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도 복인가?(마5:10-12)
오늘은 팔복의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러면 여기서 의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0절에서 의란 11절에서 나, 즉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의란 복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일반적으로 의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의란 그동안 팔복에서 했던 모든 말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8복의 마지막을 보면서 무엇을 그동안 기대하셨습니까?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고, 애통하는 자가 되고, 온유한 자가 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고,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면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육신적으로 모두 잘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 잘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8복의 모든 말씀대로 살아가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박해입니까?
11. 나(의, 예수님, 말씀)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말씀대로 삶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욕할 수 있습니다. 박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거짓말로 우리에게 악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박해는 받는 것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우리가 말씀대로 삶에도 불구하고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에도 불구하고 박해를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에서 우리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구약시대부터 있었던 모든 선지자들도 모두 말씀대로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고난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예수를 믿는데 말씀대로 사는 것 때문에 고난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난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 때문에 고난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도 고난받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15:18. 세상(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여기서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했기 때문에 우리도 박해를 할 것이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주로 믿습니까?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께도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이신 예수님과 복음과 말씀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말씀 때문에 고난받는 것이 복입니까?
첫째, 고난 없는 축복이 타락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새 예수님을 믿고 세상적인 복을 받지 않으면 마치 잘못 믿은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분명 세상적인 복도 주십니다.
성경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서 세상적인 복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말년이 어떠했습니까?
“왕상11:9. ○(세상적인 복 때문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그러면 솔로몬이 처음부터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처음부터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3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상3: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세상적인 복)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솔로몬은 절대 세상적인 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도 않은 세상적인 복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이렇게 세상적인 복을 받게 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솔로몬은 세상적인 복을 받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또 솔로몬은 세상적인 복을 받자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왕상11장1절에 “왕상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처음에는 누구만을 사랑했습니까?
왕상3장 3절에 “왕상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일번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번제란 일천 번의 제사가 아니라 한 번에 일천 마리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입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번제란 모든 제물을 다 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에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솔로몬은 일천 마리의 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일천 마리 더 이상의 세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인 복에 마음이 빼앗겨서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게 되고,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 솔로몬시대를 제외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이 물질적으로 복을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bc8세기입니다. 이때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이고,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2세입니다. 이때 선지자들은 누구입니까? 유다는 이사야, 미가이고, 이스라엘은 호세아와 아모스입니다. 그래서 “호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물질적인 복을 제일 많이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호13장6절입니다. “호13: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자신도 복을 받고 이웃도 복을 받고, 또 자신의 대만 아니라 그 다음 대까지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의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물질의 복을 받으면 반드시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이 쓰여진 1세기 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두 가지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가난과 고난의 복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눅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의를 인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세상적인 복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모든 복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 세상적인 때문에 마음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 세상적인 복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여전히 가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여전히 내게 고난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일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가난하고, 고난을 받았다면 절대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했음에도 가난하고,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왜 말씀 때문에 고난받는 것이 복입니까? 고난 없는 축복이 타락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받는 것이 복임을 분명히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말씀대로 살았음에도 고난받는 것이 축복이 되겠습니까?
둘째,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받는 자에게는 이 땅에 임하여진 천국을 맛보는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팔복의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복의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의 즉 말씀 때문에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임하여진 천국의 맛은 기쁨입니다.
벧전1장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시험은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당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래서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고난을 받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말씀대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3:17. (말씀대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래서 베드로 전서 1장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시험은 말씀대로 삶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벧전 1장 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말씀대로 삶으로 당하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예수님도 의를 인하여 고난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고,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도 말씀대로 삶으로 당하는 시험을 크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크게 기뻐한다는 동사는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아갈리아스데).
그러면 왜 말씀대로 삶으로 당하는 시험가운데서 우리가 왜 펄쩍펄쩍 뛰면서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귀하게 연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벧전1장 7절에 보시면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 1톤에 수 없이 연단 하면 금이 2그램이 나온다고 합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고난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고난은 예수님을 더 믿고 사랑하게 하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세상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이제 더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예수님만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 더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가운데서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사랑합니다.
고난가운데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더욱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가운데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고난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았음에도 고난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고난도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하여진 천국의 기쁨을 맛보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말씀 때문에 고난을 받는 자는 그 다음세대들에게 축복이 주어집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말씀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가 이 땅에 말씀대로 사는데, 이 땅에서 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이 땅에서 복을 받지 못해도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는 상이 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살면 이 땅에서는 고난을 받지만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살아서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고, 우리 자녀들은 우리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찬수목사님의 동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육 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도 앞선 세대들의 고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 고난과 축복의 공식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앞의 세대에서 말씀대로 고난을 받으면, 그 다음세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에서 말씀에 따른 고난이 없고 영광만 받으면 다음 세대는 반드시 고난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이고, 또 우리 주위에서 보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말씀에 따른 복만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복음과 함께, 또 말씀 때문에 더 적극적인 고난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저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이고, 또한 다음 세대에는 큰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