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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

by 금빛돌 2011. 4. 30.


 

 

 

이 글은 www.jesus-online.de에서 가져와 번역한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곳, 그곳이 거룩한 땅이다. 인류는 이 의미를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전에는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주장했던 대담한 말이다. 아니면 그가 삶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이해했던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허락하실 때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 것일까? 이에 대한 10가지 대답을 소개한다.

 

1. 스스로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는 고난을 수반한다.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들을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간을 솜으로 싸 놓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그들은 알고 있다. 자유는 인간됨에 속한 것이다. 결정의 자유가 없는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 보다 훨씬 나쁠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나쁜 세상은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으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사기꾼이나 도둑, 살인자 보다 더 위험한 사람은 없다(2:15-17).

 

2. 고통은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한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할 때 그렇다. 이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통이 없다면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병을 인식할 수 없고 의사를 찾지도 않을 것이다.

 

형벌에 대한 괴로운 압박이 없다면 범죄자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용돈을 주지 않거나 텔레비전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우리 일상의 무의미에 대한 괴로움이 없다면, 특정한 괴로움의 압박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다 - 그리고 훨씬 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도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되는 길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성경의 솔로몬의 예가 이를 나타낸다(1-12, 78:34-35, 3:10-18).

 

3. 고난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을 통해 고난을 당한다 -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고민하는 가운데 이것이 실제로 우리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의식할 수 있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우리의 능력, 용서하거나 보응하거나, 상심하거나 놓아버리는 능력 - 이 모든 것은 특히 고난 가운데 시험을 받는다. 모든 일이 평안할 때는 우리의 진정한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금과 은이 불을 통하여 순수해지고,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 압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성격의 강도도 어려운 시간 속에서 발전한다고 말한다(42:1-17, 5:3-5, 1:2-5, 벧전1:6-8).

 

4. 고난은 영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날카롭게 한다.

만약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고난이 가득한 삶은 어딘가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이생의 끝이 영원으로 가는 문지방이라면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의 말로라도 고난을 통해서 현재의 삶이 인간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일 뿐이다. 고난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헛되이 괴로움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슬픔, 그들의 가난, 그들의 배고픔과 고통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5:1-12, 8:18-19).

 

5. 고난은 우리로 놓아 버리는 것을 가르친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일과 우리의 생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지 모른다. 우리 몸은 점점 더 나빠진다. 뼈들은 쑤시고 눈은 침침해진다. 소화기능도 약해지고 잠을 자는 것도 점점 어려워진다. 문제들은 점점 커지고 우리 자신의 가능성들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날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면 노년의 저주는 동시에 축복이 되기도 한다. 모든 새로운 고통은 이 세상을 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우리는 놓아 버리는 것을 그리고 의연히 다음의 삶을 향하는 것을 배운다(12:1-14).

 

6. 고난은 하나님을 신뢰할 기회를 선사한다.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유명한 고난자는 아마 욥이라는 이름의 남자일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그는 갑자기 자신의 가족과 재산 그리고 건강을 잃었다. 이 모든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욥은 친구들의 비난을 듣고 있어야 했지만 하늘은 잠잠하기만 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갓 태어난 산에 사는 염소, 사냥 중인 젊은 사자, 둥지 속의 까마귀와 들소의 힘에 관해 이야기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사계절의 순환과 우주의 신비함을 눈앞에 펼쳐 보이셨다. 욥은 권능과 지혜를 갖고 계시고 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난의 시기에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1-42).

 

7.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신다.

그 누구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 보다 더 고난을 겪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위해 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기적인 인류의 고통으로 인해 그분만큼 울지 않았다. 그 누구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셨던,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주셨던 예수님만큼 고난을 겪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우리가 고난 받을 때,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요청하신다(벧전2:21, 3:18, 4:1).

 

8.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의 고난보다 더 크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제해주시기를 몇 번 간구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를 온전히 의지하라,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할 때 너에게서 특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응답하셨다. 질병은 계속되었지만 바울은 만족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9-10)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예수님 없이 건강하고 부유한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을 배웠다.

 

9. 위기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진다.

그 누구도 두려움과 고통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자연재해와 위기들은 우리를 다시 연합시킨다. 태풍, 화재, 지진, 질병과 사고들은 우리에게 아주 새롭게 동병상린의 감정을 가르쳐 준다. 갑자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금 인간이 그 어떤 물질적인 가치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서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 기억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우리의 능력 또한 자라간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우리가 온갖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온갖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고후1:4)”라고 썼을 때 의미했던 바이다.

 

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다.

이 진리는 성경의 수많은 예에서 볼 수 있다. 욥의 고난을 통해 우리는 단지 더 깊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치료를 받았고 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의 근원이 되었던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자신을 거부하고, 상처를 주고, 노예로 팔았던 사람들에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셨습니다(50:20)”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을 알게 된다.

 

출처: 새로운 삶-기독교 상담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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