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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현재의 부활을 경험하라(고전15:1-11, 빌3:10)

by 금빛돌 2018. 3. 31.

이 땅에 교회가 설립하게 된 중요한 두 가지 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가 영원히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굳게 지킨 교회입니다.

특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아니라 부활에 관해서도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수 없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내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노라, 내가 구원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죽음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면 살아있을 때 그 사람의 주장은 헛된 것이 됩니다. 그는 결코 구원주가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주장한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옳다고 인정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참으로 우리의 죄를 위한 십자가인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핍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에서 누구든지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까 사도바울의 생각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언제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습니까?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을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주의 십자가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구원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제일 중요한 복음의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복음) 가운데 선 것이라

여기서 말씀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합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너희가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전한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요동치는 이 세상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주안에서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그 가운데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심지어 우리에게 죽음의 위협이 와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도가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복음의 사실을 전하여 주었는데, 처음에는 믿었다가 나중에는 그 말씀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부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보통 부활이라고 했을 때, 어떤 정신이 부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이 부활하여 제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그 예수님의 부활이 미래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적 경험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현재적인 부활을 경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먼저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이 부활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소생과는 다릅니다. 간혹 어떤 사람이 죽은 줄 알았는데 깨어났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완전히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서, 또 다시 죽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상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있었는데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을 도둑질해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기절했다는 것을 말도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기절했다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도둑질했다는 것도 말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육체가 십자가에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육체가 죽었기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완전히 육체로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만왕의 왕으로 살아계셔서 세계만국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또 그 예수님은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으로 우리에게 부활하신 몸으로 다시 오시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서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고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절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2절을 다시 보시게 바랍니다.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부활의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확실히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굳게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8절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읽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또 예수님의 열두제자에게 보이시고, 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또 바울에게 보이셨다고 힙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이들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까?

베드로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다 도망했던 사람들입니다. 왜 도망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복음서에 보면 원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더욱이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었고, 또 그의 부활을 너무 확실히 믿어서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절대 믿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동시에 500여형제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개인적인 환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이고, 또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직접 보면 더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부활을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성경을 통해서 과거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의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의 소망이 됩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은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구마 밭에 고구마를 캘 때 먼저 한 개를 캐면 같은 고구마가 줄줄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육신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그와 같이 줄줄이 부활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과거에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미래에 우리의 썩어진 육체가 부활될 것의 모델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됩니까?

--고전 1542-44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우리 육체는 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 육체는 나이가 들면 병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육체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육체는 죽어서 땅에서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 할 때에 이제 우리는 병들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몸은 죽을 때 누구나 다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을 때 우리 몸을 욕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죽을 때 비록 우리 몸이 욕된 것이지만 우리가 부활 할 때는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몸은 다 연약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건강하다고하지만 우리 몸은 모두 약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땅에서의 우리 몸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병이 듭니다. 또 장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장차 부활하게 될 때 이제 이 몸은 더 이상 병이 없습니다. 장애가 없습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연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몸은 신령하지 못한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죄악 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내는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게 될 때 이 육신의 죄악 된 몸이 이제 완전히 예수님을 닮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을 가지고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은 절대 복이 아닙니다. 또 죄악 된 성품을 가지고 무조건 오래 사는 것도 절대 복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이 범죄 한 후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왜 이 땅에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실과가 없습니까?

인간이 죄악 된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은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이 병든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도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장차 부활하게 되면 병들지 않는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장차 부활하게 되면 예수님을 닮은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장차 영원히 부활하게 된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과거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장차 부활하게 될 첫 열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장차 미래에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으시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536-38)

그래서 여러분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세 번째 부활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며, 또 미래의 소망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다.

/1장을 보겠습니다.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현재에 이미) 베푸신 능력(부활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어떤 아이에게 아버지가 엄청난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주지 않았고, 옷 속의 단추에 숨겨두었습니다. 이 아이는 그 옷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옷 속의 단추에 엄청난 보물이 담겨져 잇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거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죽기직전에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옷 속의 단추가 엄청난 보물이라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이 아이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보물을 알지 못하여 평생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이 이미 베풀어져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이미 베풀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돈 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 건강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 부부간에 갈등과 같은 인간관계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 청년들은 취업의 문제와 결혼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 사업의 문제 일수 있습니다. 사역자들에게는 사역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안에 어떤 능력이 현재에 이미 베풀어져 있습니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서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져 있음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져 있는 부활의 능력을 우리가 어떻게 현재에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빌 310절과 11절에 있습니다.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현재에 이미 베풀어져 있는)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현재의)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의 권능은 우리가 죽어서 경험하는 부활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 져 있는 부활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장차 미래에 우리의 몸이 부활되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 가운데서 날마다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아래 고전 15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15: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죽음조차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인생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비결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날마다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간혹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남편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왜 우리 가정에 나만 희생하고 죽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이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왜 이 교회에서 나만 희생하고 죽으라 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진정으로 부활을 믿으십니까? 이 부활은 장차 미래의 부활만 아닙니다. 내가 현재에 죽으면 현재에 다시 살리시는 현재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현재의 부활을 믿으신다면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죽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을 날마다 일으켜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현재에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현재의 부활과 미래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또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육신이 약하여서 우리는 날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잡고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이 이제 끝이다 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이 살아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땅의 삶이 고달프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다시 살려주시는 현재의 부활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에 죽음으로 현재의 부활을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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