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가정을 통한 교훈(삼상 2:12-21)
지금 여러분들의 가정은 뜨고 있는 가정입니까? 아니면 지고 있는 가정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두가정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엘리의 가정의 가정이 나오는데 이 가정은 지금 지고 있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18앞에 보면 이 엘리의 가정과는 대조적으로 사무엘의 가정이 나오는 이 가정은 지금 뜨고 있는 가정입니다. 18절 초두에 원문에는 그러나 라는 말로서 이 두 가정을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적으로 보면 엘리의 가정은 사사시대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정이었습니다. 엘리는 마지막 사사 겸 대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종교적인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엘리가 사무엘의 가정을 축복하여 그 가정에 자녀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능력 있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또 엘리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를 보면 오늘로 말하면 대형교회를 이루고, 그 자녀에게 세습을 소위 말하는 성공한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엘리의 가정은 현재로서는 사사시대의 모든 영광을 대를 이어서 누리고 있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가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무엘의 가정은 문제 있는 가정입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그의 아내 한나에게 후사가 없어서 브닌라라는 첩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브닌나와 한나가 서로 갈등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한나는 자녀가 없어서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눈물로 기도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로는 사무엘의 가정은 가장 낮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 두 가정이 현재로는 엘리의 가정이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지고 있는 가정입니다. 또 사무엘의 가정은 현재로는 가장 낮은 상태에 있지만 뜨고 있는 가정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저는 이 한 주간동안 이 말씀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가정이 엘리의 가정처럼 지고 있는 가정인가? 아니면 사무엘의 가정처럼 뜨고 있는 가정인가?
지금 현재 우리 가정에 문제가 없고 편안하게 영광을 누리고 있어도 얼마든지 우리 가정이 엘리의 가정처럼 지고 있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무엇보다 목회자의 가정인 저희 가정을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남들이 볼 때 아무리 좋은 가정처럼 보이지만 엘리가정처럼 되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지금 현재 우리 가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가정이 사무엘의 가정처럼 뜨고 있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는 과연 뜨고 있는 교회입니까? 지고 있는 교회입니까?
많은 서구의 교회들이 100년 전에 지금 우리보다 더 영광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구의 교회들은 거의 죽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실이 아닙니다. 지금 현실이 아무리 영광스러워도 지는 가정과 지는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이 어려워도 뜨는 가정과 뜨는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이나 교회가 지금 뜨고 있다. 지고 있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우리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 가정이 뜨고 있는 가정인지 지고 있는 가정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고 지금 우리교회학교나 청년들,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교회가 지금 뜨고 있는 교회인지 지고 있는 교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왜 엘리의 가정이 현재에 영광을 누리지만 지고 있는 가정인지, 그러나 사무엘의 가정은 현재는 어렵지만 뜨고 있는 가정인지를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그냥 한 귀로 흘려듣지 마시고 정말 우리 가정의 미래, 우리교회의 미래를 생각하시면서 마치 내 뼈를 깍는 듯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정과 교회가 뜨는 가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뱡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먼저 엘리의 가정이 왜 지는 가정이 되었습니까?
엘리 가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옛날 성경에서는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엘리의 아들이 행실이 나쁘고 불량자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행실이 나쁜 깡패와 같은 자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행실이 나쁘다 불량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악 한 자들이고, 하나님 보실 때에 쓸모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또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는 말도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가 13절부터 나옵니다.
13절에 보면 당시 제사를 드릴 때 기름은 태우고 살코기는 삶아서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함께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그 삶은 고기를 갈고리로 찍어서 모두 가져갔습니다.
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몫인 기름부분을 태워서 여호와께 바쳐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빙자하여 그가 원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제물의 기름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또 2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의 아들들의 문제는 그들이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도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과 제주에게 돌아갈 제물을 가로 채고, 또 제사를 돕는 여인들과 간음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18절에 보면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흰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21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앞에서 자라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엘리의 아들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이 지는 가정이고, 어떤 가정이 지는 가정입니까? 지금 우리는 생각할 때 우리 자녀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 어떤 대학에 갔느냐를 가지고 우리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서 우리 가정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사무엘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그들의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있으냐 에 있습니다. 또 우리자녀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그 유명한 거창고등하교를 가보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건물도 좋지 않고 시설조차 좋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시골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학교를 가서 제일 놀란 것은 그 학교에 돌 판에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는 학교의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다니는 학생들의 눈빛을 보았을 때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학교가 단순히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학교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 학교의 정신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이 있습니다. ①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②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③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④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⑤ 앞을 다투어 모여 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⑥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⑦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⑧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⑨ 부모나 아내,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⑩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학생, 세상을 따라가기 보다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학생으로 만들려는 것이 그 학교가 시골이지만 뜨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정에 미래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교회에 미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있으냐에 있습니다. 또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하는 자로 지금도 자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라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릴 때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키가 자라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가야 합니다. 또 우리자녀들이 자라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자라고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교회학교의 목표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르쳐도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점점 더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는 학생들로 가르쳐지지 않는다면 그 교회의 교육은 희망이 없습니다.
