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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 배경과 목적 (조병수 교수)

by 금빛돌 2025. 6. 14.

이유 없는 글이 없다. 흔히 사도 바울의 초기서신으로 알려진 데살로니가전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바울서신들이 대체적으로 그러하듯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사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교회는 사도에게 할 말이 있고, 사도는 교회에게 쓸 글이 있다. 따라서 다른 바울서신들과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의 입장과 교회의 상황을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보여지는 이 두 가지 관계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자신에 대한 언급과 교회의 형편에 관한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소개하고, 교회의 문제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사도 바울의 여행에 관한 진술, 사도의 입장에 대한 설명, 그리고 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주요한 내용을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사도 바울의 여행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를 중심으로 앞뒤의 시간을 진술하고 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 들어가기 전에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였다 (살전 2:2). 그런데 빌립보 전도는 무척 힘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고난과 폭행이 덮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여 데살로니가에서 전도를 하였다. 사도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로 들어간 것은 화제가 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살전 1:9). 하지만 데살로니가 전도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서도 많은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말하였다 (살전 2:2).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는 결코 헛수고가 되지 않았다 (살전 2:1). 복음은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달되었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살전 1:5-6).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신자들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살전 2:13). 그 후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다 (살전 2:17). 사도가 교회를 떠나고 나서 얼마 안되어 두 가지 문제가 교회에 발생하였다. 하나는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얼굴로는 떠나 있으나 마음으로는 떠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는 성도들의 얼굴을 보기를 열정으로 힘썼고 한 두 번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노력하였다 (살전 2:17-18). 하지만 이 노력은 사탄의 방해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말았다 (살전 2:18). 하는 수 없이 사도 바울은 아덴에 머물면서 동역자인 디모데를 대신해서 보내서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게 하였다 (살전 3:1-5).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다녀와서 사도 바울에게 사정을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살전 3:6-10). 보고의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교회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며, 둘째는 교회가 사도 바울을 사모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살전 3:6). 디모데의 보고에 힘을 얻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가늘 길이 곧게 열리기를 기도하였다 (살전 3:11).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가는 직행로를 위해서 기도만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뿐 아니라 편지를 썼다. 발로 못 가면 손으로라도 가리라는 심정으로!

2. 사도 바울의 입장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이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질문한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대답을 주고 있다. 이 편지의 첫째 목적은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5). 하지만 사도 바울은 조금 뒤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설명한다.

1) 전도

사도 바울은 먼저 전도를 위하여 어떤 방식을 취하였는지 진술한다. 그의 전도는 간사에서나 부정에서나 궤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살전 2:3). 그의 전도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대로 전도한다는 것이다 (살전 2:4). 그가 복음전도의 사명을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신실하다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정하심은 전도의 원인이며, 표준이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없이 전도가 시작될 수 없고,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따르지 않고 전도할 수 없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전도한다는 것이다 (살전 2:4). 그의 전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전도의 결과이며, 목적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미달하는 전도는 무의미한 것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넘어서는 전도는 무가치한 것이다.

2) 생활

또한 사도 바울은 생활을 위하여 어떤 방식을 취하였는지 설명한다. 그의 생활은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이나 사람의 영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전 2:5-6). 그의 생활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유모가 자기 자녀를 양육하듯이 하였다 (살전 2:7-8). 그는 복음전도를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주기를 즐거워하였다. 어머니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젖으로 먹일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준비가되어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영적인 자녀인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복음의 젖을 공급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아비가 자기 자녀를 교육하듯이 하였다 (살전 2:11-12). 그는 복음전도를 위하여 균형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영적인 아버지로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증거하였다. 아버지로서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설득하였다. 영적인 자녀를 교육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사실상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이같은 전도와 생활에 대하여 모르고 있던 바가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살전 2:1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자신의 애틋한 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소망이며 기쁨이며 영광의 면류관이었던 것이다 (살전 2:19-20).

