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감당할 만한 시험(고전10:12-13)

금빛돌 2014. 6. 21. 15:56

우리는 인생의 시험에 대해서 항상 이만하면 다 되었다 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가지 큰 시험을 다 통과했기에 이제는 우리에게 시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시험의 산을 통과해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험의 산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이제 우리에게는 시험이 없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으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시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헤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여기서 선 줄로 생각한다는 말은 구약시대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제 모든 것이 다 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에게는 그 어떤 시험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를 했습니다. 바로의 극심한 압제가 있었습니다. 출애굽 할 때 바로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큰 시험을 통과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제 그들에게 그 어떤 시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물이 없는 광야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을 통한 광야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이란 이제 모든 시험이 다 끝이 났기에 더 이상 시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시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시험도 없을 것일 생각하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교만한 사람입니까? 내 삶 가운데는 그 어떤 시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누가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까? 내 삶 가운데 얼마든지 크고 작은 시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험을 항상 준비하고 있기에 시험이 와도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또 시험을 단순히 내가 당하는 시험만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시험만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이 당하는 시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면 우리 형제들이 당하는 시험도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는 항상 시험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의 시험이거니 아니면 나의 형제들이 당하는 시험이 우리에게 항상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당할 때 가지는 생각이 있습니다.

1)첫째 하나님 왜 나만 이런 시험을 당해야합니까 라는 생각입니다.

복음 송 가운데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순간에도/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 지라도/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하나님 다른 집의 자녀들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왜 내 자녀만 이런 시험이 있습니까?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다른 사람들은 아무 시험이 없는데 왜 하필 나만 이런 시험을 당합니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주위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나만 이런 시험을 당해야합니까라고 말하지만 우리 옆에 사람도 그와 똑 같은 질문을 다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이란 종류만 다를 뿐이지 우리 모두가 시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왜 나만 이런 시험이 있는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은 시험이라는 약봉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다. 이것에 제외가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시험이란 종류만 다를 뿐이지 그 시험을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모두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부자대로 당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있는 사람은 육체의 질병이 있는 사람으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대로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시험이 있었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을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시험은 모두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2)또 시험을 당할 때 우리가 가지는 생각은 이 시험은 우리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해 놓고 이런 시험을 주십니까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또 이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라 생각하고 낙심하고 자포자기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시험을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 하실 때 반드시 우리가 감당할만한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또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셔서 반드시 그 시험을 이기게 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감당할만한 시험이란 어떤 것입니까?

