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38)실수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창27:1-4)
창 27장을 보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인간들의 실수가 나옵니다. 먼저 이삭의 실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 리브가의 실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 야곱의 실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아주 모범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삭의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는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가정을 모범으로 하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인간의 실수와 연약에 대해서 절대 감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실수를 보았습니다. 그는 두 번 씩나 아내를 누이로 속였던 사람입니다. 또 자녀를 기다리지 못해서 이스라엘을 낳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27: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나이가 많다고 하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는 137세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육신의 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삭은 너무나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삭이 살아왔던 신앙과 삶의 모습을 보면 이삭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삭은 나이가 많아서 도리어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이삭은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에 죽을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실재 이삭이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창 35장에 보면 이삭은 180세에 죽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43년을 더 삽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합니까? 나이가 들고 몸이 좋지 않으니까 곧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자녀들에게 죽기 전에 축복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은 에서에게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가서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죽기 전에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실수를 볼 수 있습니다. 창25장에 보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큰 자인 에서는 작은 자인 야곱을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는 크고 강한 자인 에서는 버리시고, 야곱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복을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리브가에게 주셨는데, 이삭도 이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에게 축복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에서를 불러서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삭이 이렇게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야곱보다는 에서가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야곱보다 더 남자다웠습니다. 그래서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 곁에서 팥죽이나 끓이는 야곱보다 사냥하여 고기를 가져다주는 에서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욱이 3절을 보면 이삭은 나라는 말을 5번합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나이가 들어서 자기중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 맛있는 고기를 잡아줄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 이삭은 에서만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리브가가 야곱만을 사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은 에서와는 달리 아주 가정적입니다. 조용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장자의 명분을 얻고자 할 정도로 신앙적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거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도 없습니다. 그래서 팥죽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창26장 34절에 보면 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족속의 두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창26장 35에 “창26: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 리브가가 이삭에게 그러지 말라 고 해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셔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남편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축복하라고 하셨는데 왜 그러십니까? 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라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염소새끼를 가져오면 내가 요리를 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만일 아버지 이삭이 알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하니까 리브가가 어떻게 말합니까? “13. 어머니(리브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이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없는데,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매끈한 곳에 입게 함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게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리브라가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리브가의 동기는 좋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방법이 옳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옳고 정당하면 방법은 거짓을 해서도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방법도 정당하고 옳아야합니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거짓된 방법을 말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 사건 이후로 리브가는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야곱은 20년 동안 에서에게 쫓기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또 야곱의 실수가 나옵니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 그러시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고 했어야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따릅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이 에서라고 속이고 자신에 축복을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보니까 에서가 나간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느냐고 하니까 20절에 “-20.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야곱을 속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야곱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한을 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은 이 사건 이후로 20년 동안 에서에게 쫓기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것보다 더하게 외삼촌 라반에게서 10번씩이나 속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말년에 바로 왕에게 자신의 삶은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만을 사랑하고, 어머니는 작은 아들만을 사랑하는 역기능적인 가정입니다. 또 형이 아우를 죽이려고 하는 깨어진 가정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실수가 많은 이삭을 선택하셨습니까? 왜 야곱을 선택하셨습니까? 왜 선택받은 믿음의 가정이 역 기능적인 가정이고, 깨어진 가정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이렇게 해도 된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절대 그렇 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가정의 실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나타나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 인간은 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도 인간은 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보시면 괜찮은 사람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 나서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전1장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왜 크고 강한 자인 에서를 버리시고 약하고 작은 자인 야곱을 선택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선택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 것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더 낫기 때문에 선택받아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약한 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택을 받았느냐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아무 것도 자랑하지 말라 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너는 아무 별 수 없는 인간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우리가 다 별 수 없는 인간들인데, 어떻게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16절을 보면 “롬9:16. 그런즉 (하나님의 택하심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의지로 예수님을 믿어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의롭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둘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본문에서 이삭이 137세가 되었어도 눈이 밝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삭이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눈이 밝고 건강하니 선택받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삭이 모든 삶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태어날 수 없었는데 태어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가 청소년 시절에 자신을 바칠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삭의 결혼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또 이삭이 땅에서 100배의 복을 받은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끝까지 우물을 파다가 모든 관계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나이가 들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까?
몸이 여기저기 아픕니까? 그래서 내가 한없이 부족하고 약하게 느껴지십니까?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예전에 잘 나갔을 때 그것이 네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사역을 하실 때 젊은 청년들이 수없이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된 것이 내가 똑똑해서 젊은이들이 모였던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약하다고 하는 것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이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둡다는 것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귀가 어둡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에게도 끊임없이 따라다녔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것을 없애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후12:9). 그래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도리어 자랑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에서 있어서 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고후12:).
/그래서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십니까? 나는 정말 약한 인간이라고 느끼고 계십니까? 심지어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약함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까지도 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여러분의 약함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약함이 절망과 낙담의 통로가 아니라 믿음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약함을 은혜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약함이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의 약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563장의 가사처럼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라고 하나님을 찬송하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래리 크랩은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책에서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깨어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어지고 약한 현 상태를 바로 보고 거기서 나를 만나주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내가 엉망인 것과 네가 엉망인 것을 아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엉망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주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 하게 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여러분들의 약함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약함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의 실수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셋째, 인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실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28절에 이삭이 야곱을 에서라고 생각하고 한 축복이 나옵니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곡식과 포도주는 농사를 짓는 자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에서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들에서 사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야곱을 에서라고 생각하고 축복한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네 팔의 힘이 강하여 너는 활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를 당하여 이길 자가 없으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삭은 에서인줄 알고 축복하는데, 그 내용은 농사 꾼인 야곱에게 하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실수로 에서에서 축복을 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왔을 때 앞에서 축복한 자가 야곱인 줄 알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입니다. 이삭이 비록 실수로 축복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간섭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심히 떨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택하신 자녀가 어떻게 그렇게 실수할 수 있느냐 그렇게 실수하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인간이 실수해도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실수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우리가 약하면 하나님도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하나님도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포로고 잡혀 갔을 때 그들은 약했습니다.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곤하여 지쳤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실수했습니까? 넘어졌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실수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또 일어서고 일어설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