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55)은잔의 시험(창44:1-18)

금빛돌 2022. 9. 17. 18:42

요셉이 드디어 동생 베냐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베냐민과 형제들을 위해서 잔치를 열어주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보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숨어서 크게 울었습니다. 이즘 되면 요셉은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요셉은 집 청지기에게 양식을 형들의 자루에 채우고 돈도 그 자루에 넣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요셉의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에 넣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청년은 베냐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아침에 밝을 때에 형제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냅니다(3). 그리고 형제들이 성읍에서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형제들을 따라 가서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선으로 악을 갚으냐고 말하라고 합니다(4). 그리고 은잔은 내 주인인 요셉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인데 너희가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갔느냐 이같이 하니 너희가 악하도다고 합니다(5). 여기서 은잔은 요셉이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재 요셉이 은잔으로 점을 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잔은 애굽에서 일반적으로 점을 치는데 사용하는 것인데, 너희가 왜 이것을 가지고 갔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7-9절입니다.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요셉의 형들을 우리는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루에 있는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당신에게 가지고 온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요셉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 중에 누구에게서 은잔이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고 우리는 종이 되겠습니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종은 말하기를 은잔이 누구에게 발견이 되면 그 사람만 종이 되고 너희들을 죄가 없으리라고 합니다(10).

그래서 각각 자루를 풉니다(11). 그리고 나이 많은 형부터 자루를 풀어서 조사하였는데, 그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이 됩니다(12).

그러니까 13절에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고 합니다. 형들이 원통하고 억울하다는 뜻에서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요셉이 있는 성으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여기서 보시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다가 형제들의 대표로 나옵니다. 그래서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형제들의 대표인 유다가 어떻게 말합니까? 16절입니다.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여기서 유다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변화된 유다와 형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변화되기 전의 형제들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이 되었다면 이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가 베냐민만을 사랑해서 보기 싫었는데, 잘 되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니 우리만 아버지 집으로 가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합니까? 베냐민을 홀로 두지 않습니다. 베냐민과 함께 다시 요셉이 있는 성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유다와 형제들은 비록 자신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지만, 이 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합니다.

어떤 죄악이겠습니까? 예전에 요셉을 억울하게 팔아넘긴 죄악입니다. 그때 아버지 야곱이 옷을 찢으면서 나도 같이 죽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악을 하나님께서 찾아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잔을 훔치지 않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가 죄인입니다. 그러니 우리와 베냐민이 모두 그 죄에 대한 댓가로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17).

그러니까 유다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30절과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아버지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베냐민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우리 아버지가 죽습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희생제물)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그리고 유다는 아버지에게 내가 베냐민을 위한 담보 즉 희생재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로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내가 아버지에게 영원히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 합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함께 보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절대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45장에서 요셉이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크게 울면서 형들에게 내가 요셉이라고 합니다(45:3).

그러면 창세기 44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참된 회개가 있어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면 외강내유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강내유(外剛內柔)란 겉으로는 강하고 꿋꿋하게 보이나 속은 부드럽고 순한 성격입니다. 요셉은 겉으로는 엄격한 사람 같지만 속으로는 부드럽고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처음 형들을 만났을 때 밖에 나가서 울었습니다(42:24). 그리고 동생을 볼 때도 마음이 복받쳐 안방에 들어가서 얼굴을 씻을 정도로 울었습니다(43:30-31). 그리고 마지막에 유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바로의 궁에 들리기 까지 울었습니다(45:1,2).

그래서 인간적인 감정대로 한다면 요셉은 처음부터 자신을 밝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의 모든 죄를 무조건 다 용서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철저히 감정을 억제합니다. 그래서 형들을 대할 때도 차갑고 엄한 소리로 말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요셉은 형들을 은잔으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요셉이 감정을 억제했습니까? 그 이유는 요셉이 꾼 꿈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꾼 꿈이란 지금으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감정적으로는 바로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감정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왜 요셉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바로 화해를 하지 않습니까? 도리어 잔치를 베풀고 난 다음에 은잔으로 형들을 시험합니까? 그 이유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짐을 요셉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형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했습니다.

이때 형들은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야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71절에서 7: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회복)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의 죄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7:2.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고 합니다. 상처를 치료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처 주위에 소독약만을 바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환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단순히 소독약만 바르는 분이 아닙니다. 호세아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초대교회 때도 어떻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329절에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개역한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을 때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실 형들은 은잔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은잔에 있어서는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형들은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종들의 죄악을 찾으셨도다 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특정한 죄에 대해서는 우리가 깨끗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 가운데 죄가 없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고 고백할 때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들과 같은 은잔의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은잔은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잔의 시험이 있을 때 그 점에 있어서는 깨끗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됨을 고백해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우리의 죄악들을 두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우리가운데 진정한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창44장에 나타난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그것은 참된 믿음은 약한 자를 어떻게 돌보느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은잔을 통해서 형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했는가를 시험했습니다.

그리고 또 요셉은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형들이 동생 베냐민을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이 발견이 되었는데, 옛날의 형들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베냐민의 자루에만 은잔이 있으니 이것은 베냐민만의 문제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베냐민만 두고 아버지 집으로 가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형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형들은 우리는 절대 베냐민을 두고 아버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베냐민과 같이 요셉의 노예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은잔의 시험을 통해서 형들의 참된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베냐민과 같은 약한 자를 내 몸과 같이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후 135절에서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속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모시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단순히 우리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운데 베냐민과 같은 약한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 사람이 정말 예수를 믿고 있는지 아닌 지를 마지막 날에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은 양과 염소로 나누십니다. 예수님은 양 편에 속한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으면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양편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주님이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으면 병드신 것을 보고 가서 보았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염소 편에 속한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잘 섬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십니까?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 베냐민과 같은 지극히 작은 자를 예수님처럼 섬길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창44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째, 우리의 모든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430절과 3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44: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유다는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 아이가 잘못되면 아버지는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관계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모든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가 아픕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 힘이 들면 모두가 힘이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모든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창4430절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은 우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만일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생명보다 더 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재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재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실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35절에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합니다.

그리고 36절에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고 합니다.

그리고 37절에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입니다. 또 종일 주를 위하여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모든 일이 있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한 주간 동안 하나님과 우리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면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