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없이 흠 많은 狂人이었습니다
”
옥한흠목사님의 광인론 & 강의 내용 전체 정리
* 그는 광인(狂人)이었다. 광인이란 말은 그 스스로 지은 말이다. 미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없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어떤 전통이나 관례도 깰 수 있는 가슴에 불을 가진 자유롭고 열정적인 사람을 그는 광인이라고 불렀다.
그의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CAL)의 핵심 강의가 '광인론'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옥 목사가 1986년 처음 CAL 세미나를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광인론이란 제목을 자꾸 생각나게 하셨고, 스스로도 목회자가 미치지 않으면 제자훈련을 할 수 없다고 절감했기에 당시로는 생경했던 이 단어를 과감히 선택했다. 이후 광인론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많은 목회자를 깨우는 도구로 사용됐다.
* 광인론 강의 내용 전체 정리
-> 제자 만드는 것은 목회의 본질이다. 이것이 목회철학이어야 한다. 목회의 생명은 본질을 붙드는 데 있다. 목회의 본질을 붙드는 사람은 성경적으로 바른길을 찾아서 간다. 그러나 본질이 없다면 잘못된 곳으로 간다. 비본질의 것으로 실험하지 마라. 유리방황하며 헤메지 말라. 목회의 인생은 단 한번이다. 부디 본질을 붙들어라.
그렇다면 왜 제자훈련인가? 제자훈련은 교회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교회의 영적 체질이 건강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이것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병든 체질인 경우가 많다.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도 다 소용없다. 소화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체질이 바뀌려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게 하려고 제자훈련에 생명을 거는 것이다.
1986년도에 이 세미나를 계획하면서 어느 세미나를 카피하고, 모방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음에 “광인론” 이란 주제가 계속 멤돌았다. 그래서 광인론을 그때부터 강의해서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광인론을 들으면서 목회에 눈을 뜨신 분들이 많다. 어떤 목사님은 광인론을 듣고 나서 잠을 자다가 잠꼬대를 “미쳐야 해, 그래 미쳐야 해”라는 목사님도 있으셨다. 사도바울도 미쳤다. 예수도 미쳤다. 나도 미쳐야하지 않겠는가?
* 누구나 한 인생을 살면서 내 생명을 걸어도 좋은 확신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 미치게 되었다. 그가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손숙씨가 장관을 하다가 손을 들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는데 그때 쓴 글이 있다. “그여자”를 하면서 공연을 며칠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 무대를 떠나 장관을 한 외도를 용서하시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극 하나에 내 인생을 걸고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밤을 세워도 행복했던 그 순간을 되찾게 해 주소서”
이때 작품이 내 가슴속에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이 연극은 나를 구원해 주고, 나를 일으켜 주었다. 나를 살린 것은 바로 연극이었다. 무대는 무너지고 있는 나를 구원해 주었다. 인생이 힘들어질수록 무대는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나를 치유해 준다. 나는 매일 한없는 감사로 관객을 만난다.”
그녀는 연극에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역하는데 연극과 비교하는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감사와 감동이 있는가?
어떤 면에서 제자훈련은 미쳐야만 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미쳐야 제자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우리가 미쳐야 하려면 2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1. 미치려고 하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론적인 신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론이 없이 이유 없이 미치면 그는 정말 바보다. 그 이론이 바로 신념이다. 이 신념을 발견한 사람은 마음에 불꽃이 튄다. 이것이 열정이다.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것이 비전이다. 이러면 미치게 된다. 이렇게까지 되면 미치게 된다. “한번뿐인 인생, 내가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뛸 것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 누구나 어디에 미치려면 그 동기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누구나 위기가 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위기가 기회가 된다. 처음 대학부를 지도한 교회에서 대학부가 빈약했다. 서울공대 1학년에 다니는 안수집사님 아들과 함께 에 대학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학생이 네비게이토에게 반해 있었다. 그 학생에게 네비게이토에 빠지지 않는 조건으로 가서 배워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나누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있다.
* 캠퍼스 선교 단체에는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 3개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에 이 3가지가 없었다.
1. 복음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는 복음에 대한 감격이 없었다. 복음에 대한 감사, 복음으로 인한 눈물,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다. 선교단체 학생들이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전도하고 있었다.