1)감당할만한 시험이란 첫째로,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사람이 그 시험을 감당할 만 하다고 보시니까 허락하신 시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절대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 시험이 감당치 못할 시험이라면 반드시 막으십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가 그 시험을 감당 할 수 있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욥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말했습니다. 욥이 이 시험을 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 종 욥은 그 시험가운데서도 끝까지 나를 부인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시키기 위해서 욥의 시험을 허락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실 때 욥이 그 시험 가운데 넘어져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 시험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만 시험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은조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장애인을 주시는 것은 그 가정이 그 장애인을 받아들 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된 가정에만 장애인을 허락하신다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하나님은 정말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시는 분이시군요. 시험도 성격대로 주시는군요. 아픈 것은 첨부터 잘 참던 지선이..밖에 나가는 것보단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농담을 잘하고.. 안좋은 일이 있음 혼자 속으로 신나는 노래 부르고, 딴생각해버리는 지선이.. 지나치다싶을 만큼 낙천적인 성격...이런 제 성격이.... 이 시험에 아주 제격이네요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어떤 시험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내가 충분히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보셨기에 허락하셨구나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 옆에 시험에 든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당신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보시기에 당신에게 그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충분히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2)또 감당할만한 시험이란--그 시험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감당할만한 은혜를 주신 후에 그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그 시험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18장에 아말렉과 싸움할 때 언제 그 싸움을 허락하셨습니까? 1617장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이신 후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능히 그 싸움을 이길 수 있을만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싸움을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도 먹지 못하고, 광야에서 배고파할 때 아말렉과 싸움이 있었다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충분히 배불리 먹이신 후에 아말렉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22장에서 언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믿음의 시험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처음 갈대아 우리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이 그 시험을 했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22장에 앞서서 아브라함과 사래의태에서 도무지 태어날 수 없는 가운데 이삭을 태어나게 하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이길만한 준비를 시켜놓으신 후에 그에게 그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말씀의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 분에게 큰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그 집사님께서 말씀의 은혜가 없었다면 그 시험가운데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미리 받았던 말씀의 은혜 때문에 그 시험을 능히 잘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시험을 당하고 있다면 절대 그 시험만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신다면 여러분은 그 모든 시험을 충분히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도무지 이 시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만큼 믿음이 큰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도 이런 일을 격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이 시험을 감당 할 수 없습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볼 때 도무지 이 시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가운데서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그래서 감당할만한 시험이란 처음 시험을 받을 때는 그 시험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당할만한 시험이란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 그 시험과 함께 그 시험을 감당하고 남음이 있는 넘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시험이 도무지 나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과 함께 동시에 주신 감당할 만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시험은 감당할만한 시험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을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광야는 아무것도 먹을 것 없는 광야입니다. 도무지 이스라엘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광야만 준비해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함께 하늘의 만나를 같이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그 광야를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서 광야는 시험거리가 아니라--그들의 역사상 가장 하나님의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광야가 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그 고난을 능히 이기도도 남는 위로를 주십니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이기고도 남는 넘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위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위에 어려운 시험을 받는 분들이 있다면 절대 동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시험과 동시에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과 은혜를 동시에 주십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험과 동시에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사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험 때문에 받은 은혜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위에 어려움과 시험을 당하는 분들이 있다면 위로는 하더라도 절대 동정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에 당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은 무관심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 사람을 동정하여서 불쌍하게 보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있다면 기도는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동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허락하실 때 -동시에 그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동시에 주시기에 그 사람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기도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고==두고 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괜히 도와준다고 하면서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위로를 받았는가 하면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어렵지 않았습니까? 힘들지 않았습니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고난과 시험을 주실 때 그 고난과 시험보다 더 큰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 받았던 은혜가 더 큰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에게 광야와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모든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은혜를 하나남께서 준비해두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광야가 가장 큰 은혜의 동산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본문을 다시 한 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사람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미쁘사(믿음직 스러우사) 시험을 허락하실 때--반드시 그 시험을 피할 길을 준비해두셨습니다. 이것을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피할 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실 때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피할 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시험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길입니다. 또 그 시험 때문에 시험에 들어 하나님에 대하여 낙심하는 길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길입니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낙심하과 좌절하는 길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분명히 하나님이 정하신 피할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시험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신 피할 길은 무엇입니까?

1)첫째는, 하늘을 향해 열린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다 길이 막혔을 때, 하늘을 향해 열린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과 시험가운데서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주님)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영적으로 더 성숙하고 깊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험이란 절대 괴롭고 힘든 길이 아니라-우리가 하늘의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축복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또한 현실적인 입장에서도 분명 하나님이 정해두신 피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두신 피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999가지를 막히고 실패하게 하시지만, 마지막에 남겨두신 1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깜깜한 먹지와 같지만 햇볕에 비추면 그 속에 구멍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깜깜해도 하나님께서 현실가운데 피할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없어도, 잡히는 것 없어보여도 이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할 길이 구체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가운데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시험이 있더라도 시험을 능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시험이후에 더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마지막으로 피할 길이란 말씀의 길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6절에서 고린도교회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넘어서면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이단만 아니라 사이비들이 생겨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 그들이 특별히 받은 직통계시가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시험을 당할 때 기록된 성경 말씀 외에 특별한 말씀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너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신구약66권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시험을 감당할만한 모든 말씀이 완전하게 충족되게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시험이 있습니까? 신구약66권의 기록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안에 시험가운데 위로가 있습니다. 그 말씀가운데 시험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 있습니다. 그 말씀가운데 우리가 시험가운데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험가운데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고난과 시험을 능히 감당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