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새벽기도)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편)
오늘 이 시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할 때 쓴 시입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다윗이 자신의 의로움과 결백함을 고백합니다.
1절에 보시면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합니다.
또 3절에 보시면 심지어 주님께서 밤에 내게 오셔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또 4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모든 일에 삼가며 포악한 길을 가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결백함과 의로움에 근거하여 6절에서 12절을 보시면 악한 사울의 손에서 자신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대해서 응답을 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또 7절에 보시면 주께 피하는 자들에게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기이한 사랑은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또 8절을 보시면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32장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신3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된 백성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고 합니다. 또 독수리가 새끼 위를 너풀거리듯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합니다. 다윗은 신32장에 근거해서 자신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또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9절에 보시면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즉 “사울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10절을 보시면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마음이 기름에 잠겼다는 말은 살진 고기를 먹어서 배가 불러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배가 불러서 더 이상 하나님께 대하여 아쉬운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즉 교만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술로 교만하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너를 도와주실까? 너의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하면서 교만한 말을 합니다.
또 11절, 12절을 보면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사울의 무리들은 다윗을 노려보고 있다고 땅에 넘어뜨리려 합니다. 또 젊은 사자같이 은밀한 곳에 엎드려 있다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이에 해서 다윗은 13절에 보면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사실 다윗도 얼마든지 자신의 무력으로 사울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악인을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14절을 보면 “14.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합니다.
이렇게 다윗을 괴롭히는 사울은 주님께서 주신 재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고, 또 자신의 자녀에게 자신의 재물을 물려주고, 또 그 다음세대까지 재물을 물려줄 수 있는 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지금 다윗 자신과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은 이렇게 가난하고 배가 고픈데, 사울왕은 자신의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삼대까지 물려줄 재물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속에서는 잠시 사울을 부러워하는 말처럼 보입니다. 시73편에도 보면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고 합니다.
이렇게 잠시 사울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말합니까?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여기서 깬다는 말은 영적으로 깬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할 때 잠시 사울왕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잠깐의 영적인 잠이었습니다. 이런 잠깐의 영적인 잠에서 깨고 보니까 절대 사울 왕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시편73편의 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악인)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영적인 잠에서 깬 후에는 사울 왕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얼굴로, 주님의 형상으로만 만족합니다.
/오늘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완벽한 의를 가지고 기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의를 의지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렇지만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2)둘째는, 악인에 대한 모든 심판을 철저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무리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 했어도 그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 대해서 직접적인 심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그를 심판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는 원수들조차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제 다윗 왕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세 째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 나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통함을 잠깐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아무 것이 없어도 오직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면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