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3)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요1:15-34)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지위가 높으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갔을 때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도 돈이 많으면 잘 살았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지위가 높다고 잘 살았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일 잘 살았다고 하시는 세례요한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1).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예수님 외에 여자로 말미암아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자로 말미암아 태어난 모든 사람 중에서 세례요한이 제일 잘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세례요한이 어떻게 살았기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 자입니까?
세례요한이 어떻게 살았기에 예수님이 보실 때 이 땅의 모든 사람 중에서 제일 잘 산 사람이 되었습니까? 요1장 6-8절을보시기 바랍니다
요1: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여기서 보시면 세례요한이 누구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러 온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증언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인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마치 자연인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이 세상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라고 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그는 오직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증언이 무엇입니까?
증언이란 직접 체험한 것을 입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증언자는 어떤 자입니까?
증언 자란 내가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증언자는 내가 체험하여 본 것을 입으로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어떤 체험을 하였습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 성령이 그 위에 비둘기같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32부터 보시면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요한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증언자가 되었습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레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여기서 보시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입니까?
그 이유는 세례요한은 예수님 위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신 것을 직접 체험한 자입니다.
여러분 성령하나님이 거하여 계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직접 체험하였습니까?
방언을 하는 것만을 통해서 성령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성령이 아니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주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러분들의 삶의 주님으로 믿고 시인하십니까? 무엇보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주로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 속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자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는 것을 봄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직접 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속에 성령하나님이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속에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날마다 보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내가 가진 돈을 드러내는 자가 아닙니다. 내 자존심을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이 제일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들도 살든지 죽든지 여러분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통해서 여러분들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목요일에도 전도띠를 띠고 뚝방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지를 받는 사람도 있었고, 받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를 믿으라는 띠를 띠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모습이 장미 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증거하면 살아가는 삶이 제일 잘 사는삶 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세례요한을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까?
1)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19-23).
19절부터 보면 바리새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요한에게 보내어 내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혹시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때 세례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레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여러분 소리가 무엇입니까? 소리는 소리만 남기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신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세례요한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목에 베여서 죽었습니다. 심지어 그 목이 헤롯의 쟁반 위에 놓여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세례요한은 비참하게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보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오직 예수님만 증거가 되고 나타나는 것이 제일 잘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죽임을 당합니다(계11:7-8). 저는 매 주일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일 잘 사는 것이겠습니까? 나는 죽고 내 안에서 예수님만 증거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날마다 나는 죽지만 내 안에 예수님만을 증거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27절을 보시면 세례요한 자신을 낮춤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여기서 보시면 세례요한은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합니다.
당시에 노예 중에서도 제일 낮은 노예가 주인의 신발 끈을 풀어서 발을 씻기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푸는 노예보다 더 못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낮아진 만큼 예수님은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처럼 자신을 낮춤으로 예수님을 더 높이 증거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또 34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봄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29-34).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두 제자들에게 36절에 “요1: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합니다. 세레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보라고 합니다.
또 1장 46절에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직접 만나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생명이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하면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빛이요 소망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직접 만나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날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서 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보았기에 증거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