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사도행전

사도행전강해(19)약속의 말씀과 성취사이(행7:1-5)

금빛돌 2022. 7. 1. 17:36

자귀 나무 꽃

스데반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야가 예수님이라고 하고,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쟁에서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이기지 못한 유대인들이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스데반을 산헤드린 공의회에 세웠습니다.

이때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성전을 무너뜨리고, 모세 율법을 무너뜨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이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서 스데반에 대해서 말한 것이 사실이냐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성전을 무너뜨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스데반은 당시에 있던 성전을 무너뜨려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단순히 건물로서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온 세상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산혜드린 공의회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데반이 그것이 사실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스데반의 마지막 설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부터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스데반이 이렇게 아브라함부터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교로 하였겠습니까? 그 이유는 솔로몬이 건물로서의 성전을 짓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지은 건물로서의 성전에만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지금 어떻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대아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시면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셉에 억울하게 애굽으러 팔려간 것도 하나님의 함께 하십니까?

또 보디발의 집에 간 것도 하나님께 함께 하신 것입니까?

또 더 억울하게 감옥에 간 것도 하나님께 함께 하신 것입니까?

또 거기서 술맡은 관원을 만난 것도 하나님께 함께 하신 것입니까?

그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2년 잊어버린 것도 하나님께 함께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요셉이 바로의 꿈을 풀어주고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하나님께 함께 하신 것입니까?

이것만 아닙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왕이 나타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괴롭힐 때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주셔서 애굽 왕의 손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다윗 때에 이르러서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건물로서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에 계시지 않고 온 세상에 계신다고 스데반은 설교하고 있습니다.

7:47. 솔로몬이 그(하나님)를 위하여 집(건물성전)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인간이) 손으로 지은 곳(건물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성전)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성전)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세상)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성전)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이 만든 건물로서의 성전에만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건물로서의 성전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건물로서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도 하나님께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물로서의 성전이 진정한 성전이 아니고, 온 세상이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성전이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 스데반의 설교는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성전에만 하나님께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하셔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 당장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하나님께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장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그들이 만든 성전에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낮에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생의 어두운 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누구는 결혼도 잘합니다. 취직도 잘 합니다. 돈도 잘 법니다. 또 누구는 하는 일마다 잘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기 기도하는데도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주여). 그런데 이때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까?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데, 왜 당장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대도 내 인생의 어두운 밤은 왜 계속 됩니까?

이것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에 있습니다.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갈대아우르)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셔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가보니까 발 붙일만한 땅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만 하셨습니까? 이 땅을 아직 나지도 않은 자녀들에게 주신다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브라함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서 발 붙일 땅도 당장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만 하셨습니까? 그에게 약속의 말씀만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반드시 가나안땅을 주겠다, 내가 반드시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는데, 지금 당장 우리에게 왜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십니까? 그 이유는 너희는 내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당장 내 눈에 아무 것이 보이지 않아도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 것이 보이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따라 갈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내 생각으로 도무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오직 약속의 말씀만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여러분들이 기도한 모든 것을 반드시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시간들을 주십니까?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자녀를 주시는데, 25년의 시간이 거립니까?또 바다의 하늘과 별과 같이 많은 자녀를 주시는데, 애굽 땅에서 400년의 시간이 걸립니까?

그 이유는 약속의 말씀과 성취의 시간까지 우리를 더 깍으시고 다듬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시편 66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붙 같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은을 단련함과 같이 두들기시고, 또 두들기십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불순물이 있는 은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심으로 정금과 같이 되어서 우리로 더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십니까?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물은 작은 물고기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시험들을 통해서 우리를 더 작게 만드십니다. 더 낮아지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그물이 있어도 그 모든 그물에서 우리로 나오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두시기도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아프리카에서 급한 물을 건너가는데, 사람들이 허리에 큰 돌멩이를 매고 가더랍니다. 그래서 왜 이런 급류를 건너는데 힘들게 허리에 큰 돌을 메고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만일 허리에 큰 돌이 없으면 급류에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리에 큰 짐이 우리를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게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우리 허리에 인생의 무거운 짐을 매어주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의 무조건 짐 때문에 한순간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지을 틈조차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 어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주신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거운 짐 때문에 인생의 큰 급류도 능히 건너게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우리로 조금이라도 우리 작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데, 우리로 불과 물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성취의 시간까지 하나님은 물의 시험으로 불의 시험으로 우리를 깎으시고 다듬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그 모든 시험에서 끌어 내사 우리를 더 풍부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