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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가 부끄러웠다(김기현)

by 금빛돌 2013. 7. 20.


나는 교회가 부끄러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쪽 팔렸다. 거창하게 한국교회 전반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몸 담았던 교회, 그것도 내가 담임목사인 교회, 그러니까 로고스교회의 전신인 수정로침례교회 말이다, 그 교회를 생각하면 창피스럽다. 미리 말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이야기이다.
 
메가처치는 아니더라도 나름 괜찮고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시작했던 교회는 시작하자마자 좌초되었다. 그 상세한 내막은 내가 피를 찍어 쓴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복 있는 사람)에 썼으니 재론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엉망진창이었다. 돌아보면 우습기만 한 사소한 일로,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맨날 지지고 볶는 일로 길게 잡아 5년 세월을 보냈다.
 
나는 죽이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그 세월을 견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아내의 사랑이었고, 성서와 독서였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설교 하나는 끝내줘야 했고, 목사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고유한 직무가 설교였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자 사명이기에 성경은 물론이고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그래서 작가가 되었다. 그 고통이 나를 다시 빚었다. 그것 때문에 죽을 뻔 했으나, 그것 때문에 살았다. 그러나 어디 가서 내가 목사라는 것을 말하기조차 무안했고, 내가 섬기는 교회 이름도 입에 담기조차 민망했다.
 
그러다가 5년 정도 흘러서 시끄럽던 문제와 사람들이 떠나고 안정을 찾았다. 물론 빈자리도 컸다. 그러나 빈자리만큼이나 끝났다는 안도감이 컸다. 그리고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것은 금세 빈자리를 새로운 이들이 채웠다는 것이다. 몇 달 사이에 20-30대 청년들이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그들과 대략 3년 가까이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교회에 활력이 넘쳤다. 모두들 교회가 좋다고, 설교도 좋다고 기뻐했다.
 
그럼에도 나는 교회가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나쁜 교회는 아니었다. 교회를 세습한 것도, 대형 건물을 지은 것도, 목사의 재정 비리나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도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만한 이들도 없었거니와 모두가 성실하고 착실했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성장하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기둥이 될 만했다.
 
하여간에, 교회 건물 없고, 재정 문제 없고, 목사가 무난하다고 해서 좋은 교회라는 것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귀할 정도로 혼탁한 시대이고,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니 우리 인간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공로 신앙이요, 율법주의가 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교회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나쁜 교회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교회가 되고,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그들이 존경받는 이유를 거칠게나마 요약한다면, 대형교회 목사인데도, 문제될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존경받는 것을 보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른 분들은 세습하는데, 그분은 깨끗하게 물러났고, 후임목사를 잘 세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들 95% 정도는 대단히 칭찬과 존경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누가 존경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시골이나 작은 교회 목사는 무능력자로 은연중에 무시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다가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고 다들 난리인데도 우리 교회 청년들은 희한하게도, 기가 막히게 쉽게 직장에 들어갔다. 작고 어려운 교회를 잘 섬긴 것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나 보다, 싶어 모두 기뻐했고, 박수 쳤다. 그런데 몇 달 사이에 리더 급들이 대부분이 취업을 하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등등의 건강한 이유로 떠났다.
 
급작스럽게 젊은 교인들이 떠나니 반짝 거리던 교회가 순간 주저앉았다. 그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이 부산이란 놈의 동네는 정말 살기 싫어’서 떠나려고 몇 군데 알아보았으나 될 듯 하면서도 결국 갈 곳이 없어 다시 주저앉았다. 그때 부산기윤실 사무국장이 되었고, 로고스서원이 세워졌고, 책은 예전에 비해 더 팔렸다. 그래도 나는 부끄러웠다.
 
몇 달을 기도하고 의논한 결과 지금의 가정교회로 옮겼다. 채 10명도 안 되는 교우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면서 교회 이름을 ‘로고스교회’로 바꾸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분의 교우들이 방문했다. 아내와 자녀는 두고 남자 성도 혼자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나머지 가족도 합류했다. 그 사이에 목사 혼자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패턴에서 모든 교인이 함께 설교하는 현재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교회를 부끄러워했던 것은 교회가 선한 일을 하지 않아서라는 측면 못지않게 교인 수가 작다는 것이었다. 개혁적인 목사로 비쳐진 이상 그걸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내심 부끄러웠다. 그랬는데, 가정에서 예배드리면서 교인 수가 작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장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예배당 구조에서는 몇 명 모였느냐가 신경이 쓰였지만, 가정에서 모이니 교인들은 가족이고, 가족에게 수가 많고 적음이 무엇이 문제이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2년 반이 되었다. 그 동안 예배의 갱신이 있었다. 이제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고 지역 사회를 위해 도서관을 세워 섬기는 꿈을 꾸고 준비한다. 성경 읽는 교회가 되고, 성경 읽게 하는 교회를 소망한다. 그리고 책 읽는 교회가 되고, 책 읽게 하는 교회를 꿈꾼다. 나는 내가 기특하고, 로고스교회가 자랑스럽고, 지금껏 인도하신 하나님이 사랑스럽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그리고 교회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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