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돕는 배필을 두신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드신 모든 만물을 보시고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난 다음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시기에 좋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한 가지 좋지 않은 것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18절에 있습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혼자 있는 아담을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은 오늘 본문에 보면 여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이라고 하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만드셨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다(에제르)” 라고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다고 한다면 이단이 될 것입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하나님처럼 남자의 돕는 배필이라고 하니까 돕는 여자가 하나님과 같이 남자보다 더 우월하다고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여전도사님의 책상에 “하나님께서 여자를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돕는 분이시다. 그래서 돕는 여자가 도움을 받는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글을 붙여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누구를 돕는다고 하는 것은 누가 누구보다 더 우월하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남자가 힘이 있다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돕는 배필이라고 했을 때, “배필”이라는 말은 “적합한 자, 또는 동등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이란 “그를 돕기에 적합한 자, 그를 돕는 동등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남자가 더 우월하냐 여자가 더 우월하냐를 가지고 따지는 것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서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에 창조질서에 있어서는 남자가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11장3절에서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성부하나님이듯이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또 이 말씀을 가지고 “그래 봐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또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이 말씀을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머리가 성부하나님이기에 그리스도보다 성부하나님이 더 우월하다고 해석해야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머리가 성부하나님이니까 성자 예수님보다 성부 하나님이 더 우월하다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이단이 됩니다.
/이렇게 왜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말할 때, 누가 누구보다 더 우월하냐를 따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가 죄를 지은 결과입니다.
인간이 범죄 한 후에 죄에 대한 형벌로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형벌이 있습니다.
그것이 창3장 16절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다스리려고 욕망하고)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여자가 죄에 대한 형벌로 남편을 원한다는 말은 “여자가 남자를 다스리려고 욕망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구절이 창4장 7절에 나오는데 “창4:7 --죄가 너를 원(다스리려고 욕망하나)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죄를 지은 후 죄에 대한 형벌로서 남자는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고 다스려고 합니다. 여자도 남자를 다스리려고 욕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시기 바랍니다. 왜 가정에서의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나는 당신보다 더 낫고 우월하다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처음 결혼한 부부에게 부부간에 처음부터 주도권을 절대 빼앗기지 말라고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입니다.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힘으로 여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것도 죄의 결과이지만, 또한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것도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메튜 헨리는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신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능가하도록 그의 머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에 의해서 짓밟히도록 그의 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와 동등한 존재가 되도록 그의 옆구리로부터 만들어졌다. 또한 보호받도록 그의 팔 아래서 그리고 사랑받도록 그의 심장 가까이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창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또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돕는 자로서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을 창조하셨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가정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왜 모세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였는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정에 부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지만, 부부관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은 애굽의 왕 바로에게 지배를 당하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종으로 지배를 당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종처럼 지배를 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힘이 없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어떤 조폭이 매일 조폭 두목에서 매를 맞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조폭두목에게 매를 맞고 사는 조폭이 집에 와서는 힘이 없는 아내를 종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 공감을 하지만, 실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여성은 남성의 종처럼 취급받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최근에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IS에 납치돼 수차례 인신매매와 성폭행을 당한 야지디족 여성들이 구출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IS가 이슬람의 이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보니까 IS는 정통개혁주의 이슬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슬람사람들은 코란의 말대로 100프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IS는 코란의 말대로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실재로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IS에 가담은 하지 않지만 물질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IS가 수많은 여성들을 인신매매하고 성폭행을 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이 코란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코란에서는 여성이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는 노예적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얼마든지 수많은 여성들을 거느릴 수 있고, 또 그렇게 성폭행해도 괜찮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IS는 그 코란의 말대로 그대로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남존여비라고 하는 유교적 사상으로 500년을 이어왔습니다. 민주국가라고 하는 미국에서 1920년에 여성참정권이 주었고, 영국에서는 1928년에 여성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로의 종으로 살면서 집에서는 힘이 없는 여성들을 종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처음 세상을 만들 때 여자를 돕는 배필로 만들었다.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여자는 남자와 동동한 존재로 남자를 돕는 자란 뜻이다. 또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단순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말하면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부에 관해서 설교를 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부부가 서로 사별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결혼을 하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계속해서 “부부가 서로 한 몸입니다. 부부가 이렇게 서로 사랑해야합니다”고만 말하는 혼자되신 분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부부관계를 부부관계로서만 말씀하고 있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로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엡5장 31절과 32절에 보면 “엡5: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한 몸이 된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가정에 대한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부가 서로 한 몸이 되는 것을 교회에 대한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부관계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한 몸이 되라는 말씀은 우리 모두가 한 몸이 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돕는 배필이 먼저는 여자이지만, 돕는 배필로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도 돕는 배필로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만드신 것을 통해서 인간관계에서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인생과 세상의 주인노릇하려는 것이 죄의 본질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의 모습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인노릇을 하려는 것 때문에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인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더 확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주인노릇하려고 제국주의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당시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 즉 왕의 나라가 되어서 약한 나라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일본도 제국주의에 물이 들어서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종으로 삼으려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4장 8절에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놓고 왕(교회의 주인)이라도 된 듯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려 하였습니다(표준새번역)”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교회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하나님이고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각자가 스스로 교회의 주인노릇하려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자를 돕는 배필이라고 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남자가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력이 있는 자나 없는 자가 그 어떤 인종이나 하나님보시기에 다 같습니다. 