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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각종 강의

관계(조규원목사)

by 금빛돌 2015. 3. 21.

 

 

.서론

1.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를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쉬운 것 같으면서 관계를 생각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를 잘 하려면 할수록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관계를 안 하고 살고 싶지만 관계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관계를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도 삼위 안에서 관계하면서 존재하시면서, 또한 우리와 관계하기를 원하셨다. 그 관계를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성경에서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그리고 인간 사이에 관계를 맺고 살도록 창조하셨다.

성경은 관계를 위한 책이다. 관계를 잘하게 하기 위한 책이다.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적용해야한다.

인간에게 관계라는 것은 기본적인 개념이다. 관계는 모든 인간 삶의 출발이다.

관계없이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관계없이 살면 절대 행복하지 않다.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다. 또한 나 자신과의 관계가 있다. 더 나아가 이웃과 관계가 있고, 자연과의 관계가 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이웃과의 관계가 되지 않는다.

무인도에서도 자신과의 관계가 되지 않으면 불행하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주위의 환경이 달라진다. 우리들은 항상 타인들과 환경에 대해서 원망한다. 항상 내가 아닌 다른 대상들에 대해서 탓으로 돌린다.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함에 따라서 그것들은 달라진다. 인생은 해석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 마음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내 마음이 어려우면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기에 내 마음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러기에 관계는 혼자 어디에 가 있다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관계가 왜 안 될까?

 

2. 이렇게 중요한 관계가 왜 잘 안될까?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풍성한 삶을 추구한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다. 이 풍성한 삶이 행복이다.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풍성한 삶인데, 왜 그렇지 않은가? 정말 행복하십니까? 내가 정말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우리는 항상 무언가 있으면 행복할 줄 생각한다. 로또에 당첨되고 행복하지 않다. 돈이 행복을 줄 수 없다. 자식 때문에 불행하고 생각한다. 자식이 없어도 불행하다. 직업, , 지위, 이런 것들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다. 무언가 소유하려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자녀를 소유하려 할 때 불행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계속 소유하려 한다.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절대 조건은 관계다. 관계에 성공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면 왜 관계가 안 될까?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도, 아내도,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받아들일 수 없는가? 사람에게는 창이 있다. 우리가 훈련을 받는 이유는 창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다. 큰 그릇이 되자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성품을 가져서 예수님처럼 큰 그릇이 되자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이다. 성숙해지면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다. 내가 그릇을 키우지 않은 한 들어오지 않는다. 관계가 안 되는 것은 결국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왜 이해가 잘 되지 않는가? 관계하는 대상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1)관계하는 대상에 대한 지식의 부족

의인의 입술---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무식이 사람 잡는다. 원숭이가 물고기를 들고 나무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원숭이는 자기 생각대로 하니까 결국 상대를 죽였다. 원숭이가 물고기를 미워해서 죽이는가? 그렇지 않다. 상대를 죽이는 이유는 결국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는 지식이 있다.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상대를 발전시키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무조건 준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다. 과잉보호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못한다. 결국 아이는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없다고 한다. 편애도 사랑이 아니다. 그러면 과잉보호의 결과를 낳는다.

지식-이해-수용-관계-행복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어야한다.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되고, 수용이 되고, 관계가 되고, 행복이 된다.

관계하고 싶으면 지식이 필요하다. 이 지식을 위해서 삶의 배경을 알아야한다. 배경의 지식이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이 있다. 의식의 영역은 10프로다 무의식이 90프로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10프로다. 내가 모르는 나가 90프로다.

이런 지식을 가지기 위해 상대에 대해서 나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것을 통해서 이해가 생긴다.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모든 총명(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 인한 지식)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전도여행을 위해서도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냥 가는 것 보다 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더 행복한 전도여행이 될 수 있다.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결국 상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으면 나만 옳다고 한다.

