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청지기 비유(눅16:1-13)

by 금빛돌 2015. 3. 18.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부임했을 때 성도들이 제일 먼저 한 말은 목사님 절대 돈에 관한 설교는 하지 마십시오-돈에 관한 설교를 하면 은혜가 떨어집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디. 그런데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문제는 돈에 관해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게 하는 것이 문제다. 단지 돈에 대해서 바르게 설교해야할 뿐이다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 가지 회심이 필요하다--그것은 먼저 가슴의 회심이고, 또 머리의 회심이고, 지갑의 회심이다. 아마도 오늘날 이 셋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지갑의 회심일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 아람어인 맘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맘몬이라는 말은 돈이 단순히 비인격적인 물질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요 영적인 것으로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돈(맘몬)을 하나님과 라이벌로 보셨습니다.

즉 돈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과의 경쟁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돈은 유사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지배와 권세아래 두시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돈도 우리를 돈의 권세와 지배아래서 살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돈의 지배와 권세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들이 결국 돈의 권세아래서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이와 같이 돈은 마치 하나님과 같이 힘과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돈도 하나님과 같이 전능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든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고의 자리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에 중심에 오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하나님은 최고로 여기며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네가 나를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주님 내가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같이 항상 우리에게 최고의 자리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돈이 다른 것은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돈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최고의 자리에 들어와서도 절대 만족이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만족을 채우려 해도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돈과 함께 이제 권력도 누리려고 합니다. 또 인기도 누리려 합니다. 그래서 돈은 돈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려 하지만, 돈과 세상은 절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결국 바닷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가시밭의 비유에서 가시밭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세상 염려과 돈의 유혹 때문에 말씀이 막혀서 자라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돈의 문제에 있어서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아니면 돈을 섬길 것인가? 를 결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했던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오늘 본문 아래 14절에 보면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말씀)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바리새인하면 사람들 앞에 보이려고 형식적이고 외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 즉 원문에 보면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결국 돈을 더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느냐? 아니면 돈이 있느냐?

만일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하나님보다 돈이 있으면, 우리는 절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절대 우리 마음의 중심이 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돈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돈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돈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돈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입니다.

1)돈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세상만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물질 혹은 돈 자체를 악으로 보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육신적으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육신적으로 가난하기에 영적으로도 가난하게 되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어, (육신적으로 가난하지만) 하나님으로 부요하게 되어서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일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 한이 되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돈만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결코 복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 자체를 악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돈에 집착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을 악으로 보셨습니다.

//또 성경에서는 우리가 가난하여서 남에게 꾸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부자가 되어서 남을 돕는 자가 되라는 의미의 말씀도 있습니다.

428을 읽어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요한 웨슬리도 그리스도인의 3가지 경제생활원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벌어라, 또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저축하라 그리고 또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베풀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빌4장에 보면 물질로 바울을 도와준 빌립보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필요한 물질을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416-19).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으로 가난한 것 자체를 복으로 보고, 또 부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2)그런데 또 이제 반대로 돈 자체를 선으로 보고, 또 부 자체를 무조건 복으로 생각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돈 그 자체를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중립적입니다. 문제는 돈을 가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예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으로서 기부천사들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목사님(김성애 목사)인 가수 김장훈은 자신은 집도 없으면서 지금까지 40억을 기부를 했습니다. 김장훈은 돈이 있어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할 생각을 하고 돈을 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김장훈은 더 많이 인기를 끌고 더 많은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복된 일에 쓴다면 그것이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돈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가나안땅에서 많은 물질을 복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을 하시고 난 다음에 이렇게 염려하십니다.

8: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결국 호세아서나 아모스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난이 아닙니다. 그들이 먹고 배불러서 교만하게 되어서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물질적인 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부분 초대교회 사람들은 고난과 가난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초대교회가 세상적인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니까 결국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딤전 617,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물질의 소유 그 자체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죄악 때문에 물질의 소유가 인간을 더 타락시키고 인류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친일파였던 이완용은 처음에는 독립운동단체의 대표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친일파의 제일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니까 결국 돈 때문이었습니다. 친일행적을 할 때마다 일제로부터 많은 재물과 토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나라까지 팔아먹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원인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월가에 모여서 오직 돈 그 자체를 복으로만 생각하고 우상으로 섬겼을 때, 그들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금 경제위기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금요구제예배를 마친 후 어떤 장로님이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라도 그들이 잠자리에 들 때는 자기 키만한 자리에서 누워서 잘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큰 집을 가져도 죽을 때도 차지할 수 있는 공간도 자기 키 만큼 밖에 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이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님을 고백합니다는 기도를 들을 때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돈이 아니라 마음의 행복입니다. 팔복에서는 예수님을 닮은 그 사람의 인격의 됨됨이가 행복의 기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돈 그 자체가 악도 아니고, 또한 절대적 선도 아니라면 돈을 어떻게 보아야합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돈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잠시 물려받은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즉 물질에 대해서는 항상 청지기로 살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도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지기는 오늘로 말하면 회사의 소유자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입니다.

