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창조적 사랑으로 살아갑시다(호1:1-2,3:1)

금빛돌 2025. 1. 3. 23:26

루터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고 창조해 내신다. 반면 인간의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인간의 사랑은 항상 조건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내가 볼 때 사랑할 만하니까 사랑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배우자를 찾을 때도 어떻게 합니까?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하면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 당연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아니 역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만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도무지 사랑받지 못 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지 않습니다. 도리어 도무지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할 만한 대상으로 창조해 가십니다.

저는 몇 달 동안 이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지 않고,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도 사랑할 만한 대상으로 창조해 가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한해 시작하는 신년 감사 주일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이 한 해를 시작해야겠습니까?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항상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하니까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한 해를 인간적인 사랑으로 시작한다면 우리는 금방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사랑으로 열심히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래서 금방 사랑을 포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한해를 어떻게 시작해야겠습니까?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될 때까지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랑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는 2025년 이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12절을 읽겠습니다.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하나님께서 왜 선지자에게 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했습니까?

이 음란한 여인인 고멜이 하나님 앞에서 봤을 때--이스라엘이며,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고멜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내로 맞이하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는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음란한 여인과 같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로 삼으신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와 같이 이스라엘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둘째,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 빼앗으시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보다 그 남자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말 그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아내가 가는 길을 막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정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내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 하반 절을 읽겠습니다. “2.--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여기서 음란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가만히 버려두는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절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시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시기하고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이것을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난 자녀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라 했습니다. 그 이름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뜻입니다. 둘째 자녀의 이름은 로-루하마 즉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로-암미는 즉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로 하여금 자신의 자녀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살아가면 이스르엘 즉 내가 너를 망하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네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루하마, 내가 이제 더 이상 네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암미 이제는 너는 백성이 아니다. 즉 내가 더 이상 너와 함께 해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2: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하나님)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오늘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바알을 섬기거나 눈에 보이는 우상에게 절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삶의 우선권입니다. 내 삶의 중심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물질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가 가는 길에 가시가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찔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담장 만드십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그 담장 때문에 넘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으면 우리가 사랑하고 붙들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리로 빈털터리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 주위에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우위에 두고 그가 원하는 대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이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 가운데 이런 분이 있습니까?

정말 하는 일마다 안 됩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려고 하면갑자가 일이 생겨서 그 일이 안 되고-또 저것을 하려고 하면 또 하필 다른 문제가 생겨 그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을 돌아보면 거친 광야와 같은 삶이 아닙니까? 내 삶에 풍성한 열매도 없고양식도 없고 쉼도 없습니다. 너무 초라합니다.

내 삶을 보면 이상하게도 내가 붙들고 의지하고 사랑하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나씩 다 가져가져 가고 있다고 느끼시지 않습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몇 십년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은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씩 다 빼앗아 가시는 것 같습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혹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해 놓고 계속해서 내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시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일이 안되게 하시고 힘들게 하시고 어렵게 하시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가셔서 광야와 같게 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핵심이다)

-왜 주님께서 우리가 하는 일마다 어렵게 하시게 하시고 힘들게 하십니까?

그 이유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더 이상 세상이나 물질이나 사람이나 다른 것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쫓아갔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처방전이 무엇입니까?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빈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빈 들)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환난의)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내가 그를 타일러라는 말은 사랑으로 유혹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유혹해서 어디로 데리고 가십니까?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십니다. 아무 것이 없는 빈들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붙들고 의지하고 사랑하던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서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치유를 주십니다. 회복을 주십니다.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아프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밑 바닥을 보게 하신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아 가시는 것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하던 것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때를 잘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지독하게 나를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서 빈들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빈 손들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골골짜기-즉 절망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만들어두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막혀 있어도 우리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도리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주여).

우리에게 이제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오 주님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셔도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셔도 하나님만을 더 사랑하고 더 붙들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갑절의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 우리를 이제 기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지독한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절대 절망하지 마시고 더욱더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절망의 문을 소망의 문으로 만들어주시고, 환난의 문을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셋째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3장까지에서 계속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고도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과 고멜이 하나님을 떠나고 호세아를 떠나 도망합니다.

그래서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노예창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호세아가 이스라엘과 고멜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남편을 떠납니다. 이제 고멜은 몹쓸 남자를 만나 노예 창녀가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갑니다. 그런데 못된 남자를 만나 잡혀가서 그런 곳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이상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찾지도 않을 지도 모릅니다. 찾더라도 이혼하자고 할지 모릅니다. 또 속으로는 잘 되었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런 고멜에 대해서 다시 그에게 다시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려고 하는데-이제는 인간적인 단순한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마음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멜은 노예 창녀로 팔려 가서 그녀를 데리고 오려면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2 (노예 창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우리에게 무엇을 연상시켜 줍니까?

예수님이 은30에 팔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핏 값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 호세아가 은15개가 속전이 되어 노예상태에 있던 고멜을 구속시켜주는 것은//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속전이 되어-----죄의 노예가 되었던 우리를 구출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그 사랑을 받지 들이지 않고 도망을 가고 또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합니다. 그냥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완전히 세상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완전히 세상에 빠져서 살아갈 때, 그때는 이제 당신의 아들을죽이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고멜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고멜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사랑했는데-우리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는 버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인간적인 조건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조금 실패했다 해서 자신에 대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절대 나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넘어지더라도 오뚜기처럼 날마다 일어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정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남편이나 자녀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우리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우리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내 생명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도무지 사랑하지 못할 사랑을 사랑할만한 사람이 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속전을 지불하면서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신 사랑을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호세아 33절입니다.

3:3. (값으로 산)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같이 지내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지내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적인 부담을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무언가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게 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같이 지내자는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날마다 나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날마다 우리 마음에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도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어떤 사람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한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사랑을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