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표어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과 성경 전체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여호와를 기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생각할 때 창세 전에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시다가 갑자기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17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요17: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은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계셨고, 또 성자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부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아버지는 나를 영화롭게 하셨고 나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내가 십자기를 지려고 하는 지금도 나를 영화롭게 하여주시옵소서” 라고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서로를 영화롭게 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서로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어떻게 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려드렸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잠언 8장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8장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어떻게 계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성경학자들은 이 지혜가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8장 23.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예수님)가 세움을 받았나니
잠8:26.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고 합니다. 그리고 잠8장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8:30.내가(예수님) 그(성부하니님)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예수님은)그(성부하나님)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예수님은) 그(성부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창세 전에 예수님은 항상 성부 하나님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성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은 항상 예수님을 보시고 기뻐하고 계셨습니다. 또 예수님도 항상 성부 하나님 앞에서 성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실 때도 볼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보시고, “마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분들은 우울한 모습으로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서로가 서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편16편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창세 전에 절대 혼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들 사이에는 영원한 교통과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서로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지금도 흘러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쪽에는 지금도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울하셔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서로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심으로 하나님 앞에는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슬픔은 속으로 삼키려는 성격이 있고, 기쁨은 나누려고 하는 성격이 있다”고 했습니다(김형익목사).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동기는 하나님 안에 있는 그 흘러넘치는 기쁨을 인간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 안에 있는 그 흘러넘치는 기쁨을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을 인간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신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말도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그 형상을 나타내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인간이란 본질상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이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소요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제1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위하는 것입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까?
소요리 문답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으로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항상 신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까?
존 파이퍼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로 만족을 느낄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무엇으로 최고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돈으로 최고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돈이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의 성공으로 최고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신다면 세상이 우리 안에서 최고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어떤 사람을 최고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신다면 그 사람이 여러분들 안에서 최고고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 삶 속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내 삶 속의 우상이란 내가 내 삶 속에서 최고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내가 투자한 주식이 올라갈 때 그것으로 최고로 기쁨을 누리신다면 주식이 여러분의 삶의 우상입니다.
여러분 만일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인하여 최고로 만족을 누리시고 기쁨을 누리신다면 그 가수나 연예인이 여러분들의 삶의 우상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여러분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십니까? 기뻐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제일 영광을 받으십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합니다. 고 하는 사람이 제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 최고로 만족을 누리시며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생애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최고로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왜 우리가 여호와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까?
첫째,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육신의 정욕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남자와 더불어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모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그가 들고 있는 빈 물동이와 같습니다. 빈 물동이를 들고 우물에 가서 물을 채웁니다. 그런데 곧 그 물은 없어집니다. 또 그 다음 날에 가서 물을 채웁니다. 그런데 곧 그 물은 없어집니다.
여러분들 이 여인이 왜 정욕으로 인생의 만족을 누리려 했는데, 왜 매일 빈 물동이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인생의 안식과 만족을 누리려 했습니다. 철학에 빠지기도 하고, 17살에 여자와 동거해서 아이를 낳기도 하고, 마니교에 빠져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그를 위해서 30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의 나이 32살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기까지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옵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까?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고, 또 인간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원숭이에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두가지 죄가 있습니다.
렘2장 13절에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기쁨)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생수에 기쁨을 넣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백성의 두 가지 악이 무엇입니까? 생수 즉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죄는 자세히 보면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기쁨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면 우리는 어디에서 기쁨을 얻습니까? 물을 가두지 못하는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원한 기쁨이신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찾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찾지 못하면 어떤 것에서 기쁨을 찾습니까?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와 같은 세상의 것에서 우리의 기쁨을 찾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터진 웅덩이와 같은 곳에서 기쁨을 찾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조금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쁨은 터진 웅덩이와 같기때문에 곧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맛보았던 솔로몬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2:1. 그래서 향락에 몸을 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그것 또한 헛된 일이었다.
2. 웃음이란 얼빠진 짓이라, 향락에 빠져보아도 별 수가 없었다. 3.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져보았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내려고 하였다. --10.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 누렸다. 스스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나는 이렇게 즐기는 것을 수고한 보람으로 알았다. 11. 그러나 내가 이 손으로 한 모든 일(세상의 기쁨을 쫓는 일)을 돌이켜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하늘 아래서 하는 일로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여호와 하나님으로만 인하여 기뻐해야합니까? 이 세상의 기쁨은 모두 바람잡는 것 같이 헛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터진 웅덩이와 같이 금방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은 흘러넘치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은 한 순간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그래서 여러분 영원한 기쁨하신 하나님으로만 인하여 영원토록 기뻐하시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해야합니니까?
셋째,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절을 보시면 이스라엘백성들이 53일 만에 성벽을 건설한 후에 5일 만에 다시 모여서 학사 에스라를 부릅니다.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까? 그동안 허물어졌던 성벽이 건설이 되었지만, 자신들을 돌아보니까 그들 안에 마음의 성벽이 여전히 허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너진 마음의 성벽을 다시 건설하기 위해서 학사 에스라를 부릅니다. 그리고 본문 2절과 3절을 보시면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이릅니다. 그리고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 동안 모든 사람 앞에서 율법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 4절과 5절을 보시면 에스라가 율법 책을 펼 때에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듣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서울 서문교회는 지금도 성경을 봉독할 때 모두 일어서서 듣는다고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단순히 에스라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의를 갖추어서 서서 듣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찬양)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가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송축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하나님은 찬양합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십니다” 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때 회중들은 아멘 아멘 하고 두 번 응답합니다. 아멘이 무엇입니까? 진실로 그렇습니다. 또 그 사실을 진실로 내가 믿습니다 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찬양대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때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또 7절과 8절을 보시면 에스라는 강단에서 말씀을 낭독합니다. 이때 성경교사들과 레위 사람들이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율법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한 말씀이라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수많은 말씀을 읽고 듣지만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을 우리와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먼저 정확하게 그 말씀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깨닫는다는 것은 그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하나님을 보는 거울이자 자신을 보는 거울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또 자신을 봅니다. 그러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성경교사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이 날은 유대 종교력으로 칠월 일입니다. 이 날은 나팔절로서 새 해를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그래서 새해를 힘있게 시작하기 위해서 울지 말라고 합니다.
또 울지 말라고 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또 울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힘이란 “힘(사 27:5), 또는 능력(사 17: 10)”이라는 뜻도 있지만, “피난처(나 3: 11), 또는 산성(잠10:29)”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이 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마라.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주시리라(공동번역)”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우리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합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만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만이 우리의 진정한 힘이고, 피난처이고, 산성이고, 성벽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의 힘이 없습니까?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안전이 필요합니까?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피난처가 필요합니까?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산성이 필요합니까?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함으로 힘을 얻으시고, 능력을 얻으시고, 여러분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산성을 얻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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