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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아가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아2:10-14)

by 금빛돌 2023. 3. 4.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아가서가 단순히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과의 인간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한다면 성경책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왕과 술람미여인의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신랑이신 예수님과 우리가 서로 혼인잔치를 하는 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신랑이신 주님과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잠언서를 성소의 뜰에 비유를 했고 전도서를 성소에 비유를 했고 아가서를 하나님과 은밀한 만남의 장소인 지성소에 비유를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로 초청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니다.

오늘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나의 사랑이라 하시고, 어여쁜 자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무슨 사랑할 만 것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이것에 대해서 아가서 1장을 읽어보겠습니다.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서 보면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어떠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게달의 장막같다고 합니다. 게달의 장막이란 사막에 베드윈 족속의 천막을 말합니다. 이것은 검은 염소 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표면이 거칠고 낡은 천막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여인은 피부가 검을 뿐 아니라, 거친 천막과 같습니다.

//그러면 이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왜 이렇게 검고 거칠게 되었습니까? 술람미여인의 피부가 검고 거칠게 된 이유를 그 다음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술람미 여인이 피부가 검게 된 것은 햇볕에 많이 쬐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햇볕에 많이 쬐였습니까? 그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즉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 자신들이 지킬 포도원을 지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람미여인은 자신의 포도원조차도 지키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빠들이 많으면 여동생을 지켜 줍니다. 그런데 왜 이 오빠들이 자신의 포도원까지 지키게 해서 여동생의 피부가 검고 거칠게 만들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오빠들이 친오빠가 아니고 배다른 오빠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오빠들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여동생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오빠들의 포도원까지 지키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포도원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검고 거칠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술람미 여인은 내 피부가 검으나 아름답다고 합니까? 또 내 피부가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름답다고 합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이술람미 여인처럼 내 피부가 검으나 나를 흘겨보지 마라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다 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몇 주간동안 밤낮으로 아가서를 묵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술람미여인이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었나를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왜 술람미 여인이 비록 피부는 검고 거칠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 이유는 이 술람미 여인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흘겨본다 할지라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다고 당당하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에게 이런 건강한 자아상이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이런 건강한 자아상이 있어야 아름다운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아름답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 술람미 여인과 같은 당당함이 제일 먼저 필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강한 자아상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가 이 술람미 여인과 같은 건강한 지아상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술람미 여인이 이렇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술람이 여인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것은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술람미 여인은 8절에서도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하고, 9절에서도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하고 본문 10절에서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술람미 여인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녀는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을 통해서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에 얼굴도 잘생기고 외국에 유학까지 갔다 온 추장 아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과연 그 추장의 아들이 어떤 여인을 신부로 맞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추장 아들이 신부를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부를 맞아들이기 위해서 결혼치참금을 주기 위해서 신부의 집에 간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서 신랑이 결혼지참금을 준다고 합니다. 이때 신부의 가치가 암소 한 마리면 암소 한 마리를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보통은 잘하면 암소 한 마리 정도를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연 추장 아들이 몇 마리의 암소를 가지고 가는가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추장의 아들은 암소 아홉 마리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신부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는 외모가 전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집안도 절대 좋은 집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공부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장 아들은 암소 아홉 마리를 주고 그 여인을 신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났습니다. 그랬는데 추장의 아내가 되었던 그 여인이 놀라보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던 여인이 놀라보게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것만 아니라 영어도 자유롭게 쓰는 유능한 추장 부인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놀랍게 달라졌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추장 부인이 된 그 여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신랑이 자기 집에 왔을 때 신랑에게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왜 암소 아홉 마리를 가지고 왔느냐고 신랑에게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 신랑은 사람들은 당신을 보잘 것이 없게 보지만 나는 당신을 암소 아홉 마리보다 더 가치 있게 보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 전까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을 듣고 나는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 여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정도의 가치 있는 여인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추장의 부인은 술람미 여인과 같이 날마다 신랑이 이렇게 나를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생각하니까 그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은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얼마의 결혼지참금을 지불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얼마의 결혼지참금을 지불했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결혼지참금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계59절에 5:9--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기 위해서 당신의 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보실 때 우리의 가치는 암소 아홉 마리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의 피 값보다 더 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이 보실 때 우리의 가치가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10절에 보시면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포이에마)--”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만드신 바란 포이에마라는 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말입니다. 또 포미에마란 시에서 나온 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시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이것을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콩깍지라고 했습니다. 보통 남녀가 결혼을 할 때 사랑의 콩깍지가 쓰여서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부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콩깍지는 길어도 3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8:35-37). 그래서 아가서 86절에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술람미여인이 나는 검으로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날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여인과 같이 나는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도 날마다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을 왜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그 주님의 변함이 없는 그 사랑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으로도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감정으로도 이런 죽음보다 더 강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까? 왜 우리가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보다 다른 사랑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죽음보다 더 강한 주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에즈베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있기 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도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경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마십시오 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 설교자는 떠나갔습니다. 그 말씀이 있은 후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5절에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어떤 역사를 하고 계십니까? 머리 속에 지식으로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고도 아깝게 생각하지 아니하신 예수님에게 사랑을 갈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술람미여인은 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술람미여인은 매일 주님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날마다 내게 사랑의 입맞춤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포도주보다 다 낫습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처럼 무조건 우리에게 열심을 일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의 사랑을 먼저 갈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나의 사랑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전도단 이지웅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설교자가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채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채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더 갈구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부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술람미 여인이 이렇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 술람이 여인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것은 내면세계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술람미여인은 가정에서 여러 가지 일로 어렵고 힘들 일을 격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았을 때는 도무지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술람미여인은 얼마든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절망가운데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참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상황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 술람미여인은 피부가 검고 거칠게 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사는 여인들을 향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나는 비록 피부는 검지만 나의 내면은 아름답다 비록 내 얼굴이 거칠지라도 나의 내면은 솔로몬왕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예루살렘의 여인들 중에서 솔로몬이 이 술람미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기죽지 않는 당당함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결코 우리의 외모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라도 지키는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 고난 가운데 성숙된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가서 22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하나님은 온실 속에서 피는 수만의 장미보다 가시나무가운데 자라는 한 송이의 백합화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격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줄 아십니까?

