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교인수양회에서 목장모임시간에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한 성격테스트를 할 것입니다. 예전에 목요 제자반에서도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목장별로 해보겠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도형이고, 또 하나는 친교형이고, 또 하나는 안정형이고, 또 하나는 신중형입니다.
이것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좁은 차 길을 건널 때가 있습니다.
주도형-늦었는데 빨리 건너가자 라고 먼저 건너갑니다.
사교형-무엇이든 혼자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이 가자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이야기 하면서 같이 건너갑니다.
신중형-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느냐 하면서 제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안정형-안 건너가면 건너간 사람을 정죄하게 되고, 건너가면 안 건너간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양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나 이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분유로 보면 주도형은 전체 인구의 3%, 사교형은 전체 인구의 12%, 또 안정형은 전체 인구의 60%, 신중형은 전체 인구의 16%입니다.
그러면 이 성격 중에서 제일 좋은 유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없습니다. 아니 모두 다 좋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중에서 어떤 성격유형이 제일 좋고, 어떤 성경유형이 제일 나쁘다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성격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대표적인 주도형은 바울입니다. 또 대표적인 사교형은 베드로입니다. 또 대표적인 안정형은 아브라함입니다. 또 대표적인 신중형은 모세입니다.
이 모든 성격들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성격이며, 또한 모든 공동체에 다 필요한 성격들입니다.
만일 공동체에 주도형만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공동체는 항상 서로 주도권을 두고 매일 싸우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사교형만 있으면 그 공동체는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원리와 원칙이 없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만일 안정형만 있다면 그 공동체는 안정만 추구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만일 신중형만 있다면 이론적인 원리와 원칙만 따지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서로 비판만 하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합니다.
“고전12: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격테스트를 통해서 먼저 자신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의 장점과 약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장점은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장점을 더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있는 약점은 공동체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 성격테스트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서로 보완해주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공동체가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겠습니까? 서로의 약점에 대해서 비난하비판하고 무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어떤 공동체가 정말 천국을 이루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영상을 통해서 본 것처럼 서로의 강점을 살리고, 서로의 약점을 서로 보완해주는 공동체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을 통해서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연약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첫째-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통해서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할 것이 있으면 절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머리를 의지합니다. 또 말을 너무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만 의지합니다. 또 의지가 너무 세거나 강한 사람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의 대표적인 경우가 구약에는 야곱이고, 신약에는 바울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도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 힘과 의지로 살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야곱을 직접 만나서 그의 환도 뼈 힘줄을 끊으셨습니다. 환도 뼈 힘줄은 몸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었고, 야곱의 강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이 평생 절름발이로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야곱이 평생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나의 의지(나의 강점)를 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평생 절름발이로 살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지팡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도구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임을 믿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자신의 지팡이를 의지해서 그들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야곱은 지팡이는 야곱의 의지를 꺽은 연약의 상징이자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통로가 되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사람을 돌로 쳐 줄일 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대표적인 주도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주도형인 바울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후1장“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숨기고 싶은 약점들이 있습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가정사에 있어서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습니까? 내 육체에 있어서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습니까? 또 지금 현재 내 삶 가운데서 무엇이든 숨기고 싶은-그것 때문에 나를 절망케 하고, 좌절케 하는 약점이 있습니까?
우리의 연약한 점들을 사람들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끄러운 약점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성과 경건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여러 연약한 것들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내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내게 사람의 가시들을 주신 것--내게 인생의 가시를 주신 것-내게 실패의 가시를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왜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사용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연약이 하나님의 능력 머무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신다고 해서--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서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뻔뻔한 것이고 무책임 한 것이고 완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사용하셔서--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시고, 또 우리의 약점들이 우리의 강점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연약함 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을 사용하셔서 그것이 그 사람의 강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점은 두려움이 많았고, 무엇이든지 잘 믿지 못하는 혈핵형으로 말하면 a형의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안정형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려고 두 번씩이나 자신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라를 통해서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을 잘 다루셔서 누구보다 담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약점은 그의 급한 성질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돌로 쳐 죽였고, 또 이스라엘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다고 해서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 약점을 잘 다루셔서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약점은 겁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작을 할 때도 밖에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장 큰 용사로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약점은 간통죄를 지었던 불의한 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잘 다루셔서 가장 공의롭고 정직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원래 우뢰의 아들이라고 해서 한 성질 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사람이었지만-하나님께서는 그를 잘 다루셔서 사랑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했던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다 연약한 자들이었고,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약점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게 하셨고, 그 사람의 강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약점을 하나님께 헌신의 제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약점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며, 강점이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사용하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강한 자라면 공동체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더 이상 공동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강점은 경쟁심을 일으키지만, 우리의 약점은 공동체를 만들어준다”
따라합시다. “우리의 강점은 경쟁심을 일으키지만, 우리의 약점은 공동체를 만들어준다”.
우리가 너무 강하면 모래알과 같습니다. 그래서 잘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토같이 약하면 함께 잘 뭉쳐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눈같이 약한 우리들을 함께 모아서 강한 눈덩이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서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까? 빛과 소금은 절대 혼자서 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그것 때문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또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함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떤 힘든 일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로 모이게 하시고, 그 약한 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일들을 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이 동영상을 올리니까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도 서로가 연약한 부분과 강한 부분이 서로 연합하여 돕고 의지하는 그날이 오는 날까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서로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들이 서로 연합하여 돕고 의지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동부제일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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