예화)아내 모든 것을 옮겼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빚쟁이 때문에 무언가 옮겨야 안정감이 있었다. 전화하지 못했다. 빚쟁이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삶의 배경이 있었다. 이런 아내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까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조금씩 수용이 되었다. 이렇게 받아주다 보니 결국 아내가 조금씩 변화되었다. 사람은 잔소리해서 변하지 않는다. 잔소리는 결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잔소리가 아니라 믿어주는 것, 이해해주는 것으로 변화된다.

내가 이해함으로 용납해주면 상대방이 조금씩 변화가 된다.

부부의 문제는 결국 나 중심이냐 상대방 중심이냐는 것이다.

부부세미나에 참석하면 결국 나 중심에서 상대방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상대를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도 아는 만큼 진정한 행복이 있다.

남자들이 주관적이다. 여자들이 오히려 객관적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고집이 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체 하는 것이다. 결국 소유로 행복을 찾으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갈 때 진정한 행복이 있다.

 

2)무너진 경계(경계=관계)

눈에 보이는 경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온다. 관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경계가 무너졌다면 누구의 책임이냐를 가지고 서로 다툰다.

무너진 경계는 관계의 혼돈을 가져온다.

경계가 무너지면 누가 권리(권위)를 행사하느냐에 대한 혼돈이 생긴다.

자녀와의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그래서 자녀의 권위도 존중해야한다.

자녀의 권위를 존중해주지 않으면 결국 관계가 깨어진다.

그래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경계를 세워야한다. 보이지 않은 경계가 중요하다.

부부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 안에 보이지 않은 경계가 있다. 이것이 존중되어야한다.

사람에게는 선택하고 책임지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자녀에게도 선택과 책임의 기회를 주어야한다. 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조언자에 불과하다. 자녀의 인생을 책임지거나 살아 줄 수 없다.

경계선을 잘 세워야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신 것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다. 선악과가 경계선이다. 이것만큼은 네가 지켜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다. 이 결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만 아니라 나와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도 깨어졌다. 내 뼈 중의 뼈라 했던 아내의 탓을 했다.

결국 이것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선악으로 판단한다. 선악으로 판단하는 모든 순간 관계가 깨어진다. 이것이 교만이고 자기중심이다. 많은 사람을 상담하면 결국 자기중심 때문이다.

선이 있다는 것은 침범하는 사람이 있고,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

침범당하는 사람은 분노 상실감이 생긴다.

침범하는 사람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경계선을 무시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감이 필요하다. 남편들은 아내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한다.

남자들은 목적의식이 있다. 공격적이다. 목표 지향적이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면 그것을 내 소유라 생각한다. 남자는 내 것이 될 때까지 잘해주고 여자는 내 것이 될 때부터 잘해준다.

서로간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한다.

 

3.풀어야할 세 종류의 관계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2)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3)나와 이웃과의 관계

4)자연 과의 관계

 

강의목표

1.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바른 이해함을 갖는다.

2

 

 

.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1.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

2:1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은 생수이시다.

하나님은 근원이시다.

내 백성이 나를 버렸다.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사랑)으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먹어야 산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사랑구걸이다. 왜 싸우나. 나를 사랑해달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창조할 때부터 인간은 사랑을 먹기 위해서 창조를 받았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결국 모든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참된 생명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온다.

4:13-14“---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런데 인간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은 생수이시고 생명이시다. 그 아들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길이고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생명(생수)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1)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꽃꽂이 한 꽃은 생명이 없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기에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른 관계 안에 열매가 있다.

2)신분이 있다(정체성)

생명이 있는 자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자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방황한다. 공허하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자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인지를 안다.

