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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스바냐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습3:14-20)

by 금빛돌 2020. 1. 3.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노래할지어다 기쁘게 부를 지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또 여기서 보면 우리를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을 공동번역성경에 보면 기운을 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죽지말라, 또는 힘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송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후렴)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기죽지 말라, 기운을 내라, 힘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운을 내어 전심을 다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노래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옆에 분들에게 기운을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라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운을 내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노래하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1. 첫번째 그 이유는 스바냐시대에 모두가 다 하나님을 떠난 상황가운데서 아직도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앞 12절과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2절에서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두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은 마음이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

//스바냐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를 남겨두셨습니다.

13절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입에 거짓된 혀가 없다고 합니다.

//또 스바냐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악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남겨두셨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떠난 가운데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남은 자들로 인해서 하나님은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스바냐서 초반부에 나옵니다. 이 스바냐서의 초반에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합니다(1:2).

그러면 보면 왜 하나님께서 왜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스바냐 시대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4,5).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또 심지어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1:6).

//또 습112절에 보면 그들이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제 아무 기대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2b).

//그런데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자를 남겨두셨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3:12).

모두가 거짓을 말하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3:13).

//이 남은 자들로 인해서 하나님은 기운을 내고 힘을 내며,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야가 낙담하여 하나님께 다 하나님을 떠나고 오직 나만 나았다고 말했습니다(왕상19:10).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것은 말라기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라기 시대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십니까?

모두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가운데 마음이 겸손하여 오직 하나님만 찾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모두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모두가 거짓을 추구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을 구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시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경외함이 없는 시대가운데서도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가 생각할 때 이 세상에 더 이상 이런 자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 남아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좌절하여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절대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향한 너의 손을 절대로 늘어뜨리지 말라. 너는 기운을 내라. 힘을 내라. 왜냐하면 이 세상 가운데 내가 은혜로 남겨둔 남은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남은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아직 남아 있는 자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운을 내고 힘을 내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노래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2. 하나님께서 모든 형벌을 제하시고, 모든 원수들을 쫓아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5).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15절만).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형벌()을 제거하시겠고, 또 원수들을 쫓아내실 것이며 화를 당할까 이제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17절에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곧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바벨론이라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또 그 바벨론에 의해서 받게 될 형벌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가운데서 그들이 힘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찬송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해주셔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물리쳐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 앞에 놓인 그 어떤 형벌도 하나님께서 친히 다 제거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이 멸망직전에 있다 할지라도 절대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절대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기운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힘을 내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 앞에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인 사탄이 우리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원수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사탄의 권세도 하나님께서 친히 꺽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앞에 그 어떤 형벌도 이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형벌도 다 제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에게 그 어떤 화가 올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그 어떤 화나 형별이 미치지 못합니다(액땜 필요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것(원수나-형벌이나- )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다 물리쳐주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기운을 내시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우리가 기운을 내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3. 그 이유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1)먼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말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용하게 사랑하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직역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만 잠잠하여 안식할 수 있다 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잠잠하지 못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신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가만히 계시지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우리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예배시간에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과 열정을 드려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배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열정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입니다. 즉 하나님은 미치도록 우리를 보고 사랑하여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지 않고는 그 마음에 안식하지 못하실 정도로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란 인간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요청에서 시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최승락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사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무한히 자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홀로 영원히 자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께서 만드신 사람들과 사랑의 사귐을 원하십니다. 죄악 속에서 자기를 떠난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 마침내는 심판하신다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그에게로 돌아와 그분이 베푸시는 사귐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지성소라고 하는 좁은 공간에서 인간과 만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성소라는 공간만큼이나 작은 분이기 때문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만물가운데 계시는 광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지성소에 만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배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허리가 100인치되는 사람이 20인치되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허리가 100인치되는 사람이 20인치 옷을 입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온 온주와 만물을 주관하시는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지성소에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자신을 작게 만드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자신을 작게 만드셔서라도 사랑하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넓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왜 좁은 지성소로 내려오십니까?

자신을 줄여서라도 사랑하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고난 주시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닌 더 넒은 세상 속으로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 앞으로 나가게 하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실하신 고난그것을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께로 날마다 나가게 하신다--

이와 같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채찍을 내리십니까?

우리를 때려서라도 사랑의 지성소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시대의 지성소가 오늘 어디 인 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입니다. 고린도전서3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전이란 성소나 성소의 뜰이 아니라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넓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을 줄이고 줄이고 줄여서라도 우리 마음 속 사랑의 지성소에 들어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내영혼의그윽히).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보시지 않으면 안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2)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를 사랑함으로 품에 앉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합니다.

-또 이것에 대해서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17.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어떻게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부모님들은 자녀나 손주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 명절에 자녀들이나 손주들을 보았을 때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십니다.

//저도 명절이 되어 집에 가면 어머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서울 출발 할 때부터 전화를 하십니다. “어디냐 예 서울입니다. 그래 너무 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천천히 오라고 해 놓고, 또 충주쯤 가면 또 전화가 오십니다. “그래 어디고, 왜 빨리 안오냐”. 그러시면서 또 너무 빨리 오지 마라, 쉬어가면서 와라하십니다. 그래서 휴게소에서 쉬다가 칠곡 쯤 가면 또 전화가 오십니다. “너 뭐냐 왜 빨리 안오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머님이 아들을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정말로 더덩실 춤을 추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들을 맞는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우리를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용서한 죄를 기억조차 못하십니다. 또 사랑하는 우리를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그 기쁨으로 인해서 더덩실 춤을 추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시고 기쁨으로 더덩실 춤을 추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잡고 혼자서 춤을 추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기가 죽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마치 허수아비를 잡고 춤을 추듯이 하시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더덩실 춤을 추신다는 말은 하나님 혼자서 춤을 추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낙심하고 늘어져 있는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기쁨으로 춤을 추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낙심한 우리를 춤추시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를 낙심되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기를 죽이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로 힘을 떨어지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전심을 다해서 찬송을 하려해도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죽지 않고, 힘을 내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으로 인하여 낙심하여 힘이 떨어진 우리에게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하나님 한분만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앞날이 깜깜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오주여내 앞길을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심으로 우리의 죄로 인한 모든 형벌을 제하시고,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마귀를 물리쳐주시고, 모든 화를 다 제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바른 길을 떠나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 가운데 은혜가운데 남겨두신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낙심이 되십니까? 우울하십니까? 내가 도무지 하나님을 찬양할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그럴수록 더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예배시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시면서 함께 찬양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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