그래서 갈3장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면 이스라엘에 왕을 두려고 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왕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시적으로 사사를 두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다스릴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삼상8장 6, 7절에서 “삼상8: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하나님)를(을) 버려 (하나님을)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실 때도 절대 인간 왕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는 자를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당시에 교회의 주인은 로마의 교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주인은 로마의 교황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교회의 최고의 주인의 자리에 있어야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이 교회의 주인이 되지 말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만이 교회의 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절대 사람을 그 어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차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돈이 없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심지어 여자이기에 그 어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약2장 1절에서 “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차별하는 자에 대해서 약2장 13절에 “--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을 긍휼이 여기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아무리 돈이 없고 힘이 없어도 나를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의 종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의 밑에서 일을 해도 나는 누구의 종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지으신 왕이신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조금 돈이 있고 힘이 있어도 나보다 힘이 없고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나보다 아래 있는 사람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돈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힘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기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너무나 아름답고 존귀하고 가치 있는 분이라고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지난주에 꿈속에서 성도님들 한분 한분들이 모두 너무 아름답고 존귀하게 보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도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너무 보기에 좋습니다” 라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람을 서로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는 것을 통해서 사람은 싸움과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곧 바로 여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아담으로 동물들에게 이름을 짓게 하시게 한 다음에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고, 바로 돕는 배필을 만들지 아니하시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짓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이 짝이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내게도 이런 짝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이란 동물과 비교했을 때 “연약하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기린처럼 키가 크지도 않고, 독수리처럼 날지도 못하고, 사자처럼 힘이 세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이 혼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이 세상을 섬김으로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담이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혼자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자와 사람들을 만드신 목적은 서로의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들 서로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를 지음으로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기보다는 서로의 연약한 부분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는 다른 동물의 세계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동물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약육강식입니다. 조금이라고 약하면 먹히고, 또 강하면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동물의 왕국처럼 약하면 사로잡히고 강하면 잡아먹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연약한 부분들에 대해서 공격하고 죽이는 모습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호세아4장에서 "호4:1.--이 땅(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이스라엘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2.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표준새번역)”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호4장 3절에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표준새번역)."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서로 돕는 자로 만드셨다는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칼빈이 말한 것처럼 교회 사람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그 교회를 떠나거나 부정할 조건을 제공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과 헌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편이나 아내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보십니까? 또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정죄의 조건으로 생각하면 그곳은 세상이 되고,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서로 도와주고 사랑해야할 조건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에덴동산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사람을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는 것을 통해서 사람이란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돕는 배필로 만드셨을 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23). 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한 몸을 이룰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약성경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한 몸이라고 하시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라는 말씀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서로 한 몸이라는 말씀은 서로가 서로를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관계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자를 내 몸 속의 뼈나 살이 아니라 나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귀중한 보물도 돈이 필요하면 팔수 있습니다. 또 보물도 내가 필요하면 그것을 어떤 도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몸속에 있는 뼈와 살은 절대 팔수 없습니다. 또 내 몸속에 있는 뼈와 살도 내 필요에 따라서 물건처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자와 사람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 우리를 한 몸이 되게 하신 이유는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관계가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각기 다른 인격체이지만,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심으로 하나 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사람들을 만드신 목적은 서로 교통하고 교제함으로 하나가 되기 위함입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성부성자 성령하나님을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교통하고 교제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는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당신을 보니까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고 함으로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부성자성령하나님이 그러하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 안에 품어줌으로 서로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함으로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덴동산에 나타난 아담과 하와는 서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는 관계였습니다. 이것은 부부관계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지만, 그것이 부끄럽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연약함을 같이 도와주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름다운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세상에서 에덴동산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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