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샤이니의 종현이 자살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의 말이 그에게 하나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서에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원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노회에 정신과의사를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목사고시를 칠 때 제가 서기를 하면서 논문지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왜 정신과 의사를 하시다가 목사가 되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리 상담을 해주어도 그것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를 하려고 합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울증이 믿음이 있는 사람도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얼마든지 걸릴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도 노년 우울증에 걸리신 적이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잘못된 생각은 우울증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믿음이 가장 강하였던 엘리야도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는 “왕상19:4.-자기(엘리야)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바울도 너무 심한 고난과 압박 때문에 마음에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고후1:8).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우울증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겨울철이 되면 얼마든지 육신에 감기가 들 수 있듯이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도 얼마든지 걸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울증에 걸렸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울증을 어떻게 이기느냐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이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울증에 생기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증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한일 장신대의 김충렬 박사님의 글 등을 참고로 제가 정리해보았습니다.
1)첫째 우울증의 원인으로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삶에서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상실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상실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남편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는 경우입니다. 또 내가 평생 바라던 꿈이 좌절이 되어 상실이 되는 경우입니다. 또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가운데 주부들이 아이만 있고 “나는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를 기르는 가운데 주부가 자신의 존재감이 상실이 되는 경우에 우울증이 생깁니다. 또 자녀들이 다 장성하여 부모 곁을 떠났을 때 부모로서의 존재감이 상실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내가 평생을 하던 모든 일들을 그만두었을 때 우울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평생 수고하였는데, “내가 과연 얻었던 것이 무엇이 있는가?” 생각할 때 우울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 삶 가운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들을 상실했을 때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2)두 번째 우울증의 두 번째 원인은 실패로 인한 깊은 좌절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과거를 돌아보니 내가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실패했다. 또 지금도 계속해서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내 미래를 바라보아도 계속해서 실패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끊임없는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게 합니다.
3)세 번째 우울증의 원인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샤이니의 종현은 실패한 연예인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유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오롯이 혼자였다” 라고 합니다. 왜 그가 혼자입니까?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또 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너무나도 공허하고 허무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공허함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모두가 걸릴 수 있는 우울증을 어떻게 우리가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김성수교수님은 전도서를 통해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이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제일 먼저 현재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가 우울증에 걸리는 첫 번째 원인으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의 상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일수 있습니다. 또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었던 일이나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상실했을 때 그것을 현실가운데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깁니다.
이것에 대해서 전도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힘들어하시고 우울해 하십니까?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1절에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 지으시되”라고 합니다. 날 때만 아니라 죽을 때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내가 얻을 때만 아니라 잃어버릴 때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좋은 날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좋지 않을 날도 지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 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서 떠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던 일을 이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울증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단순히 내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언가 잘 못해서 내 자녀가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 경우에 이것을 모두 내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나 자신에 대한 무한 죄책감으로 돌립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 우울증에 걸리고 결국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 즉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는 경우조차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또 11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지으시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 때란 어떤 때를 말합니까? 내게 사랑하는 사람을 주실 때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실 때도 하나님이 보실 때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내게 꿈을 주실 때만 아니라 내가 바라던 꿈을 빼앗아 가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봄날만 아름다운 때가 아니라 인생의 겨울도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쁠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슬플 때도 하나님은 그때를 아름답다고 합니다. 내가 무언가 가질 때만 아니라 잃어버릴 때도 하나님은 그때를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몇 년 전에 페루에서 큰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영동교회에서 중고등부부장을 하시는데 믿음이 신실하신 집사님도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그 모든 일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또 우리와 상관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그 분이 우리교회 집사님이라면, 그분이 내 남편이라면, 그분이 내 아버지라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절대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조차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참된 믿음이라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조차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한 순간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한 순간에 모든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욥이 어떻게 말합니까?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로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모든 일 조차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조차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시고, 그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잃어버리지 않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시고, 또 내가 사랑하는 꿈들을 빼앗아 가신 때조차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그 모든 때를 아름다운 때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상실의 때)을 지으시되 (상실의 때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상실의 때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만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머물러 있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다면 우리는 절대 저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리는 상실의 아픔을 통해서 내게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즐거운 때가 있습니까? 그러면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셨습니까? 그러면 저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시고, 영원을 사모하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찍 데리고 가신 내 아들이 남편이 지금도 그 영혼이 살아서 주님의 품에 안겨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또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버린 때도 아름다운 때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시는 것 가운데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의 마지막 부분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상실하게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슬픈 때를 맞으면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슬픔을 주셨습니까?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면 왜 내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당한 이 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사람으로는 측량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슬픈 일의 시작과 끝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말은 반대로 하면 하나님은 그 시작도 끝도 잘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욥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시고 난 후 인생의 말년에 갑절의 은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어렵고 힘이 들어도 그것으로 “끝이다 절망이다 내 인생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그 모든 일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마지막에서는 합력에서 선이 되게 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상실의 때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3)또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버린 때도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가 하나님께서 제일로 나를 사랑하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제일로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아 가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 가시는 그때가 하나님께서 제일로 나를 사랑하는 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영원히 질투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시고 감사하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현재에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아름답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어떤 우울증도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전도서를 통해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2.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과 미래에 이루지 못할 것들 때문에 우울해하지 말고 현재를 즐겨야합니다.
