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12장 1절에서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영적예배라고 했습니다. 영적 예배란 합리적인 예배, 이성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먼저 이 세상이 우리의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롬1:1-2 그러므로 나는, 이제 여러분이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물(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2절 말씀에 제일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1절과 2절 사이에 아무 말이 없지만, 원문에는 “카이” 라고 해서 “그리고”라는 말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가운데서 이 세대란 이 세상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고전1:20;2:6,8;3:18,19;5:10;7:31;고후4:4;갈1:4).
우리가 이 세대 혹은 이 세상을 본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살라 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이 세상 속에서 거하여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속에서 거하면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합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18:3 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세상)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을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본받지 않기 위해서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알아야 겠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가장 잘 나타내는 말씀이 딤후 3장의 말씀입니다.
딤후 3장1절에 보면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여기서 보시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말세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재림 직전이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말세란 예수님께서 오신 초림 이후부터 재림까지가 말세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말세입니다.
딤후 3장 2절에서 5절까지 이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이들에 대해서 “5하.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아서라는 말씀은 “등을 돌리다”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이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받지 말고, 등을 돌려야할 이 세상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딤후3장 2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세상의 가장 첫 번째 모습은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존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옳은 것이고,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남을 얼마든지 희생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신 것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도 다시는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의 죽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모든 이기주의가 죽었음을 인정하고 나 중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돈을 맘몬 즉 물신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돈과 하나님을 함께 겸하여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요한일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자랑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교만하다고 하는 것은 그 마음속에 무언가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교만한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비방하며” 라고 합니다. 옛날 성경에서는 “훼방하며”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어생활에서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의 권위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벧후 2장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하나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자)들을 비방(훼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훼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또 이 세상 사람들은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무정하며” 라고 하는 것은 동물의 어미와 새끼 사이에 정과 같은 것조차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나타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부모와 자녀간의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감정마저 없습니다.
또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휴전 시 화해의 뜻으로 축배를 들 때 그 술을 '스폰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스폰테”는 “화해할수 없는”, 또는 “앙심 깊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또 5절에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황충은 메뚜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메뚜기는 귀여운 곤충이지만, 중동지방의 메뚜기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곤충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이 세상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을 다 파괴시키는 황충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황충은 전쟁 즉 싸움을 위하여 준비한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디모데 후에서도 보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사나우며 싸우기를 좋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황충의 머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황충은 금관을 쓴 것이 아닙니다. 금 같은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금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하나님이 가져야할 영광의 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딤후에서도 보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만을 사랑하는 모습, 즉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들이 하나님처럼 금 비슷한 것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의 얼굴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황충은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는 사람을 유혹하는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빨은 마치 사자의 이빨과 같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부드럽게 보이지만, 말로서 사람을 물어뜯는 사자와 같습니다. 이것은 디모데후서에서 나오는 “비방하며”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말로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사람들을 비방하는 모습입니다.
또 그 다음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또 철 호심경(쇠로된 가슴막이)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디모데후서에서 이 세상 사람들은 감사가 없으며, 무정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황충의 가슴이 철로 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가롯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단순히 돈 때문에 팔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더 큰 이유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서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딲습니다. 그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요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합니다.
지금 마리아가 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라비인 나사로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가룟유다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요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한마디로 말해서 가룟유다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지금 향유를 붓고 있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향유를 부음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예수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이 향유를 비싼 돈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데 사용하면 되지 아니하였느냐 고 합니다.
또 예수님은 요13장 21절에서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마음이 심히 괴로워하시면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 26절에 “요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의 감정이 어떠합니까? 심히 괴롭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여기서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예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팔려고 했습니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아무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무정한 것입니다.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장에서 사람들이 타락하기 전의 모습과 같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멀어지게 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철 가슴과 같은 무정하며 감사하지 않은 이 세상을 본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빌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우리가 주 안에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합니다. 또 항상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죄를 짓지 않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롬12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가슴이 차가워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계9: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여기서 보시면 황충은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다고 합니다. 황충은 얼굴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여인의 머리털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철가슴입니다. 그리고 꼬리는 마치 전갈의 꼬리와 같이 사람을 죽이는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겉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뒤에는 서로 죽이는 전갈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세상의 모습을 본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서로 뒤에 죽이는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의 뒤에는 전갈의 독보다 더 강한 꼬리가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꼬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도 이것도 동기이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동기가 사랑이 될 때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가 사랑이 될 때 이 세상 속에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예배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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