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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빌립보서

종 단어연구

by 금빛돌 2017. 2. 12.

진실한 종(10:42-45)

릭 워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위대함을 그가 가진 권력, 소유물, 명성, 지위의 측면에서 정의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위대함을 신분이나 지위가 아닌 섬김(마음)의 잣대로 측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대함을,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얼마나 섬기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하십니다. 리더십에 관한 수천 권의 책이 쓰였지만, 정작 섬김의 도에 대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기는 원하면서 정작 종으로 남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릭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상과 하나님나라, 세상과 교회에 대해서 두 가지 대조가 나옵니다.

42절에 세상의 집권자들은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주관하고, 또 그 지도자 밑에 지도자들도 힘과 권세로 군림하고 너희를 지배하는 줄 알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43절앞에 보면 그러나라는 말이 원래 있습니다. 러나 너희를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와 세상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은 높이 군림하고 대접받고 섬김을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님나라는 세상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것은 높이 되기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김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닮는 길입니다.

대선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위해서 섬김의 모습 보여줍니다. 또 처음에는 섬김으로 시작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시간이 가면 섬김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군림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교회는)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이 좋다는 척도는 우리가 얼마나 종의 마음을 가졌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많은 신앙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그 결과는 섬김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종의 마음을 가졌느냐는 것은 말이 아니라 섬김의 열매가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느냐를 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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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드러냅니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존재를 드러냅니까?

우리의 삶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어야합니다. 만일 내가 아무리 진실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삶을 통해서 드러내지 않으면 진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진실한 존재라면 그것을 삶을 통해서 드러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며, 종이 되어야 하며, 종 된 자가 천국에서 더 높은 자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종이라면 삶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야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종인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야합니다.

 

그러면 진실한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실한 종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한 종이 아닌 사람은 평생 하나님이나 교회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하나님이 내 필요를 체워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또 하나님을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하나님을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은 교회와 세상, 또 모든 사람조차도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하나님을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축복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번 40일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이것을 가장 많이 강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습니다. 22장 전 아브라함과 그 이후의 아브라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22장 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서 기근이 드니까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또 거기서 자기 아내를 누이로 속이면서까지 그가 하나님께서 부터 받을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보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만 생각했다면 절대 독자 이삭을 바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해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삶으로 옮겼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22장 이후에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무엇을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하 7장에서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집에 축복을 해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할 때 하나님은 그 진심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하실 것입니다.

40일 기도회가 끝난 후 어떤 분이 이런 기도제목을 드렸습니다.

“40일 기도회 동안 처음에는 하나님 내가 원하는 것을 구했으나 이 기도회가 끝이 난후에 주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을 발견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감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진실한 종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종이냐 아니냐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기준은 나 중심이냐아니면 다른 사람 중심이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한 종은 먼저 자신을 잘 돌아 보야 합니다. 그러나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항상 나 개인의 문제에만 메달린다면 영원히 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다 보면 내 문제는 어느새 해결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의 가장 큰 유익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기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자신을 그대로 두면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내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 종이 될수 있는 기회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필요를 체우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체우느냐를 선택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부인해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야 말로 종이 되기 위한 가장 핵심요소입니다.

진실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나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이 되어야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또 진실한 종은 자기 생활에 억메이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이런 일이 있고, 또 저런 일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은 진실한 종이 아닙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에 억메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딤전 2:4).

우리가 진실한 종이냐 아니냐 기준은 우리가 과연 우리의 생활 중심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 중심이냐에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진실한 종입니다.