회사의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소유주로부터 회사를 잠시 경영하도록 위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아무리 큰돈이 주어져도 그 돈은 절대 그 사람의 소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돈은 소유주의 뜻에 따라서 어떻게 바르게 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청지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소유주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돈의 청지기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물려받은 우리의 재능과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도 절대 우리의 소유가 아님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도 우리가 청지기로서 우리가 잠시 맡아서 돌아본 뿐입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교회에서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치려고 하니까 공부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때문입니다. /따라하시기 바랍니다.--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당연히 주의 교양과 훈계로서 가르치고, 양육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가 하나님의 손에 잘 자랄 수 있습니다. /

/어떤 청소년 사역전문가가 10년간 청소년사역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이 청지기의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가 잘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부모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에게 자녀를 완전히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예수님께로 나가게 하는 도구의 역할만 잘하면 우리 자녀들은 예수님의 손에 거룩한 자존감을 가지고 얼마든지 잘 자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만일 어떤 목사님이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그 교회가 목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그에게 위임하신 청지기임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물질의 복이 주어졌습니까? 그것도 여러분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터 잠시 물려받은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소유주와 청지기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소유주는 그 모든 재산이 다 자신의 것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지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청지기, 혹은 전문경영인은 나중에 주인이 계산을 해서 잘못하면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길 수 있습니다. 또 그 자리조차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불의한 청지기가 그런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우리는 돈에 대하여 소유주가 아니라 청지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종말 때만 아닙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에 대해서 셈하실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돈을 하나님을 위해서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거나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거두어 가실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예는 성도님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독교방송에서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간증들입니다. 그 사람이 육신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교만해서 하나님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치셔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이제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셔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청지기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는 자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모든 소유가 내 것인 줄 알고 마음대로 쓰다가 한방 맞고 또 다시 하나님을 찾는 그런 체험을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삶의 매를 맞기 전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양심의 매를 맞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을 통해서 날마다 우리를 판단하시고 셈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일을 잘못함으로 나중에 모든 소유를 잃고 그 자리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장차 내가 이 모든 소유와 자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내가 나가서 땅을 파서 농사를 짓자니 힘들어서 못하겠고, 또 나중에 돈이 없어서 남들에게 구걸을 하자니 창피해서 그것도 못하겠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를 속으로 생각했습니다(3).

그때 문득 기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빚진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5). 그래서 기름 백말을 빚진 자에게는 50프로를 탕감해서 오십이라고 쓰게 합니다. 또 밀 백석을 빚진 자에게는 20프로를 탕감해서 80이라고 쓰게 합니다(6). 그래서 나중에 이 사람이 청지기 직에서 쫓겨나면 그가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것은 마치 홍길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은 이 불의한 청지가가 한일을 모두 옳게 보신 것이 아닙니다. 8절에서도 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은 그 모든 행동이 아니라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혜의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불의한 청지지가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던 그 지혜를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장차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잃어버릴 미래의 때를 생각했습니다. 8절에 보면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여기서 이 세대의 아들들은 이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이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 세상 사람들이 빛의 아들들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불의한 청지기와 같이 이 세상사람들도 항상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언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요즘 불황가운데서도 삼성전자가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미래에 먹고 살 것이 준비되지 않아서 위기를 느끼며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불의한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항상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르 사는 지혜가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더욱더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해야할 미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없어질 종말의 그날입니다. 우리는 절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건, 재능이건, 사람이건, 무엇이라도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말씀 9절에도 보면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여기서 재물이 없어질 때는 마지막 종말의 때를 말합니다. 마지막 종말 때는 이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미래를 우리가 준비하면서 이 모든 것이 불타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다 불타고 나서 남게 될 것이 무엇입니까?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나서 남게 될 것은 먼저 우리의 인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으로 구제하고 돌아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에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종말에 불터서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절대 우리가 불의하게 얻은 재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의하게 얻은 재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면 그들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은 재물을 말합니다. 즉 이 땅에서 재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은 재물을 전도하여 영적 친구를 얻는데 사용하고, 또 약한 자를 돌아보는 일들에 사용한다면 나중에 그 모든 재물이 없어져도 저 천국에 가서 그들이 우리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더 많은 물질을 베풀어주시겠습니까?

바로 재물을 움켜쥐고 있는 자가 아니라 베풀어주는 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여기서 남의 것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가로 주신 재물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청지기로 사람을 얻는데 잘 사용하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재물들을 우리의 것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한달에 50만원씩 부인에게 전도비로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부인은 열심히 그 돈을 전도용품을 사서 쓴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그 분은 교회헌금만 아니라 특히 은퇴하신 목회자들을 위해서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김 목사 정말 이상한데, 내가 쓰면 쓴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채워주시거든-그래서 이 장사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재물로 친구를 많이 사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도 필요한 만큼 물질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 영원한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이 다 없어지더라도 내가 도와준 친구들에게서 영접을 받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입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적 신학 > 설교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꽃과 때(행7:30)  (0) 2015.03.21
광야와 불꽃인생(출3:1-12)  (0) 2015.03.21
소그룹의 의사소통(약1:19)  (0) 2015.03.14
소그룹의 오해(요일1:3-4)  (0) 2015.03.07
기다릴 줄 아는 삶(시40:1-17)  (0) 2015.03.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