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연구/호세아

호세아강해⑦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둠(호8장1-14절)

금빛돌 2013. 3. 16. 20:38

 얼마 전에 어느 대기업의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 대기업은 우리나라 제일의 대기업이고, 그 업종은 세계 제1의 업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대기업이라는 곳도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을 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요즘 유명하다고 하는 톱스타들도 한순간 실수하거나 방심하면 그들의 인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기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가 있고, 또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가수도 한번 공연이 취소됨으로 곤경에 처해있다고 합니다. 또 나름대로 의식도 있고 인기가 있다고 하던 영화배우도 대부업 광고에 한번 출연한 것 때문에 한순간에 그 사람의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영원히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돈이 있다 해서, 또 그 사람이 큰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습니다.

58절에 보면 기브아 라마 벧아윈이 나옵니다. 이 지명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의 요새였습니다 그런데 기브아와 라마와 벧아윈에서 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이 울려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말씀에 불순종했고, 또 하나님보다 사람의 말을 더 의지하고 따르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때 그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요새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좀처럼 소리 없이 시작되다가 나중에 사자처럼 소리 나게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고 합니까?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성전도 안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장 안전하고 생각했던 여호와의 성전에서 심판의 나팔이 울려집니다. 그래서 그 성전위에도 대적이 독수리처럼 너풀대다가 덮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악을 행하고, 잘못된 지도자를 세우고, 성전 안에 우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조차조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온전히 서있지 않으면 교회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장차 이스라엘에게 당할 외부적인 큰 심판과 어려움, 대적들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외부적인 대적을 허락하십니까? 심지어 여호와의 집안에서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외부적인 대적을 허락하십니까?

 

오늘 우리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한다 해 놓고 왜 내게 환경적인 어려움주십니까? 왜 내게 외부에 어려움 주십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외부족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환경을 원망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외부적인 어려움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문제를 있게 한 나 자신을 살펴 보아야합니다.

이것이 7절에 있습니다. 7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은 작고 미미합니다. 바람은 이스라엘에 내부에 있는 죄와 불신앙의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작은 죄의 바람을 가만히 두면 장차 광풍이 나타납니다. 내 안에 작은 죄의 바람의 씨를 심으면 광풍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외향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문제를 환경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의 문제, 심지어 하나님의 문제로 돌리면 그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라고 해야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좀 더 잘했다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문제가 없다 환경이 문제다 사람이 문제다 하나님이 문제다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외부의 문제로 돌이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외부의 어려움을 허락 하신 것은 내 안에 있는 문제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가 주여 주여 하지만 주님께 대한 나의 신앙이 잘못되었기에 때문이고, 내안에 잘못된 죄의 씨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에게 외부의 대적을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임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내부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습니다. 무엇보다 12절에 보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만지지로 전했지만 그들이 그 말씀을 자신과 관계없는 말씀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전해도 그것을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절대로 영적으로 바로 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영적으로 바로 살지 못하는 문제를 교회에 핑계를 대고 다른 사람들에게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반면에 교회가 아무리 부족해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말씀을 내게 주어진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바르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교회나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말씀을 만 가지로 들어도 그것을 나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스라엘처럼 이렇지 않은지 나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스라엘의 내부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장차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는 합니다. 그러나 3절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은 이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안에 선이 아니라 악의 바람을 심었기 때문에 외부의 대적이 광풍과 같이 저를 따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10장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너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의를 씨를 심어서 사랑의 열매를 거두라고 합니다(10:12).

 

또 이스라엘의 내부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4절에 보면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방백들(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나는 모르는 바라고 합니다.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을 세울 때 너희들 마음대로 왕을 세우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을 세울 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을 세워야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왕으로 세우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를 왕으로 세우라고 합니다. 또 절대 그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자를 왕으로 세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 왕이 있는 날에 이스라엘이 장구하리라고 합니다(17:14-20).

올해도 우리나라에 대선이 있습니다. 아무리 외부의 국제적인 정세가 어려워도 우리 안에 어떤 지도자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지도자를 세우면 그것은 내부의 작은 바람을 심고 외부의 광풍을 거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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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제 이스라엘의 내부의 가장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인 문제였습니다.