2. 양육이 있었다. 영적으로 서로 성숙해지도록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는 사람을 키우는 정신이 없었다. 일만 시키지 제대로 집중하여 가르치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사람이 자라지 않고 일만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3. 비전이 있었다. 민족이 복음화 되는 것이다. 세계가 복음화 되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비전이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예산을 타서 친목회하고, 행사하고 이벤트 할 것을 꿈꿨다. 비전이 사라진 청년, 비전이 사라진 교회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왜 한쪽에는 생명이 있고 열매가 있는데 왜 한쪽에는 생명이 없고 죽음만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눈으로 제자훈련에 눈을 뜨게 되었다. 목회의 생명이 복음, 양육, 비전을 심는 제자훈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몇 명의 학생들을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1년 6개월이 지나고 제자 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변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학부에서 썩어서 밀알이 되어주었다. 이런 형제들과 함께 제자훈련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옥목사는 미쳤다. 학생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미쳐버렸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주일 저녁 예배 설교, 심방 별로 힘들지 않았다. 푸대접도 서럽지 않았다. 박봉도 신경쓰지 않았다. 제자훈련에 미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미쳐있었다.
* 한 사람 한 사람에 미치는 것!!! 이것이 목회의 생명이다. 그 구체적인 적용이 사람을 세우는 제자훈련이다. 사람을 키우는 비전이 없으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다. 교회에서 많은 것을 해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도록 하지 않는 것은 목회가 아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에 미쳤던 것이다.
그런데 선교단체의 약점이 있다. 그것은 교회론이 넘 약하다. 그런데 신학적인 건강하고 든든한 이론을 가지지 못하고 미친 것은 일찍 말라버릴 수 있다. 그 생명이 길지 않다. 뭔가 평생을 몸 바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찾으려고 유학을 갔다.
혼자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틈틈이 제자훈련에 대한 정보를 연구했다. 제자훈련에 관하여 잘 아는 좋은 교수를 만날 수는 없었어도 도서관에 박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 왜 제자훈련, 평신도를 왜 시켜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의 대답을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노력을 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웨스트민스터 서재에 들어가서 한 책을 발견했는데, 한스큉의 교회론이었다. 그 책의 일부를 읽고 너무 감격했다.
그 후에 제자훈련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3달 만에 개척을 했다. 그 당시 기성교회에서 요청이 왔는데 유혹이 엄청났다. 제자훈련을 기성교회에서 하면 싸우면서 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준비작업만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 때 당시 41세인데 너무 늦었다. 목회는 한번인데..7월 앞당겨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9명 데리고 시작했다.
그 당시 한사람이면 된다고 확신하면서 미쳐버렸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제자훈련에 미치면서 제자훈련 과정을 통해서 직접 가르쳐 키워서 배출된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의 기반이 되었다. 성도들이 변화되니 무섭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성경에서 잘못된 신앙생활과 바른 정체성을 훈련을 하면서 발견했다. 그 말씀들이 그들의 인격, 가정, 삶을 흔들었다. 은혜의 지진이 훈련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계속해서 한 길을 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자훈련이라는 한 길을 갔기 때문이다.
* 청년사역연구소 생각
한 길을 가셨던 분 옥한흠목사님에게는 성경을 파고드는 치열함이 있다. 방법론이 아닌 목회 본질을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다. 그것이 끝까지 목회자다운 목회자로 자신을 절제하며 근신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달려가게 한것이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혼란과 혼돈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사리사욕이 자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복음이 아닌 성공의 복음이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리잡고 잇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자기 소위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혼돈과 공허함이 찾아 온다. 그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자가 먼저 제가가 되어 제자를 낳고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넣게 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칭의만 붙들고 성화를 놓치고 있는 모양새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백번 옳은 말이고 참 좋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삶이 빠져 있으면 성화란 없다. 제자는 성화되어 가는 사람이다.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시대 과제는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는 것이다. 목회자가 먼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면서 동시에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돕고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이것이 미치는 것이 광인이 아닌가 싶다.
광인론, 제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강의입니다. 너무 좋아서 공유하고자 기록으로 남깁니다. 더 자세한 것은 책을 사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