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우선권(욘1:8-9)
이번 주에 중랑경찰서에 가서 오늘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신우회 회장님에게 먼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누구이십니까? 회장님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장님이 “저는 경찰 공무원입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내가 맡은 부서가 있습니다. 집에서는 아내의 남편이고 자녀들의 아버지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정체성 가운데서 가장 우선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들 각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하실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기도 하고 어머니기도 하고 할머니기도 하고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 가운데서 가장 우선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시면 세상 사람들은 요나에게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요나의 정체성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이때 요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요나는 내가 히브리 사람이요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요나의 대답에 무엇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누구인가 했을 때 가장 먼저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유대 민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요나는 정체성의 우선권을 그가 히브리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보다도 먼저 우선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의 원수인 앗수르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민족을 살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무엇에 정체성에 우선권을 두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유대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유대 민족의 입장에 보았을 때 저 앗수르 사람들은 절대로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굉장히 포악한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민족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민족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일본 사람들보다도 더 미워하는 민족입니다. 지금 요나는 그의 정체성의 우선권을 민족에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라 하였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정체성에 우선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그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정체성의 우선권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여기서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보다도 내가 만일에 유대인이라는 것을 앞장 세운다면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헬라인들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주인이라고 하는 신분들을 앞장세운다면 종들을 절대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의 삶에 우선권이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고 종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고 헬라인도 아닙니다. 우리기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정체성의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정치적인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치적인 신념이 우리의 정체성에 우선이 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우리의 정체성의 우선권을 정치적인 신념에 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그 사람을 배척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삶에 최우선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최우선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냐 여자냐,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주인이냐 종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라도 사람이냐 경상도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수냐 진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은 세대냐 젊은 세대냐 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정체성의 가장 우선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우선이 되면 우리는 어떤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고, 지역적 성향이 달라도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건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경찰서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에 이번에 새로 온 새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교통과장님과 형사과장님이 새로 발령받아서 우리 경찰서로 오게 되었고 신우회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하는데 형사과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겪어 왔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정체성의 우선권을 두고 살아가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통과장님은 믿은 지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신자로서 열심히 나와서 교제하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휴직을 해서 멕시코로 가는 경찰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2년 동안 멕시코에 가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전라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경상도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우선권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우선이 되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의 우선이 될 수 있는 저와 모든 성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