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39)택하신 백성을 어떻게 돌보시나?(창28:1-22)
창27장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실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실수함에도 불구하시고 돌아보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이삭은 자기의 마음대로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삭은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축복합니다. 그리고 당부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 않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밧단 아람1)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이삭이 왜 야곱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딸과 결혼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외삼촌 라반의 딸과 결혼하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에서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여인과 결혼해서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창26:35).
또 창27장46절을 보시면 리브가는 에서의 아내들인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삶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삭에게 야곱만큼은 믿는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믿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1)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축복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마음대로 에서를 축복하려든 이삭을 돌아보시고 간섭하셔서 야곱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에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6절입니다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 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8절을 보시면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아내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또 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신의 아내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에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이 믿지 않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했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어떻게 합니까?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 부모의 마음에 기쁨이 되지 못한 것을 보고도 이스마엘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본처들 외에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닙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서에 대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어버려두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택하지 않은 백성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돌보심과 버려두심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에서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8.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가)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내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돌보고 계시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하나님의 자녀들 같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사람을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돌보고 계십니다.
/야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욕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또 속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도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돌보고 계십니까? 먼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이삭이 있던 브엘세바에서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떠납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땅의 남쪽 끝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란은 800킬로나 되는 먼 길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우연히 이곳에 머물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그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바로 이곳이 원래의 지명은 루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곳이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도하신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또 해가 졌습니다. 해가 졌다는 것은 실제 해가 졌다는 것도 있지만 지금 야곱의 삶 가운데 인간적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는 잠을 자려고 하는데, 한 돌을 베게로 삼고 거기서 누워 잤습니다. 왜 돌 베게로 잠을 잡니까? 잠을 자다가 광야에서 짐승을 오면 그 돌로 짐승을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 곳은 광야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인도하시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게 하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야곱과 우리를 왜 광야로 인도하십니까? 그 이유는 그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여기서 꿈이란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의 계시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사닥다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의 꼭 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여기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저 창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입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 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또 야곱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13절 상반 절입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
하나님이 계신 사닥다리 위에 하늘에서 서서 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13절과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대로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땅을 네가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지금 야곱은 에서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도 없습니다. 그를 지켜주는 아버지의 그늘도 없습니다. 광야에 혼자 있습니다. 잘 곳이 없어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곱은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누구도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여러분 여기서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의 사닥다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야곱의 형편을 하나님께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18장10절에 작은 한 소자라도 그들 곁에 천사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형편을 하나님께 알려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주 하나님께서 나의 형편을 왜 알아주지 않으시냐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사40:27.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왜 하늘에서 앉아계시지 않고 서서 계십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야곱이 광야에서 홀로 외롭게 누워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반이 돌에 맞고 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에서 서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테반은 “행7: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고 합니다
제자들이 밤 사경에 풍랑 이는 바다에서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산 속에서 아무 고통 없이 기도하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 하늘 위에서 하늘에서 서서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도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지금도 돌보고 계시는데 왜 우리를 외롭고 쓸쓸한 광야로 인도하십니까?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은 야곱이 어떻게 생겼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는가를 엿보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록 우리가 야곱과 같이 외롭고 쓸쓸한 광야에 있지만 우리는 천사도 흠모하는 그 사랑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외롭고 쓸쓸한 광야에서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야곱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첫째, 내가 있는 이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16,17)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자신들이 사는 지방에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을 떠나면 자신들이 믿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고 합니다.
이 두려움은 광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원래 이곳은 어떤 곳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야곱을 위협하던 짐승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바로 이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하늘로 열려있는 하늘의 문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곳에 계십니까? 내가 있는 이곳이 광야와 같아서 너무 힘이 들어서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바로 여러분들이 있는 짐승이 울부짖는 그 광야와 같은 그 곳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통스러운 그 곳이 바로 하늘로 열려 있는 하늘의 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그곳이 하늘나라임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광야를 예배의 장소로 삼았습니다(18).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원래 이 베게는 잠을 자다가 짐승을 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돌로 짐승을 쫓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그 먼지 나는 그 직장이 거룩한 예배의 장소입니다. 내가 걸어 다니는 모든 삶의 자리가 거룩한 예배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야곱은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 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창 27장 20절에서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평안할 때 아무 고통이 없을 때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내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이고, 내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고 내 할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통의 광야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주십니다. 고통의 광야가 하늘의 열린 문이 되게 하십니다. 그 고통의 광야가 예배의 장소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다윗도 평안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난의 광야에서 하나님은 2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앞에 원수가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고백합니까?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는 어리석은 양과 같아서 하나님께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추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멀어지려고 해도 하나님을 우리를 추격해서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그래서 내 평생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반드시 나를 추격해서 따라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있는 그 모든 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믿으시고,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처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