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또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올라가 있으면 그 올라가 있는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인생이 내려가 있을 때도 그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려갈 때가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만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환경이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동안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모든 일이 잘되고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까? 아니면 내 모든 삶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까?
//우리의 신앙과 삶이 항상 올라가 있을 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렇다고 항상 내려가 있을 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 또 일주일동안에도 수 백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또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이 마가복음 6장에 나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만 보더라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초두에 보면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또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도 약간은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이때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제자들에게 승리의 보고를 듣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제자들의 삶이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제자들이 승리의 보고를 하는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끼어 넣었습니까? 세례요한이 말씀을 전하다가 죽은 이야기를 끼워 넣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롤러코스터로 말하면 제일 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얼마나 흥분하고 기뻐했겠습니까? 또 많은 무리들도 먹고 배부름으로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래서 이와 같은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먹고 사는 경제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5절에서 제일 중요한 말씀은 “즉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명이 먹는 기적을 보여주실 때 롤로코스터로 말하면 제일 위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영웅으로 대접을 받을만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높이 들림을 받는 그 상태를 계속 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가장 올라가 있을 때 그때 즉시로 어떻게 하셨습니까? 먼저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재촉하사라는 말은 제자들이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재촉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만 홀로 남아서 무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영광과 찬사를 받으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기러 하고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고 인기를 얻는 자리는 항상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 보다 산에 올라가셔서 홀로 기도하시는 것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광 받는 자리에서 즉시로 피하시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을 훈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들이 떡을 나누어줄 때 떡이 더 생기는 놀라운 기적을 예수님과 함께 행했습니다. 이때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무리와 함께 있으면 예수님과 함께 한자리를 차지할 것 같은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즉시로 제자들을 재촉하사 억지로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영광 받고 잘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무언가 올라가고 잘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순간적으로도 그 자리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교만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이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사람들에게 벼랑으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뻔 했습니다. 이때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향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하면서 계속된 침체와 좌절가운데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영광 받으실 때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으셨듯이, 배척을 당할 때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으셨습니다. 즉시로 그 자리를 피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적극적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합니까?
일이 너무 잘되어도 그것을 가지고 너무 흥분하거나 또한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일이 잘되지 않을 때도 그것 때문에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장 일이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우리가 인생의 그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과연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라갈 때도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합니다. 또한 인생이 내려갈 때도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합니다. 인생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너무 기뻐도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을 정도로 기뻐하지도 마시고, 너무 슬퍼도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을 만큼 너무 슬퍼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떻게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고, 실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무 기대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원인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는데 있습니다. 내가 생일 때 어떤 선물을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도 기대를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에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을 배척을 해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을 높이고자 해도 그것 때문에 우쭐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기대와 관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되어도 거기에 기대하지 않고 못되어도 거기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하는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우리가 당장 일이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명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를 건너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또 바다 건너편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어떤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좌절에도 메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데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자리를 피하게 하시고, 또 다시 사명을 위해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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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명령하심으로 바다를 건너가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의 명령으로 바다를 건너는데 그들이 가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역풍이 불어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를 건너간다면 순풍이 불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역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역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너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주로 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 인생의 역풍이 불어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문제로 인생의 역풍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인생의 역풍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때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에 역풍이 불어오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이런 인생의 역풍이 불어오는데 과연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느껴진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역풍가운데서 제일 힘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내 삶 가운데는 살아계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과연 내 삶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지금 과연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이와 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풍랑이는 바다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다에 역풍이 불어도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십니까?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이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역풍을 맞아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것을 멀리서 예수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면서도 지금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4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산에서 내러오셔서 뭍에서(해변에서) 힘겹게 노를 젓는 제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우리 곁에 눈에 보이게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신 채 하나님과만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속에서도 제자들을 위해서 간구하셨듯이,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고통당하는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고 기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러면 이 말씀에 이상한 것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통당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다가 해변으로 내려오셔서 제자들을 보고 계시는데, 왜 당장 제자들에게로 달려가지 않았습니까?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해변에서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비로소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밤 사경이 언제입니까? 일경은 오후6시부터 9시까지고, 2경은 9시부터 12시까지고, 삼경은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고, 밤 사경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이 완전히 힘이 빠져 도무지 인간적인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바다 위를 걸으사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역풍을 맞아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언제까지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우리의 힘이 완전히 빠져서 우리가 도무지 인간적인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 까지 우리를 그냥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그러시다가 이제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힘이 다 빠졌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이때도 예수님께서 그냥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48절에 보시면 노 젓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지나가려 하십니까?
그것은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들의 배에 들어오시기를 간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시려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인간적인 힘이 다 할 때 까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시다가 우리가 힘이 다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려 해도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간구하지 않으면 지가가려 하십니다.
-이번 세겹줄 기도회를 통해서도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 기구하고 간구하심으로, 그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이렇게 바다 위를 걸어서 친히 그들 곁에 오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유령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시리라고는 조금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심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까?
그 이유는 52절에 있습니다.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같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게 군대 귀신도 물리쳐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혈루증 여인을 고쳐주시고, 또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오병이로 오천 명을 먹이실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런 기적을 보고도 아직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바다 귀신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오십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친히 모든 그리스도들 곁에 찾아오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이 말씀에도 보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으로 친히 우리에로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가 이제 그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오실 수 있고, 또 우리가 그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친히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그 예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난주 당회를 마치고 집에 갔습니다. 그때 구역모임에 맛있는 음식을 했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하경이가 웅크리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떻게 말했겠습니까? 하경이 얼굴을 보고 “아빠다” 하고 만져주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구역모임에 가지 앉고 하경이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생 역풍을 맞은 것과 같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장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인생 역풍을 맛아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힘을 내어라 주저 앉지 말아라는 말입니다.
또 나다 고 말씀하십니다. 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또 우리에게 예수님 자신을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풍랑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주 가수 김태원씨가 tv에 나와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집안에 가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형들의 옷을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가난하다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김태원씨는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혐오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를 지탱해주었던 것이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저녁 7시가 되면 아버지가 큰 기침소리를 하시면서 집에 와서 “아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 말이 어린 김태원에서 삶의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때 마다 우리에게 제일 크게 위안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마디 말속에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희망과 위로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멀리 계시다고 느껴지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에 보면 바다는 사탄의 세력을 나타냅니다(오 주여).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려 할 때 사탄의 세력들은 우리를 위협합니다. 역풍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당할 때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배에 오시면 이제 우리 삶의 역풍도 순풍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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