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은혜2(롬5:5)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기 전에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간헐적으로 임했습니다. 또 임하시더라도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성령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또 충만히 거하시게 된 시발점이 된 사건입니다.
이것을 비유로 하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마치 마르지 않는 큰 저수지가 생긴 사건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 저수지의 물줄기가 각 교회에게 부어지게 되었고, 또 각 개인에게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를 믿는 우리 안에 성령이 영원히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에 대해서 꾸짖고 책망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요16:8).
만일 우리에게 성령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절대 죄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도덕적인 규범만 지키면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대한 목마름을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사건에 대해서 들어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아니면 그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나의 죄를 위한 구원사건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무엇보다 2000년 전 십자가의 사건을 우리에게 체험시켜 주시고, 나를 위한 사건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영적으로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우리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십니다(롬5:5).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이길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육신의 생각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항상 조급한 마음을 주고, 시기하게 만들고 질투하게 만들고 분 내게 만들고 참지 못하게 만들고 다투게 하여서 결국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십니다. 인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또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해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끝까지 참으라 인내하라 하나님이 값아 주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이 아니고는 절대 우리는 육신의 조급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 기도하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가 외롭고 어렵고 힘들 때 우리에게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시고 삶의 희망과 소망을 가지게 해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고, 우리 몸도 치료해주심으로 우리를 더 온전하게 해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해주십니다.
또한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기쁨을 알게 해 주시고,또 누리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이성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감정의 영역, 즉 체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하나님을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우리는 방언이나 병 고침과 같은 특별한 체험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을 통한 방언과 병 고침과 같은 체험만 성령체험이라고 하면 우리는 잘못된 체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통한 바른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을 통한 바른 체험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1907년 1월 14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참석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래함 리 선교사는 그날 저녁에 자신이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성령의 특별한 임재”가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로도 어제 있었던 그 집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성령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고 했습니다.
19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던 부흥에 관한 기록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한 임재가 온 회중을 뒤덮었다. 갑자가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으로 충만해 졌다. --능력으로 가득차고 넘치는 권세, 사랑, 거룩함, 절대적 즐거움, 부드러움과 찬란한 빛이 구속주의 열굴에서 나타나 많은 영혼들 속에 남아 있는 의심과 죄를 멀리 쫓아버렸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박영돈 교수님의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아침 기도회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가 하늘이 열리고 내게로 오는 것 같았다. 영광과 순수한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존재를 덮쳤다. 나는 그 안에 잠겨 헤험쳤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주변에 가까이 계셔서 그 친근함을 실제로 느낄 수 었었다. 나는 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 피부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손을 대셨기 때문에 오 나는 그만 그 아름다움에 못 이겨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치 그분이 그의 사랑의 망토를 내 몸에 입혀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임재하심의 진한 강도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모두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ㄴ다.
이렇게 성령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진정한 하나님께 대한 바른 체험입니다.
조지 휘필드는 “주님께서 밤낮으로 내게 그의 사랑을 채우신다--나는 너무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압도되어 거의 호흡이 끊어질 정도다”고 햇습니다.
찰스 피니는“성령이 사랑의 파도처럼 내게 밀려 오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또 해리스란 전도자는 “나의 영혼에 소낙비가 내렸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나 자신을 억제할수 없었다---나는 온전한 사랑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충만한 사랑이었다”
-저도 2000년도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새벽마다 5시간씩 무릎을 끓고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아이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아침 9시쯤 되었을까 기도하는데 갑자기 제 마음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로마서5장 5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그때 까지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느껴지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서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나를 사랑하신다------그 사랑의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다--이렇게 외치게 되었습니다-물론 그동안 제가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가르쳤습니다--그런데 그때 정말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그 당시에는 붉은 색만 보아도--------눈물이 나고--감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다른 곳에 강의나 설교를 하러 갈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했습니다-또 이런 체험은 그 전에 있었던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심에 대한 의심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습니다-또 병이 낫지 않아도 십자가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성령 충만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과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사랑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나 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박영돈 교수님도 이것을 성령의 내재성과 초월성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지만 또한 우리 위에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음으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