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왜 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초대교회와 같은 눈에 보이는 큰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고난일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있는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특별히 초대교회는 로마와 황제로 인한 극심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런 고난의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눈에 보이는 로마와 황제와 싸우지 마라, 그 로마 황제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 그런데 그 사탄은 계12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미 패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때가 얼마나 남지 않을 줄 생각하고 너희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또한 사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13장에 보면 사탄은 두 짐승을 통해서 성도를 괴롭힙니다.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인데, 이 짐승은 김정은과 같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성도를 괴롭히는 자입니다.
또 두 번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아닙니다. 이 적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육백육십육의 표를 받게 합니다.
“계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합니다.
육백육십육의 표는 눈에 보이는 표시가 아닙니다. 바코드도 아니고 우리 몸에 표시를 하는 베리칩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 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이마에 표를 받았습니다. 그 표는 어린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표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이마에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눈에 보이는 표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오른손과 이마에 육백육십육의 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백육십육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우리는 본문에서 해답을 찾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서 육백육십육을 무엇이라고 해석을 합니까?
이 육백육십육은 짐승의 수이고, 사람의 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수는 7입니다. 사람의 수는 6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의 표가 육백육십육이라고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권세가 아무리 강력해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성도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그 적그리스도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절대 그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절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은 한 호흡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불어버리시면 모든 것이 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왜 육백육십육이 사람의 수인데, 짐승의 수라고 합니까?
유다서에서 보면 짐승이란 이성 없이 인간의 본능대로 행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성 없이 인간의 본성대로 행하면 짐승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이후에 인간의 본성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육백육십육의 사람의 표와 또한 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육백육십육의 표를 가지고 장사를 하고 매매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러분들에게 다시 질문을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여러분들도 그 십자가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이제 여러분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음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의 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이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표를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여기서 보면 “내가 보니” 라고 합니다. 계14장에 보면 내가 보니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1절과 6절과 14절입니다. 그러니까 계14장에는 사도요한이 본 세 가지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보니까 어린양이 어디에 서 있습니까?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이 어린 양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시온 산에 서 있다는 것은 사탄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계12:17. 용(사탄)이 여자(교회)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여기서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자와 더불어 싸우려고 어디에 서 있습니까?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시온 산에 서 계십니다.
모래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온 산에 서 계십니다. 시온 산이란 원래는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데, 다윗이 승리한 후에 수도로 삼았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후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승리의 산인 시온성에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탄이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해도 모래 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아무리 강력히 역사해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시온산위에 우뚝 서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사탄의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탄의 시험으로 극심한 경제적인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사탄의 시험으로 육신의 질병의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시험과 고난을 주는 사탄은 모래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사탄과의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우편에 서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으면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사탄의 시험과 고난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승리의 산인 시온 산에 서 계신 예수님과 함께 누가 서 있습니까?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습니다. 계7장에 보면 이십사만 사천 명 구원받은 자의 숫자로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7:9)”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십사만사천 명은 상징적인 숫자로서 모든 구원받은 자를 나타냅니다.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마에 육백육십육의 표가 있다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마에 표라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속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편에 속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많은 물소리와 같고, 큰 우렛소리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폭포 밑에 가시면 그 많은 물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듣기지 않습니다. 또 천둥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29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렛소리 즉 천둥소리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천둥소리와도 같고, 많은 큰 물소리와도 같은데, 사도요한은 그 소리가 또 무엇과 같다고 합니까?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과 타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거문고타는 소리란 지금으로 말하면 하프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대해서 무서운 천둥소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달콤하고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와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탄의 권세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게 심판하겠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 내가 결코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구원받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 노래는 하나님께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사천명 외에는 결코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새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노래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 것이 없다 해도 내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만으로 인해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 사람들 즉 구원받은 모든 자인 십사만사천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자란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드는 음녀를 말합니다.
저는 이 음녀는 이단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단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하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이단들에 넘어가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믿음의 순결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받은 십사만사천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왜 구원받은 자를 어린양을 따라가는 자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한 것은 어린양은 희생과 고난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또 놀라운 축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희생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희생과 고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희생과 고난, 십자가의 길을 가면 반드시 우리가 최후에는 승리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요한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강해(19)추수와 심판(계14:14-20) (0) | 2017.12.08 |
---|---|
요한계시록강해(18)영원한 심판의 복음(계14:6-14) (0) | 2017.12.01 |
요한계시록강해(16)짐승과 666(계13:11-18)2 (0) | 2017.11.12 |
요한계시록강해⑮짐승과 666(계13:1-18) (0) | 2017.10.23 |
요한계시록강해⑭하늘에서의 전쟁(계12:1-17) (0) | 2017.10.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