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③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라(고전1:18-31)
지난주에는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은 파당이었습니다. 어떤 파가 있었습니까? 바울파입니다. 또 게바파입니다. 또 아볼로파입니다. 또 그리스도파입니다. 바울파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모인파입니다. 또 게바파는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중요하시는 파입니다. 또 아볼로파는 지식과 지혜를 아주 중요하게 하는 파입니다. 또 그리스도파는 나는 어디에고 속하지 않고 오직 나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파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했습니다. 또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말아야한다고 했습니다. 또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를 때 파당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이 네 파를 좀 더 쉽게 표현하며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파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파니까 세례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게바파는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이기 때문에 유대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아볼로파는 헬라의 지식과 지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이기 때문에 헬라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파는 자기들은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기들만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니까 영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파당의 문제를 1장 10절에서 4장 마지막절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계속해서 이 파당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파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어느 파를 비판 합니까?
다른 파가 아닙니다. 바울 자신을 따른다고 하는 바울파, 즉 세례파를 제일 먼저 비판합니다.
그래서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을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다”는 말은 누구를 보고 한 말이겠습니까?
사도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은 바울에게 속해 있다고 하는 바울파, 즉 세례파를 두고 한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절대 세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례가 중요하지만, 세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혹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세례만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군에 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았는데, 많은 경우에 다시 세례를 받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란 내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습니다 하고 하는 것을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에 있을 때 진정으로 믿지 않음에도 무조건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예수님을 마음으로 진심으로 믿고, 세례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이 파당의 문제를 말하면서 제일 먼저 누구를 비판합니까? 자신을 지지하는 파를 비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나를 따르는데 너희들 절대 그렇게 하지 마라, 너희가 구원받은 것은 절대 세례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라 그러면 너희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김세윤교수님은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하도록 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오직 인간적인 자랑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자랑할 때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친척의 결혼식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의 아들이 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척은 만나는 모든 친척에서 자신의 아들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연대치대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 군의관으로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친척분이 아 그래 영대치대를 나왔다고 하니, 답답해하시면서 아니 영대가 아니라 연세대, 영대보다 더 좋은 연대치대를 나왔다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참된 모습은 그가 무엇을 자랑하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아들을 자랑하면 그 사람에게는 아들이 최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물질을 자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물질이 최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나온 대학을 자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는 학벌이 최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자랑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떤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서로 무엇을 자랑하느냐에 따라서 교회 안에서 서로 파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파는 자신들이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과는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아볼로파는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아볼로파 사람들은 헬라의 지식과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고상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고상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고상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사도바울이 “왜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 말은 어느 파를 염두 해 두고 한 말입니까?
아볼로파입니다. 아볼로파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또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말을 잘 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을 합니까? 18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당시 고린도사람들은 헬라의 철학에서 나온 지식과 지혜를 가짐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혜롭지 못한 것보다 지혜로운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식과 지혜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고상한 지식과 지혜로 어떻게 죄에서 구원을 받겠습니까?
또 지식과 지혜의 입장에서는 십자가는 너무나도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로서는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절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지혜가 더 지혜롭습니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더 지혜롭습니까? 25절에서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이 세상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또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최고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고상한 철학과 지식이 아니라 전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합니다.
다시 질문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모든 학문을 통달한 철학자가 더 지혜롭겠습니까?
아니면 사 영리를 전하는 사람이 더 지혜롭겠습니까? 당연히 인간의 그 어떤 철학과 지식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구원 얻는 지혜를 전하는 사람들이 더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게바파는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게바파는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들을 자랑합니다. 또 오늘 성경에 보면 게파바에 속한 유대인들은 능력과 표적을 자랑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는 홍해를 가르는 능력과 표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게바파에 속한 유대인들은 능력과 표적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22. (게바파에 속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게바파에 속한 유대인들은 신기한 능력과 표적을 구하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게바파에 속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 합니다.
여기서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왜 게바파에 속한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됩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은 능력이 있는 메시야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능력과 기적을 베푸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또 능력을 가지고 정치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메시야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는 자신들의 입장에는 무능력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25절을 보시면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십자가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의 능력)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보겠습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아볼파를 염두 해 둔 말)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게바파를 염두 해 둔 말)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아볼로파를 염두해 둔 말)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게바파를 염두해 둔 말)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주님만을 자랑해야만 한다)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에게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가 많아서입니까? 또 우리에게 어떤 혈통이 좋거나 가문이 좋았기 때문입니까? 또 우리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때문입니까?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입니다. 또 아무 능력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혜롭고, 능력이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렇게 지혜롭지 못하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 어떤 인간적인 자랑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자랑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도 아볼로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재미있는 말을 잘 하는 목사를 따라갑니다. 또 게바파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목사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도 능력과 표적을 강조하는 게바파가 있고, 재미있는 말을 강조하는 아볼로파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참된 능력입니까? 병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이 세상의 가장 큰 능력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또 무엇이 참된 지혜입니까? 재미있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참된 지혜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다, 내가 어떤 지혜를 가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자랑할 때 이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