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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는 신이 주신 선물이었을까 (하일성)

by 금빛돌 2011. 4. 30.


 

 

생사 고비 넘고 덤으로 얻은 인생나누며 살 것"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20> 2002년 심근경색·위 종양 판정생사 기로서 기도해

기도 덕에 쾌유했다는 믿음 생긴 뒤 가치관 바뀌어

가족의 사랑·개인의 행복 넘어 나누는 삶 깨달아나는 심근경색과 위 종양으로 모두 6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힘들다고 했을 때 무의식 속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심장 수술을 받고 3개월 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나.1

나는 심근경색과 위 종양으로 모두 6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힘들다고 했을 때 무의식 속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심장 수술을 받고 3개월 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나.

 

 

 

 

골프를 가장 싸게 즐기는 방법? 백날 사랑해도 예뻐지지 않더라!

 

 

관련기사 힘든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이때 하나님은 반드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연약한 인간의 간절한 호소일 것이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찾은 것은 언제였을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려 했을 때였을까?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나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 그 나이 때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 특히 어른들은 모두 전능하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찾은 것은 헌병대 영창에 갇혔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이 상황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때 나를 구해 준 손길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군에서 높은 계급이셨기에 나를 영창에서 꺼내 주셨다.

 

그 다음에는 언제 하나님을 찾았을까? 헌병대 사건 이후로 하나님을 찾은 것은 병원에서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는 갑자기 수술대에 눕고 말았고, '살아서 이 방을 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2002년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방송 녹화 도중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병원에 갔는데 심근경색과 위 종양 판정을 받았다. 나는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의사들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도 울부짖으며 기도했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도와줬다. 결국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내 발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소원대로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비록 몸이 불편해서 앉은 채 하객을 맞아야 했지만 행복했다. 결혼식을 연기하려고까지 했던 딸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나도 그런 딸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아내의 사랑 또한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내겐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였지만, 병마와 씨름하게 된 이후로는 아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크게 느꼈다. 수술 3개월 후 나는 다시 야구장 마이크 앞에 앉았다. 해설자를 그만둬야 하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나로서는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었다. 20여 년 전 처음 마이크 앞에 앉았을 때만큼 설레고 긴장됐다.

 

심장 수술을 받은 뒤 3년 후에는 위 종양 수술을 받았다. 심장 수술 때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몇 분 전에만 힘들었다. 하지만 종양 수술은 달랐다.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간 피가 말랐다. '혹시 암이면 어떡하나?'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 '암에 걸려야 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 무사히 지나간다면 남은 생은 덤으로 알고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매일 그런 기도를 했다. 나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저 내 생사를 쥐고 있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간절한 외침이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다. 평소에는 자신이 운명의 주체인 양 행동하지만 X-레이 사진 한 장 앞에 모든 게 바뀌고 만다. 나는 내 운명에 대해 털끝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알 수는 없었다. 원래는 암 덩어리였는데 내 기도 때문에 악성이 양성으로 바뀌었는지. 여하튼 나는 그렇게 믿게 됐고 이후로 많은 게 변했다. 하나님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내 기도가 통한 건지 아닌 건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내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두 번의 입원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내 인생의 의미만 생각하고 내 가족의 행복만 생각할 때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어렸을 때야 부모님의 이혼으로 꽤 힘들었지만, 솔직히 나는 30대 중반 이후로는 인생이 제법 잘 풀렸다. 그만하면 야구 해설자로 인기도 얻었고 돈도 어느 정도 벌었다. 인간관계에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분명히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인생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보게 됐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통해 개인의 행복 이상의 더 큰 가치관들을 알게 됐다. 이제 나는 사랑이라는 게 연인이나 가족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고, 나눠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 내가 무슨 경지에 올랐다는 게 아니라 이전보다는 조금 더 겸손해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내게 닥친 병마는 오히려 선물이었던 것 같다. 나를 변화시켜 더 높고 깊은 것들을 보게 한,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그 선물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고 또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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