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아주 논리적인 사람입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했던 말을 또 반복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람에게는 아주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문맥상 맞지 않는데도 갑자기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계속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이야기를 할 문맥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종말로-즉 결론적으로 라고 하면서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를 오늘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은 바울이 아무리 많이 써도 바울 자신에게는 절대 수고럽거나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 무엇보다도 주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즉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상태가 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할 때 죄 짖기 쉽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이 상해있을 때 죄 짖기 쉽습니까?
당연히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이 상해있을 때 죄 짖기가 쉽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가 주안에서 오는 참된 기쁨을 상실하고 있을 때 시험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주님 안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으면 사탄이 시험하지도 않고, 또 시험하더라도 시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은 권면이 아니라, 명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주안에서 반드시 기뻐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위협과 도전에 너희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분이나 감정이 중요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분이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만큼이나 우리의 감정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행동할 때 대부분 무엇을 따라서 행동합니까? 이성입니까? 감정입니까? 특히 한국 사람이 경우에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 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때 왜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길거리 응원을 했습니까? 쉽게 말해 국민들의 기분이 고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응원을 받은 선수들의 실력도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감정적인 것을 두고 굳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사람들은 정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여행을 다녀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중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 경제서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시집을 제일 많이 사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인간의 감정을 존중하는 우리국민들을 못 따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이 기분이나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분과 감정이 하나님말씀의 통제를 받아야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친절하게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의 이성적 사고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생활에 대해서도 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우리가 분내는 것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4장26절에 보면 무턱대고 우리가 분을 내지 말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을 내더라도 죄를 짖지 말라고 합니다. 또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을 잘 처리하지 않고, 매일 매일 그것을 가지고 살면 마귀가 틈 탈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분의 감정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또 분을 내더라도 성급하게 분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야1장19-20절에 보면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분을 내더라도 천천히 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급하게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가 매일 실천해야합니다. 여러분 혹 분을 내실 일이 있습니까? 어떻게 분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분을 내더라도 천천히 내는 것입니다. 바로 분을 내지 마시고 하루를 보내십시오, 또 이틀을 보내십시오, 사흘을 보내십시오, 또 일주일을 보내십시오, 또 이주일을 보내십시오. 그렇게 보내고 나서 분을 내십시오. .
-이렇게 더디게 분을 내면 ---악한 감정을 실어서 분을 내지 않습니다. 또 그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감정이 썩이지 않게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을 낼 때 그 잘못한 것만 가지고 정확하게 분을 내지 않고--그 사람자체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부정할 때가 많습니다--이렇게 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서로 감정만 상할 뿐입니다.
----또 우리는 의분도 조심해야합니다--보통 우리가 분을 낼 때는 분명 의분입니다- 내가 잘하고 정당하고 옳고 상대방은 잘못된 경우입니다-이때 처음에는 내가 바른 동기로 분을 내었는데, 분을 급하게 내다보면 내 감정이 격해져서 말하는 가운데 내가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8절에 보면 “(의)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하고 합니다. 그래서 분을 내더라도 더디 내라고 합니다.
--또 성경은 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분을 낼 때 말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야고보서에는 분이 날 때는 말을 천천히 하라고 합니다--
-잠언15장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여러분 혹 분을 낼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분을 내더라도 말을 부드럽게 하십시오-천천히 차근차근하게 하십시오-성경은 우리에게 이것까지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생이 어릴 때 잘못한 것을 보면 올라와도 그 순간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몇 달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도무지 안 될 때 밤에 불러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다니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면 동생이 잘못한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합니다--그래서 제가 말합니다-그래 맞아야겠지-예-그러면 골목에 들어갑니다-그러면 동생이 땅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때립니다. 때릴 때도 절대 흥분하지 않습니다--그리고 또 데리고 다니면서 이야기 합니다--또 그리고 잘못했다고 동의하면 때립니다--그리고 새벽에 돌아옵니다.