3)사명(비전과 꿈과 목표)

생명이 있기에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지 안다. 사명이란 내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면 사명이 있어야한다. 꿈이 있어야한다. 생명이 있는 자에게 사명이 있다. 그렇지 않은 자가 방황한다. 내 인생에 사명이 없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4)사랑(계명)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짐으로 내가 누군지 알고, 사명을 알고, 그래서 그분이 내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화목하게 하는 대사의 직책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사의 직책은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대사로 부르셔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과정마다 해야 할 것이 기도다. 기도하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은 대사와 같다. 하나님 앞에 보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시하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것이 삶의 기본이 되는 예배이고, 묵상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보내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다. 그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그분이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격려하신다.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어주신다(아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사랑이다.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더 잘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공급되는 사랑이 있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이 있으면 안정감이 있다.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소속감을 알 수 있다. 사명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담대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면 고아의 정서를 가진다. 고아는 외로움 불안 두려움 거절감 원망 쓸쓸함 답답함이 있다. 우리에게 이런 감정이 없는가? 그런데 왜 내 안에 외로움 불안 두려움 거절감이 있는가? 왜 그런가? 생수의 물이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갈증이 난다. 그러면 결국 다른(탄산)음료를 마신다. 그럴수록 다 갈증이 생긴다. 이런 갈증이 생기니까 다른 웅덩이를 판다.

 

2.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이 웅덩이가 인정중독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인정중독을 가지고 있다. 인정받아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 실족하고 낙심한다. 상처 받는다. 왜 그런가? 내 안에 생수가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 웅덩이가 끝없는 성취(성취의 함정).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등

우리가 혹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가? 생명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 안에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채워져야 할 통이 있다.

이 통을 채우려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고, 결국 쾌락에 빠진다.

중독은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쾌락을 찾는다. 그러다가 죄책감이 온다. 그리고 고통이 온다. 쾌락이 온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서 중독에 빠진다.

불신자들의 삶이 이렇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삶도 이렇지 않은가?

 

3.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4:13-14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다(1:12)

사명은 화목케 하는 일이다(고후5:18)

믿음이 좋은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잘 하는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잘 하는 사람이다. 교회에서 직분은 받아서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많이 보았다. 복음 전하는 일도 화목하게 하는 일이다.

잘 관계를 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한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곳에 화목이 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우리의 모범이신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은 생명 안에 살았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살았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 아버지가 나를 알고 나도 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하나님아버지와 바른 관계 안에 있었다. 하나님과 친밀함속에 있었다. 기도하셨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다. 처음 세례 시에 하셨고, 변화산상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을 아셨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사명을 아셨다. 5장에서 중보자로 세우셨음을 아셨다. 결국 십자가에서 화목하게 하는 일을 다 이루셨다. 이제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곳으로 간다고 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이 사명을 주노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을 받았다. 이 사랑의 힘으로 화목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셨다. 십자가를 지실 때 만일 인간을 바라보았다면 결국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떠나갈 것을 아셨다.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다. 그러기에 그들을 의지하거나 의탁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운데만 있었다. 그 속에 안정감과 평안함을 두셨다. 그래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잠시 단절되는 어려움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바른 관계 안에 있었기에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 신분과 사명은 사람과 세상에게서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천국과 같다. 그러나 삶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상황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갈 수도 있다.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끝까지 사명의 길로 가셨다. 이 모든 힘은 아버지로부터 공급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결국 나와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예수님도 많은 비난과 배신을 받았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생명의 관계에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생명의 관계다. 이 생명의 관계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는 것이다.

 

복습

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하는 자이다. 또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내가 누구인지 안다. 또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나는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받은 자이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온 사랑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다.