예배에서 조차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삶의 현장에서는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성적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심하고 기뻐하고 장래에 소망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질 것은 우리 자녀들이 지금도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고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하나님께 더 성숙한 신앙생활일수록 그 전보다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엘리의 가정에게 내린 하나님의 형벌은 어떤 것입니까?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예배를 드릴 때)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노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다 젊어서 죽게 하는 벌을 내리겠다는 말씀입니다).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또 남은 자손들도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자로 만들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엘리 가정의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전체가 이방인의 손에서 패하게 되고, 하나님의 언약궤조차도 빼앗기는 민족전체의 비극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가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제가 교회의 문제로 번지게 되고, 나중에는 민족적인 문제로 번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가정이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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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엘리 가정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까?
1)엘리가 하나님보다 자녀들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이 말씀에 보면 엘리가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더 중하게 여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자녀들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봅니다. 아니 자녀를 우상으로 섬기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다 해주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엘리의 가정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자녀를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살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의 가정은 현재에는 영광을 받고 있지만, 지는 가정이 되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녀를 망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자녀가 해 달라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우리의 자녀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무엘의 가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의 부모들은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드렸습니다. 그것은 사무엘은 하나님께 완전히 드렸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마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씩 제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주는 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는 일년 동안 사무엘을 위해서 그의 겉옷을 짓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겉옷을 지으면서 얼마나 어린 사무엘이 보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감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가 사사시대이기 때문에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했어도 그것을 무시하고 사무엘을 데리고 올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의 부모는 정말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부모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사무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또 엘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에서 제일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자신의 아들에게 준 것은 예배를 드릴 때 입는 겉옷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나는 사무엘에게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지을 때 기도하여 얻은 아이라는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삼상3:19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3: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아이로 자라면 자랄수록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이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가정이 현재는 보잘 것이 없지만, 미래에 뜨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절대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처럼 떠받들어 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나처럼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기를 바랍니다(엘리가정처럼 자녀들이 해 달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해주지 않아야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가정에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 말을 할 때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모습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한나처럼 위기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할머니 어머니--모습--
2)또 왜 엘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녀들이 되었습니까?
엘리 가정에는 진정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삼상3: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엘리는 자신의 자녀들의 죄악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실 줄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자기 자녀들의 죄를 금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들의 죄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사랑하니까 자녀에게 상처가 될까 하여 심하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자기 자녀를 망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가정사역전문가인 이기복교수는 가정교육에 있어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대화이고, 둘째는 훈계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부모는 자녀가 잘못할 때 훈계해야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그 부모의 훈계를 잘 듣고 순종해야합니다. 그런데 엘리의 집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자녀의 잘못을 이야기는 했지만 금하지 못했고, 자녀들도 그 말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 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여기서 초달이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 22장 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또 잠언 22장 17절에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또 잠언 23장 13-4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쉽게 말해서 어린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서라도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그 아이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대학 다닐 때 외국인 교회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어린 아이들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예배시간에 떠드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가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얼굴이 시퍼렇도록 아이를 때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아이도 예배시간에 떠드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이기복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부모의 신앙이 좋아도 훈계가 없으면 아이가 망칠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엘리의 집안이고, 또 다윗의 집안이었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신앙이 좋았지만 그의 아들들을 훈계하지 못해서 가정에 어려움을 격었습니다.
//왜 아이들을 훈계해야하는가?
이기복교수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선으로 향하는 발걸음보다는 죄악으로 치닫는 죄성과 소원이 강하게 숨어 있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실존“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안에 성령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기 전까지 부모는 그 자녀의 죄에 대한 채찍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반드시 자녀들의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합니다.
바로 이런 가정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가정이 될 수 있고, 지금은 문제가 있지만 장래에 희망이 있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은 교회의 삼대표지로 바른 말씀의 선포, 바른 성례전의 집행, 바른 권징의 시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연약한 사람들이라서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바른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른 훈계가 주어집니다. 그때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 말씀의 훈계를 바르게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되고,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지금 유럽교회에서는 동성애 성직자를 허용해야하느냐 말아야하느냐를 가지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줍니까?
그 동안 가정만 아니라 교회조차도 사람에게 맞추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죄를 징계하거나 치리를 하지를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미래에 뜨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상처가 되더라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상담도 중요한데 상담만 하다보면 죄에 대해서도 위로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상처를 받아야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죄의 소원과 욕망을 단호하게 꺽고 다스릴 줄 아는 교회가 미래에 뜨는 교회입니다.
//또 날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돌이 킬 줄 아는 교회, 회개를 축복으로 여길 줄 아는 교회가 미래에 뜨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도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가정과 교회가 이 세상에 희망이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한나의 가정처럼 현재에는 어렵고 힘든 상태에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뜨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