3.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은 아마도 두 가지 방식으로 사도 바울에게 입수된 것 같다. 첫째는 소문이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각처에서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살전 1:8). 아마도 교회의 형편은 계속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이후에 교회를 떠난 사도 바울에게까지 도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는 질문이다. 이 편지의 후반부에 보면 세 번 "...에 관하여는"이라는 어구가 나온다 (살전 4:9,13; 5:1).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질의한 것들에 대한 대답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소문과 질문을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적인 상황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 때 편지를 보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 편지의 둘째 목적이다. 이렇게 하여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정체를 확연하게 알려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 소문

먼저 사도 바울은 소문을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에 관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도 바울에게 전달되었다. 교회는 균형잡힌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였다 (살전 1:3). 교회의 모습은 단순히 정삼각형적인 구도 속에 있었을 뿐 아니라, 각 측면은 또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 발전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에게서 믿음은 역사로 표현되었고, 사랑은 수고로 나타났으며, 소망은 인내로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지역의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살전 1:7).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조화있는 교회의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기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살전 1:2). 사도 바울은 이 감사와 기도를 교회에 알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감사와 기도를 담은 이 편지를 교회에 보냈다. 하지만 균형잡힌 교회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외적인 문제와 내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외적인 문제는 핍박이었다. 사도 바울에게 교회가 당한 환난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상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복음을 받는 시작점에서부터 핍박을 받았다. "너희는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살전 1:6). 교회가 많은 환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령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환난을 뚫고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렇지만 핍박은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당하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같은 백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당하였다 (살전 2:14).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사역을 하는 동안에 장차 교회에 환난이 닥칠 것을 미리 말해주었다 (살전 3:4). 하지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심각한 환난이 닥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교회가 굳은 믿음을 가지고 환난 중에서 요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디모데를 파송하였던 것이다 (살전 3:2-3). 디모데가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변함없는 믿음에 관하여 보고하였을 때 사도 바울은 걷잡을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살전 3:6-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살전 3:9). 사도 바울은 엄청난 기쁨을 이 편지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내적인 문제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세속적인 경향에 관해서 들었던 것 같다 (살전 4:1-8). 그래서 그는 교회에 거룩함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갈파하였다. 성도의 거룩함은 특히 음란과 색욕을 멀리하는 것이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근면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전 4:11-12). 근면은 귀중한 것이다. 자기의 일에 충실하고 자기의 손으로 일하는 것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비신자들에게는 윤리적인 덕이 되며, 신자들에게는 경제적인 득이 된다고 사도 바울을 이 편지를 통하여 가르쳤다. 게다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말씀사역자들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살전 5:12-13). 교회는 말씀사역자들의 수고와 목회와 권면에 빚지고 있다. 말씀사역자들의 땀흘리는 사역이 없이는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며, 안정되지 못하고, 정돈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씀사역자들을 알아주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편지하였던 것이다. 나아가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연약한 성도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도 바울의 귀에 들어왔다 (살전 5:14). 교회에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규모있고, 마음이 강하고, 힘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는 규모없는 사람들, 마음이 약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강한 신자는 약한 신자를 붙들어 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편지는 이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기쁨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기도에 열심하지 않는다는 것, 감사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성령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살전 5:16-22).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고쳐주려고 했던 것이다.

2) 질문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 질문이 편지로 왔는지 인편으로 왔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문의한 첫째 질문은 형제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살전 4:9-10). 형제사랑이란 문맥상 타교회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에 대하여 이 사랑을 행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사랑을 은근히 칭찬하려고 한다.

둘째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던진 질문은 죽은 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살전 4:13-18). 이것은 사실상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우선 사도 바울은 죽은 자들을 "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소망없는 세상사람들처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문제를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예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한 신앙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부활과 재림에 대한 신앙적인 확신이야말로 신자들에게 참된 위로가 된다는 것을 밝혀준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 편지를 읽음으로써 위로를 얻기를 소원하였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8).

셋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살전 5:1-11). 이에 관하여도 역시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가 재림의 급작성 (도적같이)과 필연성 (출산같이)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분명히 알고 경성과 근신가운데 사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가지고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 정확하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4. 정리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것과 교회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 편지는 사도가 부모와 같은 사람인 것을 밝혀주고 (살전 2:7,11), 교회는 "본받은 자" (살전 1:6; 2:14)라는 것을 밝혀준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목적은 사도와 교회를 정의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가지고 자신을 정확하게 소개하며, 교회를 분명하게 규정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편지로써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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