이런 삶의 모범이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싫어하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로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좌절되지 않았다. 그 힘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하나님으로 흘러오는 은혜와 사랑의 능력 때문이었다. 심지어 제자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셨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셨다. 이 분이 우리가 닮아야할 삶의 모범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생명의 삶을 사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명의 삶을 살아야한다. 이런 생명의 삶은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공부했다. 이것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동안 강사는 많은 가정 사역을 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정사역을 하고 그 프로그램을 마치면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이 그 삶을 변하시키지 못하고, 예수그리스도가 그 삶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어떤 심리적인 프로그램도 소용이 되지 못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말씀 앞에서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생수가 저기 있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그 곳에 가지 않는다. 가지 못한다. 그러기에 심리학을 통해서 그 곳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작업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생수를 직접 마시는 일은 그 사람의 몫이다. 교회에서 기도하면 되고 말씀 보면 되는 줄 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자리에 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 가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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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중보자이다.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은 우리를 위해서죽으신 일이다. 우리가 관계 때문에 어려운 것은 결국 우리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주장, 내 경험이 내 생각이 너무 많기에 내가 살아있기에 모든 관계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어야 한다. 왜 예수님께서 중보자 화해자로서 죽음의 모범을 보이셨나? 죽지 않으면 관계의 회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부부관계 자녀관계 교우관계의 근원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선이고 내가 최고가 되기에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되는데 모두 살아있기에 관계가 깨어질 수밖에 없다. 죽지 않으면 관계에 성공할 길이 없다. 강사가 사역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결국 이 문제였다. 전도 여행 시 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도 결국 내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부활은 죽음 뒤에 오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은 너무 좋아한다. 우리가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부활은 죽지 않으면 없다.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예수님이 죽으셨기에 부활이 왔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내가 존재하는 한 그 어떤 부활과 회복은 없다. 썩어지는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은 나타나게 된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의 역사가 있다. 삶 속에서 부활과 회복과 새로운 관계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죽기로 결정해야한다. 죽기로 결정하는 그 순간 새로운 관계로 나가게 된다. 죽어지는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난다. 여기서 죽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서도 절대 죽지 않는다. 세상은 죽는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으로 무조건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 남을 죽여야한다고 한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가치관이다. 열심히 수고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되나?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는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인간관계를 말하지만 그 전에 나 자신과의 관계의 문제고, 그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다.

태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니 나와의 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인간관계, 자연관계가 바로 되었다. 그런데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나와의 관계, 이웃관계, 자연관계가 깨어졌다. 그래서 먼저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한다. 그래야 다른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않고 다른 관계를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관계에만 분주하다. 순간적으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맞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바로 이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 관계의 회복은 깨어진 순서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나가야한다.

예를 들어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은 삼각형이다.

하나님

 

친밀감

 

하나님사랑

남 여

불신 긴장 불안 초조

남녀가 각자 하나님께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을 받아야한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친밀감과 동시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풍성해진다. 그러나 남녀가 서로 자기주장만 하면 불신 긴장 불안 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체험적으로 알아야한다. 그래야 모든 관계가 회복된다.

 

죽은 자는 아프지 않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는 생각이 없다. 죽은 자는 원망이 없다. 죽지 않고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고는 중보자 화목 자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죽어야한다.

. 나와 나와의 관계

성경적인 자아상을 이해하라

우리는 고아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자아상은 대부분 타인에 의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나를 인식하고 있다. 거울이 있다. 볼록 거울, 오목거울이 있다. 그 거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 속에 비춰진 잘못된 나를 보면서 고민하지 않는가? 나를 비춰주는 거울들은 중요한 타인들이다. 중요한 타인들은 부모님, 내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이다. 빌어먹을 사람, 못난 나, 이것이 나 인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다. 사탄은 계속해서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잘 났으면 어떻게 배신하겠어, 그러나 너는 원래 그런 못난 자야. 사탄은 이런 거짓말로 우리는 망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도적질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나 사탄은 정반대다. 이 강의실에 대해서 설계자와 시공자가 제일 잘 안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잘 알 수 있나? 그것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것을 믿고 따라간다. 우리의 창조자는 하나님이다. 너는 존귀한 자라고 보배라고 말씀하신다. 세굴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보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과 사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 말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성형수술을 해도 만족이 없다. 마음이 만족이 없으면 진정한 만족이 없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귀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 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없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나를 발견할 때 하나님을 발견한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성경적 자아상은 사람이나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칭찬을 해도 욕을 하고, 비난을 해도 욕을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칭찬을 하면 감사하고, 충고를 하면 고맙게 여긴다.