----여러분 특히 화가 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기분 좋을 때만 아닙니다---분이 날 때-분이 격해질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합니다-
--이렇게 분이 날 때 더디내고, 분이 날 때도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나도 상하지 않고 상대방도 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잠12:16-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14장29절--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태내느니라
또 잠언15장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6장32절--같이 읽겠습니다(뛰울 것)-“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힘센 용사보다 낫다고 합니다-또 분일날 때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을 잘 보십시오. 진정한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성질을 잘 자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내 감정이나 기분을 잘 다스리거나 조절하지 못하면 절대 그 사람은 지도자로 세울 수 없습니다----(이것은 세상에서도 그렇고 교회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을 얼마나 중하게 보시는지 모릅니다-
--40살 때의 모세를 보십시오. 분을 참지 못해서 폭발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40년동안 광야생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다 받아줄 수 있는 온유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순간 성질을 내었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니지만-모세는 이것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잘 통제하고 조절하고 자제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 기분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신앙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여인 중에서 이런 의미에서 가장 신앙이 좋은 인물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마리아입니다. 여러분 처녀의 몸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어떻게 말했습니까?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제가 모 교회에서 우리 아내와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절대 이 결혼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장모님이 얼굴에 건선이 있어서 그것이 유전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무엇이라고 한 줄 아십니까?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성경적 세 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 창세기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고 했습니다. 둘째, 혹 그것이 유전이 된다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결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막으실 것입니다. 셋째, 혹 그것이 유전이 되어서 아내의 얼굴에 건선이 생긴다하더라도 제가 데리고 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두 주간 동안 대구에 있는 주암산기도원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두 주 산기도를 하시고 난 다음에 오셔서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내가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우리가 무조건 분을 더디 내라 참으라 자제하라고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한 감정을 반드시 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그 어떤 상한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스폰지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성경 =-개역성경 로마서 12장 8절에 보면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위란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의 감정이 상해 있을 때-우리가 아무에게나 말해서는 되지 않습니다---또 그것을 자신 안에 두고 처리하지 않고--- 마음의 상처가 되게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정말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라면 여러분이 감정이 상해있을 때--상한 감정을 들어줄 수 있는 권위자가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우리의 격한 감정이 잇습니다---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삼상1장10절“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합니다—또 삼상 1장 15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그의 상한 심정을 통했다”라고 합니다. 통했다라는 말은 솥아 부었다라는 말입니다---우리의 상한 감정을 하나님께 솥아부어시기 바랍니다-하나님 왜 그렇습니가 왜 그렇습니까? 저는 억울하고 답답합니다-고 하면서 부르짖어야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요즘 목양실에서 혼자서 소리를 내에 크게 기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찬송도 부르고, 또 크게 주여 하면서 부르짖으면 기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상한 감정을 치유해주기고, 평안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시편을 잘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시편은 우리의 모든 감정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길 수 있는가를 너무나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염려와 근심 때문에 잘이 잘 오지 않을 때 시편 3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답답하여 마음에 한 치의 여유도 없을 때 시편 4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시편 7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 시편 8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이 한걸음 한 걸음 담장 위를 걷는 듯한 위기라고 느껴질 때 시편 18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껴질 때 시편 22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 가운데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꺽어졌다고 느껴지실 때 시편 23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있을 때 시편 27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마음가운데 불안한 마음과 낙망이 생길 때 시편 28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내 자존심이 상하는 굴욕적인 일을 당할 때 시편 34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실신할 정도로 지쳐 있을 때 시편 61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한 없이 눈물이 날 때 시편 56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이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다고 느껴질 때 시편 44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의 상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또 내게 상한감정이 있더라도---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우리감정이 기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기뻐할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되어서 기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감정이나 기분이나, 기뻐할수 있는 조건이나 상황이 되지 않아도---------우리는 주안에서------주님안에서 기뻐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말로만 내 아버지다 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가아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왜 마십시까? 술을 마시면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기때문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술이깨고 나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령의 술에 취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답답한 일이 있으면 제가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그 문제에 집착해 있으면 절대 그 문제에서 해어날 수 없습니다. 답답할 때 은혜가 되는 설교를 듣고도 듣습니다(제 설교를 밤세도록 듣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설교를 듣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은혜 속에서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모든 답답함이 다 풀립니다---
--또 주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루 종일 십자가에 흘리신 피를 묵상합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밤새도록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모든 어두운 그림자 답답한 그림자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또 그 주님께서 이제 부활하셔서 사탄을 이기시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서서 -성령으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사람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의 함께 계십니다--우리 속에 세상을 이기신 부활의 성령이 계시니 우리는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분은 우리가 연약하여 탄식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같이 탄식해주십니다---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우리 주님이 장차 재림해오신 것을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이 오시면 첫 번째 하는 일이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 억울함을 다 씻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며 이 세상의 감추인 모든 것아 다 드러납니다--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이 날을 묵상하고 기억할 때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안에서 기뻐하며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또 또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답답함을 풀어주시며 --역전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주안에서 기뻐하며 살수 능력을 소유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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