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38)또 다른 보혜사(요14:16-19)

금빛돌 2023. 11. 26. 06:3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근심한 이유는 육체로 계셨던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겠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제자들에게도 어려운 일들과 근심되는 일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예수님이 그들과 밤낮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에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그들에게서 떠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떠나는 것은 너희를 위함이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너희를 위한 천국의 거처를 예비하고--또 내가 다시 너희들에게로 와서 나 있는 천국까지 너희를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3). 여기서 예수님계서 내가 다시 온다는 말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면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또 라는 말은 앞에 보혜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첫 번째 보혜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보혜사로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는데, 예수님이 제제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제 성령이 또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여기서 다른 보혜사란 말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예수님은 공간의 제약을 받으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했는데, 두 번째 보혜사인 성령하나님은 공간의 제약이 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예수님과 만나서 이야기 하면 안드레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령 보혜사는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또 다른 보혜사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해주겠다는 이 말씀은 성경의 그 어떤 말씀보다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이토스란 말로서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기위해서 불리우심을 입은 자란 말입니다.

-보혜사란 말은 라틴어로 아드보카투스란 말로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불리움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영어로 말하면 에드보킷 이란 말로서 변호사란 뜻도 가지고 있다).

--1)이런 단어의 뜻에 근거해서 보혜사란 말은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성령계서 우리 곁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병들 때 약할 때 어려울 때 억울하고 답답할 때 성령의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도와주시고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제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의 연약함과 억울함과 답답함을 돌아봐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연약할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힘으로 그 어떤 말씀에 순종할 힘이 없습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실 때 우리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쉽게 만들어주십니다. 즉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쉬운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또 보혜사란 위로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로란 있는 그래도 우리를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성령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약함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우리가 있는 그래도 이해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그래 나도 너를 책망하지 않겠노니 다시 그런 죄를 짓지 마, 다시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라날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3)또 보혜사란 권유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유란 내적인 힘을 공급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내적인 동기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입니다.

207절에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아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권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적인 힘을 공급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내적인 동기를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권유를 받은 예레미야는 20: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라고 합니다.

4)또 보혜사란 변호사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어로 아드보카투스 영어로 애드보킷은 변호사란 말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송사합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말합니다. 우리에게 대해서 끊임없는 비난의 말없는 말을 합니다. 또 낙심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그때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사탄이 우리에게 거짓말하고 고소하고 비난하고 낙심케 하는 말을 할 때 옆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보혜사이신 성령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사탄은 우리에게 대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처럼 너는 너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악인이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죄가 없는 줄 안다변호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변호사이신 성령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변호해주십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의심케 하는 말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나와 함께 하실까 하나님께 내 삶을 책임져주실까 정말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실까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에 대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변호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지금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5)보혜사 성령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로 성령하나님이 우리 곁에 제일 중요하게 하시는 일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그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십니다.

또 그 말씀이 생각나게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낙심해 있을 때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갑자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제 마음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가운데 부어주신 바 됨이라는 말씀이 생각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 말씀이 롬 55절에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는 말씀을 생각이 나서 성경을 찾아보니까 롬55절에 있었습니다.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또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성령하나님도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어떤 어려운 일이 없는 편안한 가운데 있는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환난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보면 도무지 평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혜사 성령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안으로 우리에게 있는 모든 환난과 시험을 능히 이기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 주님 내가 그렇습니다. 끊임없는 시험가운데서 보혜사로 말미암은 평안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천국까지 갈 때 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 천국까지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부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예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고, 이제 보혜사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될 때까지 천국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주십니다--그러므로 이제 우리 싸움은 육신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의지하고 인간을 의지하면 근심 걱정 불안이 생깁니다. 그러나 육신을 이기고 사람의 의지하지 않고 보혜사 성령하나님을 의지하면 이 근심되는 세상가운데 우리를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