모든 관계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의미가 없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내 주위의 모든 관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여 나를 풀어 주소서

나 자신에 대한 거짓된 속임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로 알게 하소서

 

마음은 나의 생각 속에 있다. 나의 거짓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로 알게 하소서. 우리의 삶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의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관계를 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수준에서 관계를 한다.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관계를 하고, 건강하면 그것으로 관계를 한다. 내 안에서 모든 관계를 한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나갈 때 당당하게 나갈 수 있다. 그럴 때 세상에서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열등감을 가지면 상대방도 열등하게 여긴다.

나를 소중히 여기면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

부부상담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부부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빙신의 일각을 보는 것과 같다. 그 모든 문제의 근원 속에는 개인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의 문제는 상대의 문제이도 하지만 내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이혼하신 분들은 빨리 재혼하지 말라고 한다. 재혼에 성공한 부부를 만났다.

당신 부부는 잘 살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제가 지금처럼 이렇게 했다면 그 전에 더 잘 살았을 것이다 고 말했다.

내 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1.나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2. 죄와 함께 왜곡된 자아상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같이 구원을 받았는데, 메뚜기 인생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메뚜기처럼 살면 광야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광야의 인생은 두려움과 공포와 방황의 삶이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축복의 삶이다. 세상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보배와 같이 존귀한 자다.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 온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 힘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그 동안 우리와 함께 하셨듯이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구별해야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일이다. 그러면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인생은 자동차와 같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누가 운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 안의 자아가 운전수다. 서로가 자신의 차선을 잘 지키면 된다. 유명한 운전수는 자신의 차선을 잘 지킨다. 그렇지 않은 운전수는 자신의 잘 지키지 못하며, 남의 차선을 침범하는 사람이다. 내가 고수 부모냐 아니냐의 차이는 필요할 때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초보는 모든 일에 간섭하고 통제하고 조정한다. 자기의 차선을 잘 지켜야한다. 그런데 내 차선을 잘 지키지 못한다. 가정 안에서 한 사람만 바로 되면 된다. 나 한 사람만 변하면 된다. 내가 변하면 상대의 반응이 변한다. 내가 죽어지면 그 자리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어린아이는 변명이 많다. 어른은 자기 문제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회복되면 모든 관계는 회복될 수밖에 없다. 관계는 기법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 마음의 중심이 내가 중심이냐 하나님이 중심이냐가 중요하다. 그분이 중심이면 그 분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러면 나 중심이 아니라 타인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은

 

3. 성경적 자아상의 개발

1)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한다(고후5:17).

2)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라(4:12)

3)자신의 삶을 주님 앞에 겸허하게 들러내며, 공동체와 삶을 나누라(32:1-5).

4)성경의 가르침대로 적용하라.

 

4.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의 특징

1)자신을 사랑-자신을 그대로 수용, 단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나의 나 됨에 감사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2)합리적인 사고(12:4)

과거를 후회하고 않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삶이 행복하다.

낮은 자존감-과거-상처 후회 미래-염려 오늘 없다.

여기 왔으면 여기서 즐겨야하는데, 괜히 미래 걱정만 한다. 과거에 집착한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오지 않았다. 행복하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즐기고 누려야한다. 신앙은 누림이다. 이 시간을 누려야한다.

3)자신의 삶을 책임진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진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은 최선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렇게 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어그러면 된다.

 

5.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

자기 사랑

1)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보라

2)나를 위해 사랑의 음식을 공급하라.

매일 거울을 보면서 선포하라. 말에는 권세가 있다. 내가 나를 축복하라.

내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내가 만들어간다.

-포옹, 칭찬, 선포, 나를 위해 투자하라(시간, 물질 등).

4 8 12의 법칙

12번 안아줄 때 행복해진다.

3)용서하라.

용서와 화해는 다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해도 상대가 화해가운데 나오지 않아도 용서하라. 내가 용서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라.

내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만큼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사랑을 구걸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나와 이웃과의 관계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1. 관계의 특징들

1)관계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이다.

성경은 다 관계에 대한 책이다. 하나님은 모든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신다.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신다.

