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한 이유(왕상18:41-44)
야고보서 5장 17절과 18절을 보면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합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야고보서는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어떻게 간절히 기도했는지를 말씀 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서는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야가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새벽시간에 이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땅에 끓어 엎드려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이것을 제가 쳇지피티에게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첫번째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머리를 무릎에 완전히 넣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니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만에 제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보통 서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들과 대결을 할 때도 그는 두 손을 들고 서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다리 사이에 넣은 의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물리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2)또 땅에 꿇은 것은 겸손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제단에 불이 내린 것도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다시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고 회복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3)또 머리를 다리 사이에 넣은 것은 고대 근동 당시에 산고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롬8:22).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산고의 고통으로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8장 1절에서 비가 오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져서 가물었던 이스라엘에 단비가 내려 영육 간에 회복이 되도록 기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이렇게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그가 비가 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41절을 보시면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비가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큰비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비가 오고 있습니까? 큰비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큰비 소리가 있다고 합니까? 엘리야는 기도할 때 이미 받은 줄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기도할 때 말씀대로 이미 이루어진 줄 믿고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엘리야는 아합에게 이미 큰비 소리가 있다고 선포했는데, 왜 기도합니까?
기도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불을 내리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비도 내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기도하지 않고 말로만 “비가 내릴 것입니다. 비야 내릴지어다” 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엘리야는 말씀대로 비가 올 줄 믿었지만 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까?
기도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비가 올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또 비가 온다는 하나님의 말씀도 이미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말씀을 이미 선포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도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포로 70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때부터 기도합니다.
단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그래서 여러분 이것을 우리 교회에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고통의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작은 조각 구름과 같은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시니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시니 전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실 것을 믿고 이제부터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실 것을 믿고 이제부터 더 열심히 전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대로 회복의 역사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엘리야의 기도가 산고의 고통으로 한 기도라고 했는데,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낳아야 합니까?
파괴가 아니라 생명을 낳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낳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낳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이제 파괴가 아니라 생명을 낳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간절히 기도를 통하여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낳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미음이 아니라 사랑을 낳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