4절하반절에 보면저희가 또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5절에 사미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때에 능히 무죄하겠느냐, 6절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만들고)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 7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이 바람은 이스라엘이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큰 내부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평일에는 송아지 우상을 따로 섬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성전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송아지 우상으로 섬겼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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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위해서 송아지처럼 희생만 해주시는 종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송아지처럼 희생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든지 내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송아지 우상처럼 이제 우리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말고 요구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무조건 스마일 치즈 김치 해주고 긍정만 해주고 축복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송아지 우상으로 섬긴 이유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신앙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2계명은 하나님을 형상화시켜서 섬기지 말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 땅에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모양으로 만든다든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어떤 동물의 모양으로 만든다든지, 또 어떤 자연의 일부의 모양으로 하나님을 형상화시켜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4:15-20).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길 때, 형상화시켜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까?

우리가 어떤 물건을 조각한다든지, 형상으로 만들 때 왜 만듭니까?

 

그것은 그 형상 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듦으로 하나님을 내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듦으로 하나님을 내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시키고, 고정화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신 것은 하나님을 내개인적인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내 생각을 틀 속에서 제한시키거나 고정화시키지 말고,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우리가 만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내 욕망의 도구로 생각하고, 또 하나님을 내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시키고, 고정시킨다면 그것도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섬기거나 내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시키고 고정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먼저 우리가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우리에게 희생만 해주시고 복만 내려주는 송아지처럼 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합니다.

--어느 교회를 가면 일 년 52주 매주 마다 오직 긍정과 축복만을 설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해주시기 무조건 축복만 해주시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희생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또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바르게 믿고 섬겨야겠습니다.

 

2. 또한 반대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무조건 벌을 내려주는 공포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우리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시키고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선지서를 자주 보니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을 무조건 죄만 지적하시고, 또 죄에 대해서 벌만 내려주시는 무서운 하나님, 편협하고 속이 좁은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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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너무나 오랫동안 힘든 시험과 어려움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거나 풍성한 하나님이 아니라-고난만 주고 벌 만주시고 어려움만 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고난과 눈물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고난만주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례미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애가3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38 ,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하나님이 무조건 벌주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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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나님이 무조건 복만 주시거나 또 무조건 벌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했느냐 따라서 화가 임하고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벌주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도 이스라엘이 벌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풍성한 복을 받고, 그 풍성하신 복을 나누어주는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또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우리가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셔서 우리에게 언제든지 하늘과 땅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을 제한시키고 고정화시키는 것입니다.

 

3. 또 우리가 하나님을 내 생각의 틀 에서 제한시키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제한시키는 경우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은 자손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한 자녀도 없습니다. 또 그의 아내 사라는 원래부터 불임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서 나그네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창세기 17

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내 지식과 경험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제한 시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으면 하나님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시켜서 생각해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없던 생명을 있는 생명으로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보십시오. 1717절에서 이삭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심중에 비웃었습니다. 또 사라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비웃음조차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그 비웃음이 하나님께 대한 경의의 웃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40살 때의 이삭을 가만히 두지 아니하시고 돌아보시고 인도하셔서 리브가를 만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아주 초라하고 무능한 분으로 가볍게 섬겼습니다. 왜 말라기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초라한 분으로 섬겼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당시 이스라엘은 왕도 없고, 페르시아의 총독이 통치하는 한 지방에 불과했고, 또 그들의 삶이 너무 어렵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초라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말라기 선지자는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은 너희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초라한 분이 아니다. 비록 너희가 초라한 모습으로 있지만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큰 임금이시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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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세모이면 하나님도 세모이시고, 내가 네모이면 하나님도네모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초라한 송아지로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내게 돈 한 푼 없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부와 권세와 영광을 가진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내 앞길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결혼문제가 있습니다. 직장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온 세상만 아니라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좁은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 시켜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불신앙의 작은 바람이 광풍을 몰고 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가 만들어 낸 어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알고 믿고 섬길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