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59)십자가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가?(요19:38-42)

금빛돌 2024. 6. 15. 16:04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릅니까? 인류의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 전과 후로 나누어집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지금이 2024년이라고 합니다. 202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죽으시기 전과 후에 어떻게 다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유대인의 사회에서 쫓겨납니다. 9장에서도 소경의 아버지는 자신이 유대인의 사회에서 쫓겨날 이 두려워서 아들이 소경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낫게 하신 것을 부정했습니다.

특별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자였습니다(27:57). 또 마가복음 15장에서는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대담하게)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사실이 공개되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또 자신의 모든 신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두려워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가 언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나타냅니까?

이 일 후에라고 합니다. 이 일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입니다. 또 죽으신 후에 물과 피를 흘리신 후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빌라도에게 대담하게 구합니다. 그러니까 발리도가 허락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3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밤에 찾아왔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몰약과 침향 썩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왔습니다. 몰약과 침향은 당시에 왕들의 장례에 사용되었던 장례용품입니다. 이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34kg이나 됩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사건 전에는 모두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라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또 십자가 사건 전에는 모두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또 십자가 사건 전에는 모두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 이후에 담대하게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임을 사람들에게 밝힙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각오를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이들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드립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의 무덤을 드립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34kg 되는 몰약과 침향을 드립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 전과 후에 어떻게 다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난 다음에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난 다음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의 가장 귀한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십자가 이후에 이렇게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로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은 왕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십자가의 명패에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왕은 사람을 대신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왕으로 누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왕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왕으로 우리를 대표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누구도 함께 죽었습니까?

그를 믿는 나도 십자가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내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십자가 사건 이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담대하게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임을 밝힐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가 다 씻어졌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지식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 있다고 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의 왕으로 나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믿으십니까?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가 다 씻어졌음을 믿으십니까?

무엇보다 나를 대표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 사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십자가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