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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온유의 복을 주옵소서(마5:5)

by 금빛돌 2016. 4. 30.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을 유약한 사람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온유한 자는 무능한 자로 취급을 받습니다. 또 온유하다는 것을 아무 생각이나 뜻이 없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를 주관이 없는 자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이 온유란 무능한 것이고, 또 온유란 주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무능하고, 주관이 없는 분으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유일하게 겸손 그 자체이시고, 온유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에게 겸손과 온유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온유를 무능한 것이요, 주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예수님을 무능하고, 주관이 없는 분으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으로 만왕의 왕으로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온유하신 분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또 불꽃과 같은 예리한 눈으로 이 세상을 지금도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온유하신 예수님은 절대 무능하거나 주관이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온유란 절대 무능하거나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여러분들은 누가 이 세상의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아주 영악한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나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영악한 자)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땅에서)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입니까? 또 참된 복이 무엇입니까? 온유가 복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오해를 하는 것은 땅을 복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땅이 복입니까? 온유가 복입니까? 땅이 아니라 온유가 복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도 복되도다 온유한 자여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은 무엇입니까? 땅은 온유한 복을 받은 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37: 22. 주의 복(온유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땅에서) 끊어지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땅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도 땅을 많이 가졌는데, 온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땅을 많이 가졌지만 온유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주위에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땅만 가졌지 사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결국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그가 가졌던 땅도 언젠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가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하는데, 어떤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까? 온유의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땅의 많은 사람들을 선물로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온유란 어떤 것입니까? 성경을 보면 온유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가 있고, 물질과의 관계에서 온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한 내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셨습니다.

욥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의 뜻으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욥은 이해를 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어도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1:21,22). 또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란 하나님 앞에서 큰일을 도모하기 전에 묵묵히 작은 일을 잘 감당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2:17).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광야에서 장인 미디안의 양 떼를 치는 일을 하게하셨습니다. 정말 작은 일입니다. 우리 같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양을 쳐야하는가? 내가 갈 곳은 이곳보다 더 큰 곳이고, 더 큰 일이라고 하면서 적당하게 양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양을 치다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온유란 자기의 때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 릴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37:7).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온유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을 통과한 후에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이 80이 되어서도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란 힘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란 절대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란 힘이 있는 자가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사랑을 인하여 그 힘을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26:53).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베드로가 칼을 뽑아서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칼로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힘이 없어서 잡히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늘의 열두영이나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해서 그들을 물리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힘이 있지만 사랑을 인하여 그 힘을 다 사용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란 할 말이 없고,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인하여 할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12:19).

/옳은 것을 말하되 흥분하여 죄를 짓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37:8).

또 사람들의 비난에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한 재료로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12:1-3/)-한상동목사님 예화.

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싸우거나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준 일을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12:14,15).

또 내 뜻과 생각이 있어도 공동체의 뜻을 따라 갈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21:18, 고전8:13)

-우상제물먹는 문제-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셋째, 온유란 물질 때문에 다투지 않고 화평을 추구함으로 이기는 것을 말합니다(26:22).

그래서 온유의 복을 받아서 땅을 선물로 받고, 많은 사람을 선물로 받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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