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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시편

시편설교⑫-1 말로 괴롭힘을 당할 때(시편12편)

by 금빛돌 2017. 3. 18.

오늘 시편은 경건한 자가 악한 입술을 가진 자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할 때 쓰여진 시입니다.

다윗이 쓴 시는 분명한데 다윗이 역사적으로 어떤 상황가운데서 이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윗은 항상 주위에 악한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 2-4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의 혀와 입술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7편에서도 나옵니다.

시편 7편에서 다윗은 사울의 무리들의 말 때문에 마치 사자같이 찢고 뜯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3절에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할 때도 악한 사람들이 다윗을 말로서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다윗을 괴롭히고 있습니다(3:2).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전쟁은 말로 인한 전쟁입니다. 칼과 총으로 인한 전쟁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로 인한 전쟁과 상처는 한순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한 사람들의 말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악한 사람들의 말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가운데 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긴급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라는 심정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간절히 다윗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고자가 이 땅에서 끊어지고, 또 하나님 앞에서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가 이제 이 세상가운데 없어지게 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를 말하고, 충실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사람들 앞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완악해지고, 강팍해 집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 또 충성스럽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경건하고 충성스럽게 살려고 하다가 나중에 낙심해서 더 이상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만 아니라 다윗이 살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하고, 충성스럽게 살아야합니다. 이렇게 사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또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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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건한 자, 충실한 자가 이 땅에서 점점 없어지는 이유는 2-4절에 나오는 악한 사람들의 입술과 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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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사람들의 말이 어떠합니까?

먼저 2절 보면 이웃에게 거짓을 말합니다. 또 아첨하는 말을 합니다. 또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또 자랑하는 말을 합니다.

악한 사람은 먼저 거짓을 말합니다. 여기서 '거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웨' '공허'(emptiness), '허무'(vanity)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악한 자가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거짓말도 되지만, 공허한 말, 무의한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서 공허한 말이란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말 중에서 공허한 말은 불신앙적인 말입니다. 또 우리를 낙심케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 말을 들으면 하나님 앞에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용기를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과연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허한 말이고, 경건한 자(충실한 자)를 끊어지게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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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희망과 소망을 주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 말을 들으면 낙심을 주는 말입니까? 만일 우리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격려가 아닌 낙심을 주는 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경건한자(충실한 자)를 죽이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들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주는 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더 기도해야겠다. 또 용기를 내어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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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악한 말은 아첨이 말입니다. 아첨한다는 말과 두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아첨(히브리어 '할라코트')이란 '미끄럽다', '부드럽다'는 뜻의 말입니다. 즉 이 아첨의 말이란 앞에서는 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는데, 뒤에서 그 사람을 비난하고 죽이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아첨하는 말이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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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의 말이 왜 경건한 사람을 죽입니까? 경건한 사람은 순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은 앞에서 하는 말들을 다 믿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앞에서는 부드러운 말을 해놓고 뒤에서 그를 죽이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절대 아첨의 말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진실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진실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앞에서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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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첨하는 입술, 거짓된 입술을 끊어버리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4절에 보면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한 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우리 입은 자기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또 누가 우리입을 주관하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절대 우리 입을 이길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때에 선악간에 우리가 하는 모든 낱낱의 말조차도 다 아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혀와 입술의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입술로 하는 말들을 다 듣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즉각적으로 우리 입술의 말을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민수기서 14장에서 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갈수 없다는 불신앙적인 말, 낙심의 말, 두려워하는 말을 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들이시고 그 말에 대해서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의 제외하고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또 말라기서에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록책에 다 기록해 두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감사는 말들도 다 기록해놓으셨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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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의 입술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낙심치 않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잘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적인 말들로서 낙심해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의 열매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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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4절은 악한 자의 말인데, 5-7절은 그 악한 자의 말과는 대조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악한 자의 말과 대조를 이룹니다. 악한 자의 말은 거짓의 말이고,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모든 말씀은 믿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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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어느 한 말씀도 예외 없이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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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나가면 그 말씀이 지금 우리의 현실가운데서 그대로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저는 정말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것-특히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철저히 말씀대로 모든 일을 행하심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사는 자를 반드시 회복시켜주시고 복주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하시고 보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이나 아첨의 말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말씀임을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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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을 보십시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련한 자의 눌림, 궁핍한 자의 탄식, 이것은 1절에 나오는 경건한 자를 말합니다. 경건한 자는 현실가운데 가련하여 눌리며 살수 있습니다. 또 현실가운데 궁핍하여 탄식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눌림과 탄식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를 위해서 일어나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안전지대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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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안전지대란 무엇이겠습니다.

여기서 안전지대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봅니다.

현실가운데는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는 편안하게 살아가고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악한 자들에 대해는 하늘에서 보고 계시며, 심지어 위에 계신자가 비웃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를 그들을 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자는 복주시고, 높여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안전지대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보면 악인의 미래와 경건한 자의 미래르 보기에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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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습니까 낙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럴때 하나님의 말씀의 안전지대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우리는 안식할수 있고, 우리의 미래를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의 은혜를 영원히 받게 될 것입니다.

7, 8

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7,8절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루한 자, 앞에서 말한 악한 말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비루한 자가 인생중에서 높아지며, 그런 악인이 세상 곳곳에 횡행하지만---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를 지키시며, 그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루한 자, 악한 말을 하는 자들은 지금은 높아져 있지만 이 세대안에 멸망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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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아가고, 또 사람들 앞에서도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현실 가운데서 항상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점점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안전지대에 거하여, 끝까지 경건하게 충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현실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3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갈라디아서 69절 선()을 행하다가 피곤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2)우리의 말들이 경건한 자를 죽이는 말이 아니라, 경건한 자를 살리고 위로하고 살리는 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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