2)관계에 있어서 중심(권위)은 하나님께 있어야한다.

모든 갈등은 항상 내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때 나만 옳다고 생각할 때 갈등이 생긴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틀리다와 다른 것은 다르다. 틀린 것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 하나님은 인내하시는 분이시다. 죄를 지어도 바로 치지 아니하신다.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하다.

3)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관계에는 항상 인격을 가진 두 사람 이상이 관련된다.

우리는 권위를 가지고 대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일방적이다. 서로 다른 인격이 있다. 존중해야한다. 사람들은 모두 존중받기를 원한다. 존중하면 말하고 싶어 한다. 거절 받으면 말하지 않는다.

 

 

 

역기능 가정의 패턴

조건적 사랑

↗ ↘

멀어진 관계 수치심

↖ ↙

조종과 통제

 

순기능 가정의 패턴

무조건적 사랑

↗ ↘

친밀한 관계 그리스도 중심 은혜와 긍휼

↖ ↙

권한 기회를 줌

 

4)관계에 있어서 유익한 것은 다른 두 사람 이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5)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듣는 것이다.

대화는 상대의 마음을 주고받을 때 이루어진다.

.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

. 들리는 것만 듣는 사람

. 들어야할 것을 듣는 사람

내가 중심이라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한 것도 모른다.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만큼 큰 기적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듣기기 때문이다. 박진영-“무언가가 있는 것이 있는 줄 알겠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의 인도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은혜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라.

6)관계는 지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7)관계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있을 때 더욱 깊은 위탁이 있게 된다.

받기만 해서도 안 된고, 주기만 해서도 안 된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야 한다.

8)우리에게는 위탁된 관계가 필요하다.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더 친밀했다. 그러나 유다와 같은 자도 있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없다.

 

2.관계할 때 내 안에서 방해되는 것들

1)모든 것을 자기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2)영적 교만

자기 것만 옳다고 생각,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교회 안에서 문제는 자기기 받은 은사만 모두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3)쓴 뿌리와 상처받은 영혼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모든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상처를 회복할수 있다. 오직 사랑과 기다림만이 변화된다. 강사-작은 교회라도 문제가 있다. 기다려야할 것이 너무 많다. 위로부터 오는 영적인 은혜가 없으면 안 된다. 그분의 사랑의 공급이 없으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교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들마다 주는 은혜가 다르다.

4)소유욕과 탐심

탐심은 우상숭배다. 우상은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5)남을 이용하는 것

조정과 통제를 통해서 나를 이용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욕심에서 나온 것

6)남을 판단만 하는 것

 

3.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요소들

1)서로에게 위탁해야한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2)열린 마음(정직한 마음)

정직함이란 그것이 드러나도 당당한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도 드러내야한다.

3)겸손한 마음

4)충성된 마음(섬김의 마음)

 

4.깨어진 관계를 회복

깨어지기 전에 관계를 잘 하자.

18: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1)회복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2)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라.

섣부르게 나가지 말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3)하나님과의 관계를 푸는 것이 필요하다.

4)우리는 용서를 베풀어야한다.

용서는 푸는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다.

5)겸손함으로 나가야한다(용서를 구하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라.

내 잘못이 아니라 오직 남을 탓 만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부족해서 그렇다고 하라.

나의 실수도 인정하라.

4:6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 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6)중보와 영적전쟁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고후4: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모든 관계의 틀어짐에 우리를 파멸시키는 사탄의 역사가 있다. 사탄은 분열키시는 영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한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갈등이다. 갈등은 없을 수 없다. 갈등은 푸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은 서로를 알게 하는 과정이다. 그 갈들이 있을 때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풀어주신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진다.

 

7)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을 배워야한다.

교회는 병원이다. 환자가 없는 병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가 없기를 바란다면 잘못이다.

내가 조금 건강하다면 내가 간호사와 의사가 되어야한다. 이것이 회복의 길이다.

결론 하나님보다 더 앞서가지 맙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 행하라. 아름다운 관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행복한 삶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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