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33)예수님은 어떤 왕입니까?(요12:12-16)

금빛돌 2023. 10. 28. 10:13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떤 메시야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정치적인 평화를 줄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이 과연 정치적인 메시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주위에 모든 대적을 무력으로 물리치는 메시아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이 세상을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동의 평화가 어떻게 올 수 있다고 했습니까?

정치적인 메시야를 버려야 합니다. 2000년에 이미 오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어야 합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오늘 본문을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난 다음 날에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온 큰 무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13절에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오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나오는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118:25).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왕이면 당연히 말을 타고 와야 합니다. 또 말 중에서 힘센 말을 타고 와야 합니다. 그런데 왕이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그리고 나귀 중에서도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그런데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오신 것은 스가랴서(9:9)에서 미리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가랴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왕이지만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오시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후에 이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들과는 완전히 다른 왕이십니다.

옛날 왕들이 어떤 도시를 들어갈 때도 그냥 걸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힘센 말을 타고 들어갑니다. 또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는 많은 전쟁의 전리품들과 또 장수들과 함께 그 도시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이제는 왕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데, 예수님은 세상의 왕들과는 완전히 바른 방식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당시에 왕들은 힘센 말을 타고 도시에 들어가는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또 세상의 왕들은 많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지고 오시기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한 예수님 자신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또 세상의 왕들은 힘센 장수들을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은 가난한 갈릴리 어부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또 세상의 왕들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충성할 부하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세상 왕들은 자신의 부하들을 왕을 위한 희생재물을 삼습니다. 이 세상의 정치지도자들은 절대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사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자기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또 세상의 왕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권력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절대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당시 정치권력자들과 종교권력자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첫째,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예루살렘의 군중들도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생각하고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면 부패한 헤롯왕을 몰아내고, 결국에는 로마의 황제를 물리치시러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어주는 분이 아닌 줄 알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 인격과 전 삶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지성소, 우리 마음의 성전에 왕으로 주인으로 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여러분들은 과연 이 예수님은 과연 여러분 마음의 왕으로 모시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왕으로 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예수님을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밖에 세워놓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를 오래 믿었지만, 아직 예수님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 단순히 내가 죽을 때 들어놓는 보험처럼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한 보험처럼 여기지 않습니까?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를 누구보다 잘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왕으로 들어오시기를 원하시는데, 예수님을 절대 폭군처럼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세상의 왕이라면 강력한 무기를 동원해서 무력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왕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까? 힘센 말은 왕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나귀는 사람을 많이 태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넘어질 것 같으면 같이 넘어질 것처럼 하면서 다루어야 합니다. 몰고 가다가 가만히 서 있으면 같이 가만히 서 있으면서 가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이것이 참된 왕으로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방식이고,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윽박지르듯이 네 마음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다루듯이 우리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질 것 같으면 예수님도 같이 넘어지실 것 같이 우리를 잡으십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시면 우리 마음이 열리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푸지바라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 신학자는 평생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더 크시다라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은 내가 당하는 이 큰 어려움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라고 하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또 그를 넘어지게 하는 대적을 만나면 하나님은 나를 넘어지게 이 대적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고 하면서 이겨냈습니다.

또 무엇보다 그를 낙심케 하고 넘어지게 하는 사탄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다 고 하면서 사탄을 이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 신학자는 하나님은 더 크신 분이시다는 신앙을 가지고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어도 하나님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성을 얻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고 하면서 그 순간에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자에게 갑자기 큰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병실에서 쓸쓸하고 외롭게 지내시다가 1972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그분의 유품을 가운데 이런 내용을 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건강할 때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병이 들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은 더 작은 분이시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작은 나보다 더 작은 분인 것처럼 하고 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병으로 비천하게 된 나 자신 보다 더 비천한 분으로 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외롭고 쓸쓸한 자신 보다 더 외롭고 쓸쓸한 분으로 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더 큰 죄인인 나보다 더 큰 죄인 것처럼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찾아오셨습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권력자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권력자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위협하는 고난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낙심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사탄의 도전이 있습니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린 나귀처럼 이 세상의 죄악의 풍조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힘센 말을 다루듯이 하지 않습니다.

