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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자살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고후1:3-11)

by 금빛돌 2014. 3. 7.

박영돈교수님에게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질문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받습니까 가 아니라------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나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살할 수 있는가 라고 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중생한 그리스도인이고, 그 안에 죽음의 권세를 이시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이 계시는 진짜 그리스도인은 자살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즉 이름만 성도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교회에 나가고, 또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기만 하면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보면 교회를 나갈 뿐이지 정말 그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사람의 참된 신앙은 죽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평소에 예수를 잘 믿는다고 생각해도, 죽음을 앞둔 위기의 순간에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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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히 위험스러운 것은 너무 유명인들이 자살을 많이 하다보니 그 자살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해있습니다. 또 심지어는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일들이 지금 생기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어르신 들이 자녀들에게 자살이 무엇보다 큰 죄라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자살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완전히 멸절하지 아니하시고, 노아와의 언약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시고 보존시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는 생명은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 생명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자살도 명백한 살인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살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을 죽이거나 자신을 죽이는 살인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살인자가 받을 형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22: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1:29, 32).

위의 말씀에서 살인자에게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한다", "성 밖에 있을 것이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다", "사형에 처해진다" 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지옥을 말합니다.

물론 살인자라고 해서 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타인을 살인을 했어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살의 죄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 사람은 절대 자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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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천국에 갔다, 좋은 곳에 갔다 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기대는 할 수 있습니다. 또 장례식장에 갔다면 위로차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되다보면 자살이 이 땅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으로 갈수 있는 도피처로 인식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의 순간적인 고통을 피하려다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 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에 대해서 동정론을 펼치지 말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자살이 하나님과 자신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가도 생각해보아야합니다. 특히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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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방입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자살을 암시하는 말과 행동들을 분명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죽고 싶다 고 말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죽더라도 잘 살아라 누구를 부탁한다 고 말한다든지, 갑자기 자기 주변을 정리하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해줍니까?

내가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런 나를 알아봐 달라는 것입니. 특히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자살을 보면서 우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이런 조짐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호들갑을 떨어서라도 잘 살펴야합니다.

--작년에 제가 잘 아는 여 청년이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는 선교단체도 같이 하고, 또 교회에서도 같이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대전에 살았습니다. 대학원 영문과 까지 나온 자매인데, 북한 선교의 꿈을 품고 중국동포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결혼을 하고 나니까 배신을 하고 이혼을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 자매가 만일 같이 나눔을 할수 있는 공동체나 교회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매는 수도권에 왔으니까 서울에 있는 몇 만 명 되는 교회에 출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왔다 갔다 해도 교제하고 아픔을 나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일 그 자매가 작은 교회에 나가서 같이 나눌 수 있는 공동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구역이나 소그룹공동체가 아주 중요합니다. 예배만 드리고 가서는 서로 잘 돌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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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자살을 하려던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 자살 대신 구원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빌립보 감옥의 간수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하는 말씀은 죄수들이 탈출한 줄 알고 자살을 하려던 간수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살과 구원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그 간수가 그때 자살을 했다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그 간수에게 있어서는 "자살하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자살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선포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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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이 아시아 선교를 하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격었습니까? 루스더라에서 돌에 맞아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밖에로 내침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평생동안 그가 거짓 사도라고 하는 잘못된 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합니다.

또 심지어 9절에 보면 마음에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고 하고합니다.

이 말은 바울도 정말 이제는 살수 없구나 죽고 싶다는 마음까지 먹은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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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울을 절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음에 살 소망까지 끊게 하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이나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위함인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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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의 사망에서만 건져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죽고 싶은 절망의 고통이 와도 언제든지 우리를 건져주시고, 또 건져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고 싶은 절망의 고통가운데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날마다 구원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주여 믿습니다--정말 그렇습니다.-사망아 와라 절망아 와라 내 주님이 이 사탄의 권세도 깨뜨려 주실 것이다--주여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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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절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오,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5 절에 보면 우리에게 고난이 넘친 것만큼 하나님의 위로도 넘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음과 같은 절망이 있습니까? 억울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위로를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는 자를 우리가 위로하게 해 주십니다.

이 한 주간 동안도 우리 주위에 절망과 낙심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로 위로해줄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살 자살 을 꺼꾸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살자 살자-- 끝까지 주님을 위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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