우리가 우울해 하는 두 번째 원인은 인생 가운데 끊임없는 실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우울합니까? 내 과거를 돌아볼 때 모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내가 더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가고 싶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내가 이루지 못한 실패들 때문에 우울해합니다. 또 현재에도 계속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좌절감만 생깁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았을 때도 내가 바라고 원하던 일들이 이루어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심한 우울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과거에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우울해 하고, 또 현재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일들 때문에 우울하고, 또 미래에 내가 이루지 못할 것들 때문에 우울해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현재를 즐기지 못합니다.
/특별히 요즘 청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의 때를 누가 아름답다고 말합니까? 무엇보다 지금 청년들이 얼마나 그 청년의 때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습니까?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는 2500만명으로 늘고 있지만, 청년 실업자 수는 8프로로 계속 더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 때문에 요즘 청년들의 결혼연령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청년들이 청년의 때라고 하지만, 그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과 이루지 못할 것들 때문에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서 이 전도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2:10-11을 읽어보겠습니다.
“10 (내가 젊었을 때)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솔로몬은 젊었을 때 그가 마음으로 원하던 모든 것들, 눈으로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져보았습니다. 솔로몬은 과거 젊었을 때를 실패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성공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가 눈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말년에 돌아보니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1 그 후(젊었을 때 성공한 후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의 말년에) 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금 바람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은 아무리 우리가 잡아도 잡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바람과 같다고 합니다. 또 이 땅에서 우리가 잡으려 하는 모든 것들은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전도서에는 해아래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말을 29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에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절대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우리가 미래에 우리가 이루지 못할 것들 때문에도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이루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은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큰교회 많은 사람 종교적인기와 명성에서 자유하게 하소서).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허무주의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산속에서 무소유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헛됨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에 더 충실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9:7-10을 보시기 바랍니다.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이 전도서는 절대 허무주의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단순히 무소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모든 것이 허무하니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 현재를 죽이면서 살지 말라고 합니다. 또 미래에 이루지 못할 것들 때문에 현재를 죽이며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우울해 하지 말고, 현재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과 함께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어버렸다면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또 내가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즐겁고 기쁘게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2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2:24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2:14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현재) 자기 일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일은 다시 없다. 내가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손이 정하신 대로다(쉬운성경)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최고의 때가 언제입니까? 과거에 잘 나갈 때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내가 어떤 꿈을 이루었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현재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입니다. 세입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 행복을 짓밟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현재입니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일들 때문에 우울해하지 마시고, 미래에 이루지 못할 것들 우울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현재를 즐기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전도서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울증에 걸리는 세 번째 이유는 공허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성공했다 할지라도 공허하고 허전합니다. 이에 대해서 전도서에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일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허무입니다. 여러분 이 전도서에서는 무엇조차도 헛된 일이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전도서7:16절에서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또 전12:12에서는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그러면 이렇게 모든 것이 허무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도 놀라워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 두려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한분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의 뜰에서는 잠언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성소에는 전도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서는 아가서를 읽습니다. 왜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서를 읽어야합니까?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하나님 그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로도 공허하고 허무한 내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공허하고 허무한 내 마음을 채울 분은 오지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울하십니까? 공허하십니까? 그래서 도무지 내 마음을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울하고 공허한 여러분들의 심령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흘러넘치게 채워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