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강해(1)어려움은 회복의 시작(평안할 때가 더 위험)(삼상1:1-8)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사무엘상을 보면 제일 먼저 에브라임 산지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엘가나가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엘가나가 에브라임 지파는 아닙니다. 엘가나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입니다. 왜냐하면 엘가나의 아들 사무엘이 레위 사람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않아서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가 사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이 사무엘상을 시작하면서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지파 사람인 엘가나를 등장시키겠습니까? 그 이유는 사사시대와 대조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사사기 19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삿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여기서도 보면 에브라임 산지에 거류하는 레위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가 첩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첩이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이 레위인은 첩을 잡으로 갑니다. 그리고 첩을 잡아서 데리고 오다가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첩이 능욕당하여 죽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첩의 시체를 11개로 쪼개어 모든 지파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11지파가 베냐민 지파와 싸워서 베냐민 지파 남자들의 거의 죽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에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무엘서가 나옵니다.
사무엘서는 사사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사무엘서는 사사시대 영적인 암흑기에서 어떻게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와 사무엘서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두 레위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영적인 암흑기가 왜 왔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에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영적인 회복이 어떻게 왔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여러분 같은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인데,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평안과 어려움의 차이입니다.
사사시대에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성경에서는 그가 가정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서에 나오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은 엘가나의 한 아내인 브닌나는 자녀를 낳았는데, 한나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이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과 5절입니다.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6절을 보시면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8절을 보시면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복의 시작은 어려움에서부터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육신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에 나오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인 엘가나는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주신 분이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룻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룻기도 사사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룻기에서도 회복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됩니까? 나오미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오미의 가장에 어려움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어떻게 말합니까?
룻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슬픔)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여호와)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평안할 때가 더 위험합니까? 아니면 육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가 더 위험합니까? 평안할 때가 더 위험합니다. 다윗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평안할 때 죄를 지었습니다.
반대로 어려움은 회복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어려움을 주십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사시 시대와 같은 이 시대 어려움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평안은 영적 타락의 지름길입니다. 사무엘상 초반에 나오는 엘리제사장의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은 가정적으로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적 타락의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아무 일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영적으로 그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육신적인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어려움은 영적인 부흥과 회복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어려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