진실한 종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진실한 종은 핑계를 대거나 뒤로 미루거나 환경이 나아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또는 상황이 나아지면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종은 해야 할 일을 즉시 행합니다. 완벽한 상황을 기다리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불완전한 섬김이 최선의 의도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최상의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상의 것이 되지 않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건물의 작은 부분을 수리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도 해야 합니다. 또 저것도 해야 합니다. 또 말합니다. 아니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다. 전체를 가지고 최상의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최상의 것을 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처음 말했던 작은 부분에 손도 대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최고와 최상의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최상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바에는 부족하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씩 최선을 다해 시작해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또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퍼스타만 하나님을 섬길수 있다는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교회는 최상을 그들의 우상으로 만들어 놓고 교회를 섬기기 때문에 보통 달란트를 가지고 봉사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잘하지 않으려면 하지도 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한 번도 하신 말이 아닙니다. 부족해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까 오히려 더 섬겨야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봉사의 제일 중요한 원리입니다. 봉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하지 않고, 나의 연약을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여러분 내가 부족하니까 나는 못합니다. 이런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순종입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을 봉사를 하라고 찾아다닐 것입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도 성가대나 주일학교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도 성가대 봉사도 하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쉰 분들이 성가대에 앉아서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주일학교학생들에 심방하며 새 가족들을 돌아볼 교사가 어른 중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들백 교회는 그 정도면 괜찬다. good enough"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복 주시는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서 운영되는 완벽하게 보이는 교회보다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진실한 종은 일의 귀천을 따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에 있어서 어떤 일을 귀하고, 어떤 일을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볼 때 잘 보이지 않고, 천하게 보이는 그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활동적인 일과 비활동적인 일의 차이 두지 말아야합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 고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또 진실한 종은 끝까지 사역을 감당합니다. 중간에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종은 일을 주님이 맡기신 일을 중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주님의 종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여 주저 앉을 권리가 없습니다. 주님의 종은 일을 하다가 포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단지 주님의 종은 끝까지 충성할 뿐입니다.

직분이나 직업에는 은퇴가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에 은퇴하는 날은 천국 가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도 은퇴하신 분들이 섬기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또 진실한 종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합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비판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역을 하기에도 너무 정신없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일로 바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판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더 섬겨야합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단순히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비난에 귀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렸을때 그것이 낭비라고 제일 먼저 비난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습니다. 만일 그 여인이 그 비난 때문에 옥합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주님의 장례는 준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님의 일 때문에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 좋은 일이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주님을 섬길 때 항상 비판받을 것을 예상해야합니다. 또 비판에 대해서 방어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주님이 보시는 것이 전부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주의 일에 비방군이나 훼방군이나 구경군이 되지 말고 일군이 되어야합니다.

또 진실한 종은 자신을 분별하되 너무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판단해서 잘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못하면 자기 비하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주님이시고, 그 날은 주님이 오시는 종말의 날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며 실패했다 판단해도 주님이 오셔서 잘 했다 판단하실수 있고, 우리가 잘했다 판단해도 주님이 오셔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진실한 종은 자신을 선전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의를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사역을 인정해줄 때 겸손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을 더 높이려 할 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종은 눈가림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하지 않습니다. 사람 앞에 하는 사소한 일도 하나님 앞에 하는 엄위한 일로 여깁니다.

진실한 종은 절대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과 종의 마음은 함께 썩일 수 없습니다.

진실한 종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능하면 그 자리를 피하려 하고 음지에서 조용히 섬기는 일에 만족합니다.

이 땅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긴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큰 천국의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 상급이란 천국에서 가장 주님을 닮은 자로서 주님가까이 서 있을 영광을 말합니다.

/진실한 종은 사역을 의무와 부담감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회와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역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입니까?

그것은 그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고, 그 섬김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가장 의미있게 사용하는 것이기때문이고, 또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약속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행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긴 것을 (결코)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6:1).

--이번에 성막을 방문하였을때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시골교회를 목회하면서 제대로된 사례도 한 번 받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성전 모형을 설명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 성전을 짖게 하시고, 또 솔로몬이 부족함에도 불구고 그를 지켜 주신 것을 설명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 아비 다윗이 나를 섬긴 것 때문에 내가 너를 축복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리 섬겨도 하나님이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를 자녀를 통해서라도 갚아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일들은 역사가 지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은밀히 섬긴 그일 들은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것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있어서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는 날은 그 사명이 다하는 날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우리는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썩어서 없어지는 자가 아니라 딸아서 없어지는 자로 서야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날에 우리가 부끄러움 없이 주님 앞에 설수 있을 것입니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후회 없이 부끄러울 것이 없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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