너 왜 이런 죄를 지었어, 그래 너 이제 죽어야 해, 너 이것도 못해, 네 인생은 이제 끝이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오 주님). 이 세상사람들이, 율법이, 사탄이 너를 정죄해도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힘센 말을 다루듯이 하지 아니하시고 어린 나귀를 다루듯이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쓰러지고 넘어질 때 같이 쓰러지고 넘어지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서 신음할 때 같이 신음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버림을 받을 때 나는 이 땅에 있을 때 너보다 더 크게 버림을 받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괴로움을 당할 때나는 너보다 사람들에게 더 크게 배신을 당했어-그래서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베드로에게 까지 배신을 당했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외로움과 쓸쓸함 가운데 있을 때 나는 너보다 이 세상에서 더 외롭고 쓸쓸하게 살았지그래서 공중의 새도 거처할 곳이 있었지만 나는 거처할 곳도 없이 살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되고 거듭된 실패를 통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비참함을 느낄 때 그래 나는 너보다 십자가에서 너보다 더 크게 비참하게 되었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죄인이라고 조롱할 때--“그래 나는 너보다 큰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비참하게 조롱을 당했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세상에 가장 작은 자라고 느낄 때 그래 나는 너보다 더 작은 자로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런데 왕이지만 우리보다 더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폭군처럼 우리 마음의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지 아니하십니다. 도리어 사랑의 음성으로 우리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의 아픔을 안다. 내가 너의 연약을 안다. 내가 너의 아픔과 연약을 치유하겠노라, 그러니 네 마음을 열고 너의 참된 왕으로 나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정말 찾아야 할 참된 왕은 누구이십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실패했습니까? 넘어졌습니까? 죄를 지었습니까? 인생에 희망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날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왕좌에 왕으로, 주로 모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직 이 세상의 정욕을 붙들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인간의 정욕은 절대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직 이 세상의 물잘 돈 명예를 붙들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왜 연예인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만족하지 못합니까? 그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사모해야 할 왕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영혼의 왕으로 주인으로 영원토록 모시고 섬기며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왕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고, 주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왕이십니까?

둘째,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왕입니다.

에스겔서에서 보면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다윗의 후손 예수님)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다윗의 후손 예수님)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에 보시면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며, 우리 중에 왕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시며, 어떤 왕이십니까?

34: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상하고 약하고 병든 자들)을 먹이리라

여기서 보면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상한 자를 싸매 주며 약하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는 왕이십니다. 이 세상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입니다. 내가 강하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약하면 버립니다. 내가 성공하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면 버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약하면 할수록 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더욱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면 할수록 더욱더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왕이십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왕이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꺾어 버립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을 꺼버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도 절대 꺾지 않습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도 절대 끄지 않습니다. 도리이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에게 성령의 불을 붙여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긍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재성교수님은 긍휼은 예수님의 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말씀한 전하지 않았습니다.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왜 이렇게 하십니까?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그래서 만왕의 왕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긍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이 상한 자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병든 자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강하게 하십니다. 눈물을 닦아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 앞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날마다 눈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긍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왕입니까?

셋째,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어떤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는 곰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아이를 놀려댔습니다.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사춘기가 되었을 때 이제 그 아이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원망했습니다. 왜 엄마는 얼굴이 곰보야 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왜 자신이 곰보가 되었는지 말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간난 아기 때 집에 불이 났습니다. 모두 집에 아이가 죽는다고 말만 했는데, 어머니는 불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때문에 어머니는 불에 타서 곰보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제 그 아이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이이기입니다.

//저도 어릴 때 아버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손톱이 하나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왜 손톱이 빠졌겠습니까?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 왕보다 힘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왜 나보다 더 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연약 때문입니다

죄라고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우리보다 더 죄가 많은 죄인인 것 처럼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작아지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고백해야합니까? 예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보면서 호산나 라고 외칩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는 말입니다.

-“오 주여 나를 이 죄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나를 이 비참한데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오 주여 나를 실패하고 좌절한데 구원하여 주옵소서, 오주여 나를 이 영적 낙심과 침체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비참한데서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실패와 좌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영적인 낙심과 침체에서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참된 왕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왕으로 찾아오셔 내 삶의 왕이 되어주시면 우리는 쓰러지고 넘어진데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온 세상이 왕으로 진정으로 찾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습니다.

저 중동의 땅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서 그 땅에 진정한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 가정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서 참된 치유와 회복이 있을 수 있는 복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심으로 우리 가운데 진정한 부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