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의 태도(벧전3:13-17)
오늘 본문을 보면 두 가지 고난이 나옵니다. 하나는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고, 또 하나는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17절을 보시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베드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기가 로마의 황제인 네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애매한 많은 고난을 받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만일 죄를 지어서 잘못해서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잘못해서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이다,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통해서 선을 위해서 고난을 받은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하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을 위해서 고난을 받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벧전3:13절과 14절을 보면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라고 합니다.
14절에 보시면 고난을 받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는 고난이 의를 위한 고난이라면 절대 세상 사람들처럼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아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3절에 보시면 “너희가 선을 행하면” 이라고 하는데, 문맥적으로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여 고난을 받으면 우리를 해할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네로황제를 통해서 육신적인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해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도 장차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육신의 고난이 있어도 천국에 가는데 있어서 우리를 해 할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여기서 우리가 그 어떤 고난을 받아도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해 할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권세가 비록 우리의 육체는 피곤하게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으로 인한 영혼의 평안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네로황제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언젠가는 물리쳐 주십니다(오 주여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도 항상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15절을 보시면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천국의 산 소망이라고 합니다. 영생의 산 소망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고난을 합력해서 반드시 선이 되게 하실 것을 믿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천국의 산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기 이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이 있어야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고난가운데서도 왜 기뻐합니까? 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나에게는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나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무엇보다 내게는 이 모든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 말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끝까지 선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우리도 악한 사람들과 같이 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한 양심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에게 이길 수 있는 길은 더 악하게 사는 것이 아니까 끝까지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끝까지 사랑함으로 미움을 이겨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서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있을 때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는 자들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 악하게 하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고난가운데서 같이 미워하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악한 세상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