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땅의 교회를 어떻게 바라 보아야합니까? 저는 이것을 안경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빨간 안경을 쓰면 모두 빨갛게 보입니다. 파란 안경을 쓰면 모두 파랗게 보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안경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는 보는 안경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기준들을 가지고 교회를 바라보는 안경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의 교회를 바라볼 때 사도의 안경으로 보아야합니다.
사도란 누구입니까? 사도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의 안경이란 하나님이 보시는 안경입니다.
오늘 본문을 사도 바울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하는 사도의 시각이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의 안경을 통해서 이 땅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교회를 볼 때 인간적인 안경이 아니라 사도의 안경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회를 보고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지상의 교회를 복음적 안경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또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인간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라고 보고,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무 어려움이 없는 완벽한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고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고린도교회는 지상교회의 모든 문제를 담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파당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청년 중에서 그 아비의 아내-즉 계모를 범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또 방언문제로 예배시간에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교회였습니다. 또 제사의 음식을 먹는 문제로 다툼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또 교회 안에 문제가 세상법정까지 가는 교회였습니다. 부활조차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또 사도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후서 사이에 눈물의 서신이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교회보다 사도바울에게 가슴 아픈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고린도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고, 또 거룩한 백성의무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이며,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복음적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2절 앞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거룩한 백성의 무리)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여기서 고린도교회가 인간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져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무리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와 같이 우리는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워지는 것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다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교회를 바라볼 때 철저하게 복음적 안경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갈라디아교회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고린도교회와 비교할 때 윤리적인 수준이 더 높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행하였고, 율법적 규례와 규칙을 잘 지키는 교회였습니다.
---세상적인 안경, 인간적인 안경으로 갈리다아교회가 고린도교회보다 더 거룩하고, 경건한 하나님의 교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는 복음에서 문제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갈리다아교회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도가 전해준 복음에 서지 못하였고, 예수를 믿는 믿음에다가 할례를 더해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도가 전해준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를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교회는 겉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준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연약하고 문제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있고, 복음 안에 있고, 예수님의 의와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교회라면--그 교회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의 교회이고, 또 거룩한 백성의 무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차원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까?
여러분 진심으로 내 의로는 하나님 앞에서 설수 없는 죄인인 것을 믿습니까?
오직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하나님앞에 나갈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고, 거룩한 백성의 무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도는 교회를 사랑의 안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고, 또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에게 주신 모든 언변의 은사와 지식의 은사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변의 은사라고 하는 것은 방언의 은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도 14장에 가면 방언의 은사가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에서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자기 마음대로 방언을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배가 혼란스러웠고, 이것이 골칫거리가 되는 큰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은 방언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방언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은사에 대해서 여기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전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합니다.
여기서는 지식의 은사가 문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모든 서신에서 동일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나 골로새서나 에베소서나 모든 사도의 모든 서신을 보면 후반부에 가서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런데 항상 보십시오. 그 모든 문제를 말하기 전에 내가 빌립보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에베소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칭찬합니다. 골로새교회에 대해서 먼저 감사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가 방언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먼저 감사하고 있고 칭찬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단점도 장점으로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결백증적인 남자주인공이 나옵니다. 길을 길 때 보도블록에 검도 밟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말만 하면 남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 사람은 여자주인공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여자가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때 그 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그 결백증적인 그것에 처음에는 정말 싫었는데 어느 순간 당신의 그 점이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아주 조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보면 “저 사람 참 차분해서 좋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쁘게 보면 저 사람은 너무 조용해서 쑥맥같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보면 “저 사람은 아주 적극적이야 힘이 느껴져”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나쁘게 보면 “저 사람은 너무 설치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의 사람과 지상의 교회를 바라볼 때 사랑으로 보느냐-아니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제가 간사할 때 어떤 간사님이 어떤 학교를 1년 정도 맡고 하는 말이 난 더 이상 이 학교를 못 맡겠다고 했습니다. 왜 못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너무 놀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지하지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거의 다 떨어지고, 2,3정명도만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대표간사하면서 두 학교를 맡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 학교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잘 논다”는 것이 제게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큰 모임을 하기 전에 당구장을 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으로 학생들과 당구장에도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큰 모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들이 잘 논다는 것이 오히려 활동적이고, 젊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두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운데 희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습니다. 말씀에 관한 부분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큰 모임시간에 그들이 부족한 말씀을 한 달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학생들이 30명 정도 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정말 재미있게 사역을 했습니다. 항상 모임을 마치고 나면 30분 정도 학생들이 집에 가지 않습니다. sfc정체성--이라고 해서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같이 서로 교제하고 헤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어떤 교회가 희망이 있는 교회입니까?
--지상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사람에도 장점이 단점 될 수 있고, 또 단점이라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안경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사랑의 안경으로 보면 비록 부족하지만 그 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칭찬합니다. 그 교회에 대해서 희망을 보게 됩니다.
또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들을 하나씩 차근차근하게 해결해가면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교회는 큰 부자가 없고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돈이 없어 큰일을 못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오히려 큰 부자가 없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협력해서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그 동안 교육이나 훈련이 없어서 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면--훈련과 교육이 안 되었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백지 상태에서 다시 훈련하면 교육할 더 좋은 기회가 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너무 같은 교인들이 오랫동안 지내왔습니다. 토박이들만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니야 그 교회는 오랫동안 이 교인들이 흔들리지 교회를 지켜왔으니 너무 감사하다 정말 대단한 교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더 열심히 밖으로 전도해서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면 되” 라고 말하면 됩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상교회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그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교회를 부정하거나 떠날 조건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그 교회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교회를 다닙니까? 지상의 교회가 아무 문제가 없고 어려움과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교회 다니는 지상의 교회는 항상 부족하고 연약하고 문제가 많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문제가 많지만, 모든 것을 사랑의 안경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든지 서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서로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소그룹시간에 해보았는데, 옆에 두 사람끼리 서로 칭찬해보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 대해서 한 가지 이상씩 칭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단점과 문제를 말하지 마시고, 사랑의 안경으로 서로 칭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고, 문제도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도바울은 교회를 믿음의 안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가지는 비전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인간적인 요소들 때문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비전을 가지는 근거는 오직 주님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지상의 교회가운데 함께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불꽃과 같은 눈으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으로 이 교회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바울은 비록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있지만--그 속에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마지막 날까지 이 교회를 점점 더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을 지금 믿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바라볼 때 사도처럼 믿음의 안경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과거에 부족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또 지금도 부족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또 앞으로도 분명 하나님께서 재림 때까지 이 교회의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쉬지 않고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고--또 우리교회를 점점 더 아름답게 성장시켜 주시고,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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