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12)진정한 믿음은 무엇인가(요4:46-54)

금빛돌 2023. 7. 22. 13:20

지난 시간에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정한 예배란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산에서의 예배와는 달리 진리 안에 드리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또 진정한 예배란 유대에 있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는 달리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고 왜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이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423절에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버지께 진정한 예배를 할 때가 되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가 이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때란 언제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때를 말합니다. 또 요한복음을 보면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구약의 때가 지나갔고, 신약의 때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때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조건 그곳에서만 예배를 드려야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오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때가 되었습니다. 신약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한 예배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이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이 내 가슴에 와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이 내 가슴에 와닿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지는 참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예수님께서 갈리리 가나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2:13).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들러셨습니다(4:4). 거기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습니다(46).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왕의 신하가 있는데,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었습니다.

4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갈릴리 가나로 가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왕의 신하는 원래 어디에 있는 사람입니까? 가버나움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고,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로 갔습니다. 가버나움과 갈릴리 가나는 34킬로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양평 정도 가는 길입니다. 지금 차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옛날로 말하면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먼 거리를 마다하고 단숨에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게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8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왜 예수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까?

지금 왕의 신하가 예수님에게 가버나움에 내려오셔서 병을 고쳐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내려오셔서 병든 아들의 몸에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고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이 왕의 신하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병이 낫는 것을 봐야지만 예수님을 믿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표적과 기사 즉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지 못하면 믿지 아니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너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너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란 너를 포함한 너희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하의 아들만 아니라 사람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고 믿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너희 속에 우리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눈에 보이면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 기도가 응답이 되면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 상황이 좋아지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 아무 기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너희 속에 우리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너희는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으면 믿는구라 라고 말씀하시니까 신하가 어떻께 대답을 합니까? 49절입니다.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무슨 말씀하십니까?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우리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빨리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십시오, 그래서 병이 낫는 기적을 보여 주옵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병이 낫는 기적을 보여 달라는 신하에게 예수님은 내가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갑니다.

그리고 5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신하가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 종들이 신하에게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52절과 5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아이가 낫기를 시작한 때를 물으니 어제 일곱 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 때에 신하의 아들이 낫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신하와 그 온 집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기서 이 신하가 종들을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듣고 하루가 지난 때 였습니다. 그래서 신하의 종이 아이가 낫기를 시작할 때를 어제 일곱 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신하는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듣고 바로 가버나움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하루 밤을 자고 그 다음 날에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처음 신하는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병을 낫게 하시는 것을 보면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신하는 보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오직 말씀으로만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50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여기서도 보시면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기적을 보고 믿고 가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 없었어도 말씀만 믿고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가지도 않고 하루 밤을 자고 갔습니다.

여러분 이때 이 신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과연 내 아들이 살아 있을까? 과연 내 아들의 병이 낳았을까? 라는 불안한 마음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내 아들의 병이 낳았을까? 낫지 않았을까? 라고 하는 불안한 마음이었면 절대 자고 가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이었다면 단숨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말씀을 듣고 바로 가지 않고 밤에 잠은 잤던 아버지의 마음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평안하게 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하게 그 다음 날 가버나움을 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 2장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의탁하지(믿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나중에 기적이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보고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도 말씀만으로 믿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척스미스 목사님께서 부산 초량동교회에서 설교하러 오셨을 때 직접 들은 설교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척 스미스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성도님이 전화기를 들고 빙글 빙글 돌고 기뻐하면서 목사님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병이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덩치가 크신 분이신데, 강대상에서 빙글 빙글 돌면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척 스미스 목사님은 전화기를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병이 나아서 기뻐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당장 병이 낫지 않아도 말씀만 믿고 빙글 빙글 돌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1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요한복음 20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합니다(20:25)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믿음이란 기적이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만 믿고 미리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된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내 손에 만져지는 것이 없습니다. 당장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말씀만 믿고 평안히 잠을 자는 것입니다. 말씀만 믿고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하면서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 처럼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은 결국 믿은 것을 보게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병 낫기를 기도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분들의 병이 낫게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믿은 대로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자녀를 이미 잘 되게 하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믿은 대로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셔 여러분들의 미래를 이미 잘 되게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믿은 대로 될 줄 믿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처럼 믿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믿은 것을 보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