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 충만에 대해서 오해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는 성령 충만 하기만 하면-반드시 어떤 은사나 기적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 충만하면 은사나 기적이나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 기적적인 은사가 없더라도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미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인격과 삶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 한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제일 부담스러운 사람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까운 사람일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비록 내게 잘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처럼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언제까지 기도해야합니까? 그 원수 같은 사람도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해야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원수 같은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를 위해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입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오주여 내게 이런 성령의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성령 충만 하려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성령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성령충만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성령님의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자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자고 계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호들갑을 떨어서 강청하여 깨워서 역사하게 만들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령 충만에 대한 제일 큰 오해입니다.
성령하나님은 분명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의 삶을 성령의 뜻대로 인도하려고 하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성령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계십니다. 능력을 불어넣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뜻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책임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우리에게 성령 충만에 대해서 말씀하기 전에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그 안에 성령이 임재 해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당시에도 성도가운데서도 술 취한 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오늘 본문에서 성령 충만을 말씀하기 전에 우리에게 술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성도의 술 취함과 방탕한 생활이 성령이 우리가운데 충만히 역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들도 일단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잃고 성령의 뜻과 상반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만일 성도님들 중에서 아직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분들은 빨리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여러분 삶 가운데서 계신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고, 그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마음속에 나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안심이다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기 술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앞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에베소서 전체 말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취함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장 2절부터 모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여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더 낮아지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교만하면 성령은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성령을 거스르는 성령의 역사를 훼방합니다.
또 성령은 우리에게 온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란 그것이 내 육신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그러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런데 우리 안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도 내 뜻과 맞지 않으면 절대로 순종하지 않으려는 완악한 마음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거스르고 훼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부르거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우리 안에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용서해주어라. 가만있지 마라, 네가 가서 먼저 화해해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육신의 생각을 끝까지 원수를 맺고 화해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 안에 성령을 위축시키고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거스르고 훼방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4장 30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성령의 인치심이란 우리가 마지막 구속의 날까지 마치 성령이 우리 안에 도장을 찍듯이 우리 안에 거하여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이 충만히 역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우리 안에서 근심하고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엡4장25절부터 보면 우리의 말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마음으로부터 받아 입으로 다 솥아 내고 있지 않습니까?
-엡4장 26절에 보면 분내는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분내는 말을 하면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를 급격히 위축이 됩니다. 분내는 말을 하면 성령이 역사를 훼방하는 것만 아니라, 사탄 마귀가 틈타게 됩니다.
--또 5장 3절에 보면 더러운 말은 우리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합니다. 특히 성도들끼리 편하다고 해서 음란한 말을 하면 우리 안에 게신 성령은 정말 울고 계시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성적인 농담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특히 우리는 남의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제일 맛있는 반찬은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을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 말들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울고 계시고 근심하고 계시고 탄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 또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거스르고 훼방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앞에 보면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 때가 악하니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거스르고 위축시키는 것은 지혜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뜻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기분과 감정대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기분과 감정대로 살아가면 아무리 성령충만하려고 해도 성령충만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억지로 성령충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감정충만 기분충만이지 결코 성령충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과 교회 안에 게신 성령이 마음껏 춤추실 수 잇도록 내어 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엡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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