 또 기술을 가진 자의 조상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해서 가축을 치고 음악을 하고 기술을 가지는 것은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나라의 모습이라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가축업을 하시는 분도 있고, 음악을 하시는 분도 있고, 기술을 가지신 분도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이 범죄 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을 경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땅을 경작하는 그 일자체가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축업을 하고 음악을 하고 기술업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원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이 자리에서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가축을 치면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컴퓨터를 다루면서도 하나님께 예배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가인의 후손들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에게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이 일들이 하나님 대신에 그들을 보호할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더 필요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인의 후예가운데 라멕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9절에 보시면 라멕은 자기 마음대로 두 아내를 둡니다(9).
그리고 23절과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나의 상처로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소년들을 죽였다 고 합니다. 라멕은 자신을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사람들 마음대로 죽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는 벌이 칠십 칠 배로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라멕이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인데, 라멕 자신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칠배라고 합니까? 이것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위해서 하신 말씀을 염두 해두고 한 말입니다. 앞에 15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보시면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 벌을 칠 배나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24절에서 누가 하나님 대신에 벌을 준다고 합니까? 라멕 자신입니다. 여기서 잘 보시면 벌을 주는 기준이 누구입니까? 라멕 자신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게 상처를 주면 내가 누구든지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벌을 칠 배나 준다고 했는데, 나는 하나님보다 더해서 벌을 칠십 칠배를 더해서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가인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인의 후손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반대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이 땅에서 떠나라고 하셨는데 가인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가인은 자신을 보호할 성을 쌓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라고 하는데,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에게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심판하리라고 하시는데, 가인의 후손들은 내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심판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주인 노릇하려는 선약과를 먹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가인의 후예들과는 대조가 되는 셋의 후손들은 어떠합니까?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아담이 하와와 동침한 후에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그가 아들 셋을 낳았다고 하는데, 원문에는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셋이 여자의 후손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셋은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다른 씨를 주신 것입니다.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또 셋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합니다. 여기서 에노스란 이름의 뜻은 ‘사람’ (6:4 ; 겔 9:2), 또는 ‘남자’ (13 :8)를 나타낼 때 쓰였습니다. 또 에노스는 흙이란 뜻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 에노스란 성경에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병든 상태에 있은 인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렘 15: 18 ; 미 1 :9) 또 재난을 당하거나(렘 17 :16), 고통 가운데 있는 인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사17:11).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셋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치료가 불가능한 인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난가운데 있는 인간, 슬픔과 고통가운데 있는 인간이란 뜻에서 에노스라 할 때 그때부터 비로소 처음으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시면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능자라는 뜻을 가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창 2장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셔서 그가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 들으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렘33:3).
그래서 누가 뱀의 후손입니까?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다고 자가 뱀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누가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내가 흙에서 나온 연약한 사람인 것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 이 땅의 삶이라는 것이 고통이요 수고요 슬픔이라는 것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인간으로 연약하고 부족함을 알기에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너무 고통스러워 무조건 교회를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예수님이 믿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바로 에노스입니다. 목사님은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나올 수밖에 없는 인간,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나님께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고통이 바로 목사님의 복입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살아오시면서 수많은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도 그것으로는 정말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적인 절망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모든 눈물과 고통들이 여러분들을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난이 있습니까? 창 3장15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난은 필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고난과 고통을 피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고통을 피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에노스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가시는 진정한 여자의 후손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 가운데서 이 세상 사람들은 가인의 후손들처럼 자기를 보호할 성을 쌓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를 보호하실 것인가 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슥2: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앞으로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과 가축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예루살렘 성곽을 쌓아라” 라고 해야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인데,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곽없는 성읍이 되면 우리의 안전은 누가 지킵니까?
슥2: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내가)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원문에 보면 내가 라는 두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걸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친히 사면에 불성곽이 되어서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보호하고 지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곽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주십니다.
여기서 불성곽이란 말은 그 불안에 있는 사람은 따뜻한 보호를 느낍니다. 그런데 그 불밖에 사람들은 불로 태워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신다 뜻은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인의 후손들인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에녹성을 쌓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불 성곽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슥2: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침)범하는 자는 그(하나님)의 눈동자를 (침)범하는 것이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눈동자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눈꺼풀이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일분에 몇 번 눈을 깜박거리십니까? 우리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꺼풀은 지금도 계속 깜박거리면서 눈에 수분을 공급하고, 또 이 물질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슥2:1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슥2:10.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왜 우리가 사방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노래하고 기뻐해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쌓는 돈의 성들과 세상의 권세의 성들과 사람의 성들은 모두 무너지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은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여러분들은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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