나는 가시밭의 백합화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우리의 신앙이 더 아름답게 성숙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우리의 인격이 좀 더 예수님을 닮는 인격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술람미 여인처럼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고난을 받으나 나의 내면은 아름다우며, 비록 내가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의 지성소에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1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절대 우리 혼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우리 인간들끼리 서로 힘을 합해서 함께 일어나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해 주셔서--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일어나 함께 가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 가자고 말씀하십니까?

이제 겨울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비도 그쳤기 때문입니다(11). 지면에는 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새가 노래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2). 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었기 때문입니다(13).

--이제 고통의 시간인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봄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열매가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지에 눈이 녹아 있습니다. 가지에 물이 올라 있습니다. 이제 꽃봉오리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열매가 없지만 생명을 머금고 있기에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인생의 봄날입니다.

---여러분 삶이 그동안 겨울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삶에도 인생의 봄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인생의 겨울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여러분 인생에도 봄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인생에 봄날을 오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어설 수 있습니다.

---또 봄이 되었다는 말은 신앙에 있어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로이든 존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부흥을 주시기 전에 먼저 영적인 침체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부흥이전에 영적 침체를 주십니까?

영적 침체가운데 우리에게 영적 목마름과 갈급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영적 목마름과 갈급함을 통하여 영적 봄날을 주십니다.

//이제 영적인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새로운 성령의 기운을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시려 굳이 나 혼자서만 내려가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시려 할 때 우리가 힘을 합해서 같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우리의 안락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자신의 가정 속에 갇혀서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이만 붙들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tv에 갇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대신에 침실의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어려워도 잠만 잡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나의 자아라고 하는 은밀한 곳에 나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기에 나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곳에서 안식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안락한 곳에서 예배의 처소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배의 처소에서 우리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형식적으로 예배의 자리에만 나와서 우리의 얼굴만을 내밀고, 소리만 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주님을 만나는 희락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봄날이 되었으니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육신의 보금자리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부르짖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에 다 응답하시는 동부제일교회 아름다운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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