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시56:1-13
박우택 목사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은 어떤 경우였습니까? 지금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어려웠던 순간들이 분명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다 잊어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것을 다 기록에 남기고 그 때의 아픔이 베여있는 특별한 물건을 오랫동안 보존하면서 거울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때마다 그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신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과 기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과 그 분이 약속하신 것은 다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방식을 믿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소원하며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기도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특히 기도는 우리가 믿는 믿음을 현실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신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신앙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도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자의 삶은 기도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인데, 저는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기도에 더욱 신경을 쓰면 좋겠습니다. 저는 특별히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개인적인 문제든지, 교회의 문제든지 진지하게, 이것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덤비는 기도를 해보기를 원합니다. 포시스(P. T. Forsyth)라는 사람이 「기도의 핵심」이라는 책에서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약점을 잘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기도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나 대화하는 것, 곧 다정한 어조로 대화하며 하나님과 산책하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우리의 기도는 영적인 투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도를 대화로 축소해 버리면 승리의 국면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기도의 궁극적인 실재를 놓칠 수 있다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기도의 여러 면들 가운데 영적인 전쟁과 관련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할 내용을 주제는 기도는 분명한 영적인 실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이 시의 배경을, 두 번째로는 다윗의 고통을, 세 번째로는 고통문제를 해결하는 다윗의 방법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이 시의 배경
이 시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 시가 어떤 배경을 '표제'에서 잘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시의 표제는 "다윗의 믹담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믹담'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하는 일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의 어원을 '금'을 의미하는 케템(ࠎয়ऐ)이기 때문에 "금같은 시"(A Golden Psalm)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이 말의 어원은 아캇어로 '숨다' 또는 '덮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교리적이고 영적인 깊이가 있는 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말을 '입술을 다문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이 시를 "침묵의 기도"(A Silent Pray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편에 다윗의 믹담으로 된 시는 이 시를 시편 57-60편, 그리고 시편 16편이 있습니다. 이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도 '믹담'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공통분모는 어떤 사실을 가르쳐주는 교훈시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에 '요낫 엘렘 르호김'이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옮기면 '멀리 떨어져 있는 떡갈나무 위의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어떤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죄가 없고 순결한 비둘기 한 마리가 외롭게 멀리 떨어져서 앉아있다는 분위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다윗이 자신을 아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이방인 가운데 있는 외로운 분위기로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을 표제에서 잘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는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붙잡힌 때에'라고 좀 도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 기록된 역사는 사무엘상 21:10-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특별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받은 후에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의 사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죽이기 위하여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이요 그의 친구였던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이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도망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 마을이 있었던 놉 땅에서 예전에 골리앗을 죽였던 칼을 가지고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하였습니다. 이 시는 이 역사를 배경으로 쓴 시입니다.
2. 다윗의 고통
그런데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잠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망명한 나라였던 가드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역사가 기록된 사무엘상 21장에는 이 때의 상황과 고통을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 때에 그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56:1-2에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망명처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윗을 고통스럽게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윗을 해하기 위하여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받은 여러 고통 가운데 사람들은 다윗이 하는 말을 곡해하여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고 전하였습니다. 시편 56:5-6에 보면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종일 내 말을 곡해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항상 그들이 다윗의 말을 다른 의미로 오해하도록 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NIV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을 '내 말을 뒤틀었다'(they twist my words)고 번역하였는데, 원래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여 전달하지 않고 뒤틀어서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의 직장생활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말을 그대로 이해하거나 전달하지 않고 본래의 의미를 뒤틀어서 이해하거나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체 문맥적으로 들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그를 좋게 말하는 것인데도, 전체 문맥에서 좋은 말은 잘라 버리고 나쁘게 보일 수 있는 말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말의 성격을 시편 56:5에서 '내게 대한 모든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말을 왜곡하는 행위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기 위한 동기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숨어서 그의 목숨을 노리기 위하여 다윗의 삶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시편 56:6을 보십시오.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이러한 상황을 다윗이 어떻게 극복하고 이길 수 있을까요?
3. 다윗의 믿음과 기도
이 시를 보면 다윗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기도입니다. 이 시의 전편에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6:3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고 하였고, 시편 56:4에 보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56:11에 보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생명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는 다윗이 의지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구체적인 설명이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웠던 하나님, 살아계셔서 온 세상과 역사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의 생명을 지키시는 분이신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혈육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대조적으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은 인간들이 아무리 다윗을 해하기 위하여 숨어서 살핀다고 할지라도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역경 중에서 한 기도의 내용을 시편 56:8에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기에 '유리함'이라는 말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표현인데, 그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에 망명해 있었을 때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날들을 주께서 다 아시고, 이 때에 주님께 눈물로 기도한 내용을 다 기억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기록에 보면 눈물병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유리로 만든 병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슬픔의 눈물을 받아두는 병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정에 어떤 재난이 생겼거나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리게 될 때 흐르는 눈물을 모아 보관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유리로 만든 병을 사용하였다는 기록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쿼바디스"에 보면 네로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고, 집정관이었던 페트로니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네로가 눈물병을 가져오게 하여 그 병에 눈물을 담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황제가 두고두고 그에 대한 슬픔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페트로니우스가 네로를 책망하고 혐오한다는 유서의 내용을 읽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 시편에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그의 슬픔을 꼭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습니까?"라는 말씀은 성경에 눈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이 기도는 눈물로 드린 기도를 주님은 다 들으실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하신 대로,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것을 간절한 심정으로 아뢰었습니다. 시편 56:9에 보면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히브리어 원문에 중요한 시제의 변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미래 직설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블레셋에서 다윗의 목숨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그의 말을 왜곡하여 듣고 전하여 계속적으로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아주 절박함이 묻어 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이러한 뜻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날에 원수가 물러 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면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믿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처음에 언급한 포시스(P. T. Forsyth)가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말하고 대화하는 것만 아니라 영적인 투쟁이라고 한 말은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다윗이 간절성을 가지고 죽기살기로 기도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에 망명해 있을 때에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의 믿음대로 구원해 주셨을까요? 우리는 그 뒤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에서 빠져 나와 이 블레셋을 통하여 사울을 죽이고, 그 뒤를 이어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믿음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화시키며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듣고 교훈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이 시를 썼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 해결방법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러 연줄, 예를 들면 친지, 학연, 지연 등을 고리로 사람들에게 호소합니다. 현재 우리 시대는 인간의 재간과 지혜와 돈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신자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초라하게 보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믿음의 표현이 기도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기도응답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시면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온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신 분으로 믿겠다는 절박함으로 기도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의 결과를 체험해 봄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되심을 경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는 기도응답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이, 때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왜곡하여 오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유익한 대로 말을 뒤틀어서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 참으로 우리를 어렵고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동기를 가지고 하는 행동은 더욱 고통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경우에 다윗을 위시하여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고, 그 분의 통치방법과 약속들을 바라보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도는 우리에게 너무 식상한 주제같지만 기도할 때 우리의 문제가 해결함을 받고, 우리 믿음의 실재를 다시 확인해보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보십시오. 기도는 분명한 영적인 실재가 있고, 우리의 믿음을 현실화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신자들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 동기를 가지고 우리의 말을 왜곡하여 이해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말을 비틀어서 전달하여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능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말씀을 통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구약시대에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에 망명하였을 때 늘 그의 말을 왜곡하며, 그를 해하기 위하여 엿볼 때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실제적인 방법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다윗이 "나의 눈물을 주의 눈물병에 담으소서. 주께서 울며 기도하는 자의 간구를 듣고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약속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가 식상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인 것을 믿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기도는 분명한 영적인 실재가 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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